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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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설 공주> 같은 동화를 읽은 어린이는 대부분 어떤 생각을 할까? 여자라면 동화 속 공주처럼 백마 탄 왕자를 만나 멋진 결혼식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꿈꿀 가능성이 높고, 남자라면 공주를 구해내고 영웅이 되어 덕분에 공주와 결혼도 하는 일거양득을 꿈꿀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인 박신영씨는 어릴 때부터 일반 아이들과는 다르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 궁금했다고 한다.
공주와 왕자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 서양 동화들을 읽으면서 어릴 적 나는 '유럽은 우리나라와 달리 나라도 많고 공주와 왕자도 참 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왕자는 왜 이리도 쉽게 공주에게 반할까? 한 나라의 왕자라는 사람이 저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싸돌아다녀도 되는 걸까? -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중책에는 그녀 자신이 어릴 때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지금과 달리 근대 이전의 유럽은 작은 나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예컨대 1648년에 독일은 무려 300여 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진 영방국이었으며 왕만이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귀족이나 기사들도 지방 영주가 되어 각각 자신의 영토를 다스렸다.
왕이 다스리면 왕국, 공작이 다스리면 공국, 백작이 다스리면 백국으로 불렀는데 이 영주의 자녀들은 모두가 왕자나 공주였던 셈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들에 후계자가 될 왕자가 많다면 문제가 생긴다. 영토를 분할하여 상속하면 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위를 계승하는 한 명의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알아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는 무공을 떨쳐 큰 나라에 용병대장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를 점령해 영주도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일 편하고 확실한 방법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왕국을 가지는 방법이었다. 즉, 나라를 상속받아 여왕이 될 이웃 나라의 외동 공주나 첫째 공주랑 결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왕자들은 조건이 좋은 공주를 찾아 이웃 나라의 궁정으로 가서 끊임없이 달콤한 구혼을 하거나 자신의 용맹을 자랑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또래의 아이들이 그저 동화 속 스토리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할 때에 박신영씨는 정말 별게 다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이 남다른 '궁금증' 때문에 박신영씨가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그때 궁금증을 많이 붙들고 있는 성격인 것 같아요.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경우도 7살인가 8살 때 읽었던 것 같은데, 하이디가 가는 프랑크푸르트라는 곳이 어딘지 궁금했어요. 왜 하이디는 산의 위 아래로 옮겨 다니며 양을 키울까? 하이디가 페터의 할머니에게 흰 빵을 갖다드리고 싶은데, 그 흰 빵의 의미가 뭘까? 뭐 이런 거 있잖아요.이런 궁금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커서 제가 딴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할 때 딱 떠올라요. 1989년에 롯데월드가 생겼잖아요. 거기에 제트코스터가 생겼는데 이름이 '프렌치 레볼루션'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걸 타면서 왜 이것이 프렌치 레볼루션일까, 그게 또 궁금하더라고요. 그게 당시 국내 최초로 뒤집어서 달렸거든요. 아! 뒤집어서 레볼루션(혁명)이구나 하면서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을 읽게 되는 거죠. 이런 사람이었어요. 후후후"하긴 숙명여대 국문학과 3학년 재학 때는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을 찾아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궁금증도 병이라 할 만하다. 그때 제주대 도서관장님이 기특하다고 커피도 타주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도 학점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단다. 교수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 제주도까지 가서 구해온 자료로 자신이 쓰고 싶은 것만 적고 있으니.
뻔히 알고 있던 동화 속 역사를 신선하게 '뒤집어 보기'책의 내용 중에서 필자의 인상에 가장 남았던 내용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부분이었다. 소시 적에 교과서에서 <마지막 수업>을 접하며 치기 어린 애국심으로 감동했던 나는 새로운 박신영씨의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대부분이 잘 알겠지만 <마지막 수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프란츠는 알자스 주에 사는 소년이다. 평소에 자주 지각을 해서 꾸지람을 듣던 프란츠는 웬일로 아메르 선생님이 오늘은 지각했다고 야단치지도 않고 교실 분위기도 엄숙해서 당황한다.
선생님은 이 수업이 마지막 수업임을 알린다.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하여 알자스 주와 로렌 주가 프로이센 영토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제 프랑스어 수업은 금지되고 내일부터 독일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목이 멘 채로 칠판에 "프랑스 만세!"라고 크게 쓰고 수업은 끝난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의 치욕을 당했던 우리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 및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그런 일반적인 시각이 큰 문제가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알자스로렌 지방은 예로부터 동프랑크 영토에 속하여 오랜 세월 독일 문화권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 17세기의 30년 전쟁 이후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프랑스 영토가 된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독일권 영토에 속해 있었기에 프랑스에 병합된 이후에도 일반 사람들은 독일어를 사용했으며 프랑스어는 도시 상류 계급 일부만 쓰는 언어였다.
18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의 전쟁으로 알자스의 대부분과 로렌의 동쪽이 독일에 병합될 때까지도 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인구는 전체의 1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요컨대 프랑스 입장에서는 프로이센과의 전쟁 이후 알자스로렌을 잃은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지방은 오랜 세월 독일 영토였으므로 프랑스가 '잃었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것이다.
만약 어떤 나라의 교과서에 일본과 조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서 일본어를 한참 가르쳤는데, 전쟁에서 패해 조선을 잃고 더 이상 조선 사람에게 일본어를 가르칠 수 없어 목이 메고 숙연해졌다는 내용 말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그런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우리 교과서에 실린 것이 바로 그런 격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극우 민족주의적 시각을 모든 국민이 교과서로 배우고 있던 셈이다.
그녀의 꿈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한국의 시오노 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