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1월 1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차해도 지회장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윤성효
그 뒤로도 희망버스는 네 번 더 움직였다. 한 번은 서울로, 세 번은 다시 영도로.
최루액이 난사된 봉래사거리에는 무지개깃발이 세워졌고 '한진중 프리덤'이 울려 퍼졌다. 조남호 회장은 국회청문회에 불려 나갔고 누군가 써준 대로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다소 어눌하게, 호소하는 어투로' 김주익과 곽재규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희망버스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생겼고 이소선 어머니(전태일의 어머니)는 영정 속 모습으로 크레인을 찾았다. 크레인 위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떴고 전기는 끊겼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크레인 위에서 내려온 부재자투표 봉투와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철창에 매달려 투표한 해고자들의 표가 합쳐져 노동조합 지도부 선거가 치러졌다. 천만다행으로 정리해고투쟁위원회의 공동대표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에 당선됐다. 하루하루 넘어가던 숫자판이 '309일'을 가리키던 날, 김진숙 지도위원은 약속한 대로 두 발로 걸어 내려왔고, 조합원들은 다시 울었다.
사측이 복직을 약속한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조합원들은 힘 빠지지 않고 잘 버텼고 복직도 해냈다. 사측은 복직을 빌미로 해고자들을 회유하는 동시에 금속노조 지회를 압박해 조합원들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지리한 싸움의 연속.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고, 의리있고 자존심있는 노동자 최강서는 열사가 됐다. 그리고 2013년 6월 현재 200여 명 남짓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은 공장 안팎에서 사측의 회유와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700여 명의 사측노조 조합원들은 휴업을 빌미로 사측에 저당 잡혀있다.
한진중공업 투쟁을 기록한 매체는 이 책이 아니어도 많다. 이 책의 가치는 그간 다뤄지지 않은 이면을 조합원들과 희망버스 승객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한계는 더 많은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단언컨대, 한진중공업 투쟁은 오롯이 푸른 옷의 스머프들 몫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SNS를 통해 많은 말과 마음이 있었지만 '연대 온 이들'이 가고 난 빈자리를 메우는 건 늘 스머프들의 몫이었다. 훈수를 두는 '한가닥 하던 동지'부터 철없이 시비 거는 '연대 동지'를 감당하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고 버텨내는 것은 온전하게 조합원들의 몫이었다.
스머프들의 얼굴, 하나하나 담겼어야 했다한진중공업 투쟁의 기록이기에, 투쟁한 그들이 더 드러나야 했다. 인터뷰 대상이 된 몇몇뿐 아니라 정투위 사무실과 천막에 언제고 가면 앉아있던 그 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담겼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일 한진중공업 투쟁의 한복판에 스머프들이 덩그러니 서 있다. 사측에서 휴업을 시키는 바람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며 사측의 탄압 속에서 민주노조를 지키고 서 있다. 최강서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최강서는 연대온 이들에게 습관처럼 "오지마이소, 빚지는 것도 싫고 이거 다 갚을 자신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스머프들에게 준 것보다 돌려받은 것이 많은, 빚진 희망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미완의 르포르타주. 한진중공업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작업복을 입고 선 그들이 종이배가 아니라 진짜 배를 만들게 하고파 시작한 처절한 '사랑'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소원해진 사랑을 각인시키듯 희망버스와 스머프들을 떠올리게 한다. 뜨거웠던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다시 옆에 설 수 있도록.
종이배를 접는 시간 -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허소희 외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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