▲김용옥 시인 수필집 <살아야 하는 슬픈 이유> 표지
조종안
김용옥(66) 시인은 2005년부터 틈틈이 써온 글을 여섯 마당으로 묶은 <살아야 하는 슬픈 이유>의 첫 번째 수필(<비겁한 죄>) 서두에서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조국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처음엔 '어떤 폭력이었기에··' 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가 갸웃거려졌으나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김 시인은 중학교 1학년 때 4·19 학생민주화운동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어렴풋이나마 추구할 이념이 뭔가를 배웠다. 대학 시절에는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데모에 동참하며 민중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었다. 젊어서 이상에 미치지 않으면 지성인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다가 군사정권으로부터 직격탄을 맞는다.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하나뿐인 오빠가 간첩 누명을 쓰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
온 가족이 백방으로 나서 일주일 만에 찾아낸 오빠는 모진 고문과 폭력으로 형용키 어려운 몰골로 둔갑해 있었다. 고문경찰관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한 마리 늑대에 지나지 않았다. 오빠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는 동안 어머니의 애간장과 함께 가산은 탕진되어 갔다. 여동생이 넣어주는 책조차 철저히 조사받던 당시 김 시인의 심정은 그야말로 '끔찍했다'였다.
오빠는 결국 무죄석방 되었다. 그러나 사회인으로는 이미 반신불수나 다름없었다. 훤칠한 청년(오빠)의 외면과 내장은 푸석푸석 삭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오빠는 반벙어리가 되었다. 억울하고 원통했다. 김 시인은 독일 신부의 증언과 외신기자들의 보도를 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살았다. 눈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