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 겉표지
상상의 숲
산행을 하다보면 초봄부터 초여름 무렵까지 특히 많은 애벌레들을 만나게 되는데, 좀 더 관심을 두고 살펴보면 같은 종류의 나무에는 같은 벌레로 보이는 애벌레가 살아가고 있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아가 몇 년을 두고 살펴보면 지난해 그 나무에서 봤던 그 애벌레를 올해 다시 그 나무에서 볼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잎에 함유한 독물질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는 노린재나무를 오히려 삶의 터전으로 삼아버린 뒤흰띠알락나방처럼 다른 곤충들 역시 자신만의 특별한 식물을 선택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지라 특정 식물과 그에 깃들여 살아가는 곤충을 알면 비슷해 보이는 애벌레가 어떤 곤충의 아기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특정 식물과 그에 깃들여 살아가는 곤충들의 생태나 신비로운 세계까지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상상의 숲 펴냄)은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고 말면 산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나무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살펴보거나 나아가 어떤 특성을 가진 어떤 나무인지 관심을 두고 살펴보게 되면 상상 이상의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나무와 그에 깃들여 사는 곤충들의 은밀한 관계들을 들려준다.
이야기는 모두 30꼭지, '싸움이든 공생이든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살아가는 곤충들과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전략과 아름다운 공생을 키가 작은 나무(조팝나무나 박쥐나무, 쥐똥나무, 병꽃나무 등)와 키 큰 나무(물푸레나무나 팽나무, 합다리나무 등), 그리고 덩굴나무(노박덩굴과 등칡, 청가시덩굴, 사위질빵 등)로 나눠 들려준다.
곤충은 꽃잎에 반사되는 자외선을 보고 찾아옵니다. 곤충의 눈에 노린재나무 꽃잎은 바깥쪽보다 안쪽이 더 강렬한 색으로 보입니다. 강렬한 색 부분이 자외선이 반사되는 부분이고, 바로 '꽃 안내판(허니 가이드 혹은 유인색소라고도 함)'이지요. 노린재나무 꽃은 꿀 안내판을 꽃 한가운데 그려 놓고 곤충들에게 먹을 것이 있다고 광고를 합니다. 또한 꿀 안내판을 따라가면 수술들이 노란 꽃가루를 머리에 이고 있지요. 노란색도 모든 곤충이 잘 알아보는 색으로 여겨지고 있어 자외선과 더불어 꽃을 찾는데 한 몫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잎이 우거진 숲에 꽃이 달랑 한 송이만 피어있다면? 그것도 팥알만 한 작은 꽃이? 곤충의 눈에 띄기란 하늘의 별따기죠. 그래서 노린재나무는 꽃자루 하나에 꽃을 수십 송이 달아(원추꽃차례) 멀리서 보면 커다란 꽃이 피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 <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에서저자는 2010년 <곤충의 밥상>을 시작으로 2011년에는 <곤충의 유토피아>, 2012년에는 <곤충 마음 야생화 마음>이란 책으로 곤충들의 흥미롭고 독특한 세계를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들려주고 있는 정부희 교수다.
참고로 <곤충의 밥상>과 <곤충의 유토피아>는 곤충들의 까다롭고 특별한 먹이 습성과 다양한 삶의 터전이 주제인 책. '더러운 벌레' 혹은 '해충'으로 보기 일쑤였던 곤충들의 특성들과 신기한 세계를 맘껏 만날 수 있어서 흠뻑 빠져들며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지금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주 펼쳐보는 그런 책이기도 하고.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곤충의 밥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성이 있어서 아무 곤충이나 쉽게 먹지 못하는 족도리풀 잎에만 알을 낳는다는 애호랑나비 이야기. 애호랑나비는 대략 18개의 알을 낳는데, 알에서 깨어난 형제 애벌레들끼리 먹이를 두고 싸우는 비극을 막고자 잎이 시원찮으면 알을 적게 낳는 등 족도리풀 잎의 상태에 따라 알의 개수를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게 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