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한길사
하지만 우리는 시오노 나나미 책을 읽으면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그의 많은 책 중 대표서인 <로마인 이야기>에 국한해서 말해 보자. 우선 그의 책은 정통 사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통 사서는 역사적 팩트를 통해서 역사의 실체와 그 의미를 말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알 수 없는 사실은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섣부른 상상력은 금물이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는 그런 류의 사서가 아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팩트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다양한 상상력이 오히려 더 중요한 서술 방법이다. 사실 이런 상상력이 이 책에 없었다면 시오노 나나미의 오늘의 명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읽는 이들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다. 정통 사서는 상상을 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상상임을 밝히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매번 그런 고백을 하면서까지 책을 써나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실과 상상력 그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것이 <로마인 이야기>의 실체다. 그런 면에서 어느 대학이, 만일 서양역사 교과서로 이 책을 쓴다면,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실을 오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하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읽어야지 그 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경계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추구하는 가치가 대체로 "힘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될 것 같다. 그녀는 공공연히 카이사르를 사랑한다.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제정의 기초를 닦은 카이사르가 펼친 로마의 정책은 열이면 열 모두가 찬사의 대상이다. 그녀는 로마의 문화를 사랑한다. 로마가 제국화하면서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 로마가도, 수도, 건축물 등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로마의 제도, 법률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그녀에겐 로마제국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국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역사관은 은연중에 현대사에서 나타난 제국주의에도 묵시의 동조를 보낸다. 제국주의에 희생된 나라와 국민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 없고 그것을 오로지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보내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의 우익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한다. 본인은 이런 비판에 대하여 시인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시인 여부를 떠나, 이 점은 우리가 그의 책에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항이다.
로마는 길을 만들었고,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았다?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문명 예찬론자로 로마와 중국을 비교하면서 로마는 이민족을 향해 길을 만들었고, 중국은 이민족과의 사이에 방벽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로마문명을 개방성의 문명으로, 중국문명을 폐쇄성의 문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 선뜻 동조하기 어렵다. 나타난 현상으로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내용을 보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은 로마라는 조그만 도시가 팽창에 팽창을 거듭해 지중해 연안 전체를 그 깃발 아래에 놓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빅뱅과 같은 것이다. 로마라는 고도로 집적된 에너지원이 어느 순간 폭발하여 무수히 많은 별을 만들어 냈다는 말이다. 로마가도는 이 폭발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빛과 같은 존재였다. 로마라는 하나의 점이 폭발하여 수 백 개의 로마를 만들어냈고, 로마가도는 바로 그 원점인 로마와 또 다른 로마를 잇는 생명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