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말 안 들었다가 벽지만 찢어먹었습니다

선풍기 청소에 12시간... 고집 부리다 온 가족이 고생

등록 2013.05.27 11:21수정 2013.05.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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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진주에는 정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진주살이 13년 만에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입니다. 춥기도 참 추웠습니다. 잠깐 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 왔습니다. 웬만하면 6월 중순은 돼야 선풍기를 꺼냈는데 올해는 벌써 선풍기를 돌렸습니다. 특히 막둥이는 더위를 참지 못합니다.


"아빠 더워요. 선풍기 돌리면 안 돼요?"
"벌써?"
"더우니까 선풍기 돌려야죠."

"이 더위에 선풍기 돌리면 7월, 8월 되면 어떻게 할 거니?"
"아빠 부탁이에요. 나는 더위는 못 참겠어요."


결국 막둥이 성화에 못 이겨 선풍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천장에 달린 선풍기 청소를 했습니다. 천장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테이블 위에 의자 하나를 놓아야 겨우 선풍기에 닿습니다. 청소할 때마다 다리가 후들후들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풍기날개는 돌아가는데 회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날개만 청소하고 내려올까 생각하다가 이참에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날개 청소만 하라고 했습니다.

a  교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를 청소했습니다. 하지만 밤을 새워가며 청소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를 청소했습니다. 하지만 밤을 새워가며 청소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김동수


"선풍기 회전이 안 되는데, 고칠까?"
"그냥 내려오세요. 고치기는 무엇을 고쳐요."
"그래도 이왕 한 것 고쳐야겠다."

"또 일 낸다, 일 내."
"일은 무슨 일을 내요?"
"두고 보세요. 분명 당신 오늘은 선풍기 못 고쳐요."
"내 실력을 모르는 모양이구먼."
"당신 실력을 아니까. 일 낸다고 하죠."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내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선풍기를 천장에서 완전히 떼어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다시 천장에 매달았습니다. 그런데 고정판을 나사로 박아야 하는데 박히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굴렸습니다. 나사를 못 박으면 실리콘으로 고정판을 천장에 붙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보 실리콘 좀 사오세요."
"실리콘을 어디에 쓰려구요?"
"실리콘을 고정판에 발라 천장에 매달면 될 것 같아요."

"예? 벽지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벽지가 찢어져요."
"일단 한 번 사오세요."



아내가 실리콘을 사러 간 사이 뒤늦게 석유 스토브 청소를 했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 모두를 따뜻하게 해준 석유 스토브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청소는 못해도 석유 스토브 청소를 할 수 있다는 막둥이가 나섰습니다.

a  선풍기 청소와 석유 난로 청소를 같은 날 했습니다. 막둥이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선풍기 청소와 석유 난로 청소를 같은 날 했습니다. 막둥이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 김동수


"아빠 오늘은 내가 석유 스토브 청소할게요."
"막둥이가 할 수 있겠니?"

"그럼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막둥이가 청소할 때 아빠는 놀아야겠네. 석유 스토브까지 청소하고 막둥이 다 컸다."

"아빠만큼 키가 크면 저도 선풍기 청소 할 게요."
"당연하지. 막둥이가 선풍기 청소도 해야지."
"아빠 전기 배선은 제가 잘 못하겠어요."
"전기 배선은 아빠가 해야지."



a  석유 스토브 전기배선은 할 수 있습니다.

석유 스토브 전기배선은 할 수 있습니다. ⓒ 김동수


a  석유난로쯤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석유난로쯤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 김동수


오랜만에 힘도 썼습니다. 석유 스토브를 들었습니다. 아빠가 석유 스토브를 가볍게 들자 막둥이는 감탄했습니다.

"우리 아빠 최고 최고예요!"
"아빠 힘세지?"
"응 정말 아빠 대단해요. 어떻게 무거운 것을 들어요?"
"막둥이도 나중에 힘 세지면 석유 스토브 들어 옮겨야 해."
"알았어요."


석유 스토브를 옮기자 아내가 실리콘을 사왔습니다. 고정판에 실리콘을 발라 천장에 붙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고정판이 잘 붙었어요."
"그런데 선풍기를 매달면 떨어져요."
"그럼 실리콘이 잘 굳도록 내일 선풍기를 매달죠."
"실리콘이 굳어도 벽지는 찢어질 수밖에 없어요."
"내일 아침 되면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거예요."
"……"

아내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어제(26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선풍기를 달았습니다. 그 순간 벽지가 '쭉' 하면서 찢어졌습니다.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습니다. 참 독자님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다행입니다.

"괜찮으세요?"
"……"
"다치지 않았어요?"
"응 괜찮아요. 벽지만 찢어졌어요."
"당신이 안 다쳤으면 괜찮아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고정판에 나사를 박을 수밖에."


드디어 선풍기를 천장에 매달았습니다. 아내 말 안 들었다가 선풍기 청소하는 데 12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더운 여름 땀 뻘뻘 흘렸지만 제자리입니다. 머리가 무식하면 몸이 고생합니다. 그것도 혼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고생합니다.
#선풍기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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