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빨래 색깔남자만 있다보니 원색이 사라졌다
이희동
어디 그뿐인가. 난 식구들과 헤어진 후 그동안 아이 셋 둔 아빠로서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호사도 누렸다. <아이언맨3> <고령화 가족> <전설의 주먹> <신세계> 등 최신 영화들을 섭렵했고, 5월에만 계룡산, 북한산을 다녀왔다. 과거 결혼하기 전 내가 시간만 나면 했던 취미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나의 생활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아내였다. 그녀는 비록 몸은 친정에 가 있지만, 셋째를 업은 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등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투덜댔다. 오히려 아이들을 한 눈에 살필 수 없는 한옥의 특성상 더욱 힘들다며 내린 아내의 결론.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편한 건 남편인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덧붙이는 가시 돋친 한숨소리.
그러나 막상 아내에게 그런 힐난 비슷한 부러움을 받고 있자니 문득 억울해졌다. '나 혼자 휴가라'는 아내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자식들을 모두 멀리 떠나보낸 채 50일을 지내고 있는 내가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의 빈자리최근 대구에선 치과의사가 기러기 아빠로서의 삶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워낙 사회가 팍팍해 사건은 금방 묻히고 말았으나, 당시 난 아이를 이제 막 키우기 시작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 기사를 무심코 넘길 수 없었다.
치과의사라면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지위도 있는 직업인데, 무엇이 그를 자살로 몰아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나도 그와 같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자살을 생각하게 될까? 결혼 전 홀로 생활하는데 익숙했던 나도 외로움을 느낄까?
그리고 우연찮게 이어진 50일 간의 어설픈 기러기 아빠 생활.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따라 충분히 자살할 수 있다는 것. 기러기 아빠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