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참사' 자초한 박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서평] 박남춘 대표집필한 <대통령의 인사>

등록 2013.06.08 10:06수정 2013.06.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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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혁명의 불꽃이 타오를 때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독재자 이승만 앞에서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라고 했고, 유신독재가 종말로 향해 치닫던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은 독재자 박정희 앞에서 "캄보디아에서는 300만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가 100만 명이나 200만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다 알고 있다.

최인규와 차지철이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직언했다면....


만약 최인규가 타오르는 혁명의 불꽃을 보고 "각하 이제 하야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직언하고, 차지철도 "각하 민심은 천심입니다. 물러나십시오"라는 직언은 못해도, 최소한 김재규가 부산에서 보고 들은 천심에 동의했다면 역사는 그들을 달리 평가했을 것이다. 최인규와 차지철은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에 자신을 맞긴 것이 아니라 '독재자'에게 자신을 걸었다. 두 독재자는 최인규와 차지철만 아니라 자기에게 충성하는 이들을 뽑았다. 이승만-박정희 두 정부는 아니 두 정권은 민주공화국 인사시스템이 아니었다.

최고권력자와 충성파들이 밀실에서 뽑은 고위공직자가 국가와 인민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을 뽑아준 이를 위해 충성할 밖에 없다. 결과는 인사가 망사가 되고, 참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인사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사적 충성이 아니라 나라와 시민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뽑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첩'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공직자를 뽑으면 된다.

a  대통령의 인사

대통령의 인사 ⓒ 책보세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을 거쳐 인사제도비서관·인사관리비서관·인사수석비서관 등 주로 인사참모를 지낸 박남춘 민주당 의원(인천남동갑)이 대표집필한 <대통령의 인사>(책보세)는  "이명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대통령의 인사'가 잇달아 '인사 참사'를 빚으면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가운데 '대통령의 인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참여정부 인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은 '인사실패'였다.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낙마한 박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중 무려 14명이나 되자 '낙무축구팀'을 만들 수 있다는 비아냥을 들었고, 박근혜 '1호인사' 윤창준 전 청와대 대변인 사태는 '인사참사'였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100일은 '밀봉'으로 시작해서 '그랩(grab)'으로 끝난 인사참사였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수첩' 중심 인사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인사를 수첩에서 공적시스템으로 바꾸지 않으면 제2 윤창중은 줄을 서서 기다릴 것이다.


공직인사는 '사적수첩'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세종을 '대왕'이라 부른다. 세종은 사람을 볼 줄을 알았다. 인재를 쓸 수 알았다는 말이다. 예조판서 허조는 세종에게 사람을 어떻게 써야 할지 이렇게 조언했다.


"어진 인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재를 얻으면 편안해야 하며,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이 있으면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전하께서 대신을 선택하여 육조의 장으 삼으신 이상, 책임을 지워 성취토록 하실 것이 마땅하며,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하여 신하의 일까지 하시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세종실록> 제3권, 세종 1년 1월 11일 기사" (책 12쪽)

세종은 허조 말을 들었다. 세종이 대왕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남긴 업적 때문이다. 그런데 세종 혼자하지 않았다. 사람을 제대로 쓴 것이다. 특히 허조 말 중에 "몸소 자잘한 일에 관여하여 신하의 일까지 하지 말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깨알지시'로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장관, 차관 아니 국장급 공직자가 할 일도 직접 챙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공직자들이 하는 일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조는 말했다. 임명했으면 맡기라고 했다.

임명권자가 공직자를 어떻게 신뢰하는 길은 수첩에서 나오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사태에 대해 "전문성도 검증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절차를 밟았는데 '그런 인물이었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괜히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윤창중 임명 때부터 대통령 자신만 빼고, 대부분 반대했다. 야당만 아니라 새누리당 그리고 진보언론만 아니라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도 비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밀어붙였다. 원인은 수첩이다. 공적시스템이 무너진 결과는 참사로 귀결됐다. 공직인사는 수첩이 아닌 공적시스템으로 해야 함을 '박근혜식 인사참사'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 의무... 유능한 인재 키우기

박 대통령은 그 어떤 대통령보다 '국가'와 '국민'을 강조한다.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을 할정도다. 대한민국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공직시스템을 통해 인사를 찾고, 배분해야 한다. 이것이 되려면 대통령이 사람을 보는 지혜와 혜안이 있어야 한다. 이는 의무이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참정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선거에서 표방했던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책임감 있게 이끌어가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로서 지역사회 통합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래를 위해 유능한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것도 대통령의 의무이다." (책 48쪽)

노무현은 대통령 의무인 미래를 위한 유능한 인재를 키워내는 혜안을 가졌다. 그 중 하나가 '적소적재'(適所適材)였다. '적재적소(適材適所)'는 익숙한 말이지만, 적소적재는 생경하다.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는 적재적소가 인재를 쓰는 방법으로 알고 있지만 노무현은 달랐다.

노무현 인사철학은 "어떤 일을 맡기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인물을 그 일에 맞는 자리에 앉혀 쓴다"는 적소적재였다. "그동안의 잘못된 통념을 넘어 인사문제를 핵심을 찌른 혜안"이었던 셈이다.

대통령 권한 내려놓으니 오히려 권한 강화돼

적소적재를 하려면 인사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인사는 청와대 참모조차 잘 모르는 '밀봉인사'였다. 노무현은 집권하자 마자 '인사추천위원회의' 설치를 지시했다.

"인사를 할 때는 일반 참모수석들이 모여서 하십시오. 특별 참모들은 해당 분야의 인사를 할 때 참여하십시오. 인사보좌관이 자료를 준비해 비서실장 주재로 인사추천위원회의를 마쳐주십시오. 그 결과를 가지고 인사보좌관이 와서 보고를 하되, 선택의 과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주십시오." (책 104쪽)

인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는 생각이 젖은 이들이 보기에 노무현식 인사정책은 있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신의 권한을 내주었다. 노무현은 "인사추천위원회의가 대통령 권한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장치"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참모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그대로 임명하면 참모진에 줄을 대는 이들이 분명있다. 인사가 공정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참모진들이 공적기구를 통해 해당 인사에 대한 검증을 공론화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하면 "인사가 왜곡되는 일도, 특정 실세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집단 논의체제인 인사추천위원회의가 대통령의 오류를 걸러내주고, 극소수 측근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 권한이 남용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노무현식 인사정책이었다. 참모들도 잘 모른다는 박근혜식 인사와 참 다르다.

'낙마축구팀'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사참사가 일어난 이유는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자 "사적인 부분까지 공격하며 가족까지 검증하는데 이러면 좋은 인재들이 인사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덕성은 보조수단이 아닌 리더십 핵심 요소

하지만 검증을 철저히 했다면 김용준 후보자가 공직자 자격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참여정부는 "병역에서부터 부동산, 음주운전, 탈세에 이르기까지 공직자의 비위, 비리 사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혹독한 인사검증을 했다. 얼마나 혹독했으면 "제발 저는 빼주세요"라는 '역 인사 청탁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도덕성에 흠결있는 사람 중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공직자가 분명있다. 하지만 도덕성은 보조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도덕성은 공직자의 자질 판단에서 보조적,부수적 잣대가 아니라 업무수행 능력과 함께 리더십을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도 떳떳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리더십 또한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전임자 인사기준을 팽개친 것이다. 결과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아니라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하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손가락 마비로 병역면제를 받았고, 부인이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2000년 16대 총선에서 지역감정 조장 발언은 국민대통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사였다.

"대통령이 책임지겠습니다."... 인사시스템 완성은 '사람'(대통령)

자신이 임명해 줄줄이 낙마해도 국민 앞에 사과하지 않았다. 윤창중 사태도 자신이 인사를 잘 못해 일어난 사태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무현은 "각료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총체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했다. 각료와 참모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사추천위원회의를 통해 임명된 인사라고 해도 최종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당연히 공직자가 도덕성과 업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받아야 할 책임의식다.

물론 참여정부가 인사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2005년 1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서울대 총장시절 판공비 과다사용, 사외이사 겸직, 장남 병역 의혹과 부정특례입학, 재산은폐 의혹, 따위가 쏟아졌다. 결국 이 장관은 임명 4일만에 물러나 '최단명' 교육부총리이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기준 파동 직후 국회인사청문회 대상을 장관까지 확대했다. 비싼 대가 였지만 노무현은 공직자 인사를 더 철저히 하는 계기로 삼은 것이다.

당시 국무위원까지 검증 대상과 법제화를 제안했던 이가 바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 만약 노무현 정부 인사시스템을 도입해 더 발전시켰다면 '낙마축구팀'과 '윤창중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 박정부 5년 내내와 박근혜 정부 조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길은 없다. 공직인사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인사 시스템 완성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인사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사를 하는 사람 스스로가 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지켜가야 한다. 인사권자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잉를 바라보는 정치권이나 국민도 믿고 따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대통령의 인사> 박남춘 대표집필 ㅣ 책보세 펴냄 17000원

대통령의 인사 - 밀실에서 광장으로, 참여정부의 인사혁명

박남춘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3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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