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에 박힌 꿈을 가진 아이들, 혹은 그것조차 모르겠다 하는 아이들이 저마도 갑이 되고 을이 되어 을은 갑이 되기 위해 갑은 더 확실한 갑이 되기 위해 버둥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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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년째 일하고 있는 학원이 있습니다. 아이가 학원에 빠지지 않았나 정도만 확인하는 부모님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단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단과 학원에서 영어나 수학 한 과목을 듣는 돈으로 국어, 사회, 과학을 함께 공부하는 종합 학원입니다.
아이들이 가끔 어느 학원에는 입구에 사람(데스크의 상담선생님을 말합니다)이 앉아 있다더라, 어느 학원은 학원비가 한 과목에 얼마라더라 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고시 공부 하다 그만두고 10년째 학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은 우리 학원도 상위권을 휩쓸던 아이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노라 자주 회상하십니다.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 집이 좀 산다 하는 아이들은 학원 밀집 지역에 있는 프랜차이즈 학원이나 단과학원으로 가고 우리 학원은 중하위권 아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원장님의 진단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니기 시작해 지금 중학교 3학년인 아이들도 꽤 됩니다.
원장님의 삶은 그냥 학원입니다. 학원이 작다 보니 초중등부 수학 수업은 직접 하십니다. 주말도 없이 학원에 매여 있지요. '나머지'에 걸려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야 하는 아이들은 원장님 욕을 랩처럼 해대는데(저도 격하게 맞장구를 쳐주지만, "그래도 나쁜 분은 아니야"로 마무리 해주지요), 그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최대한 좋은 성적을 만들어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는 것이 아이들 미래를 위한 최선을 방법이라 생각 하시는 분이지요. 오로지 그것 밖에 몰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맞다 믿고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입니다. 셈을 안 하시기야 하겠냐만 아이들을 돈으로만 보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열심히 챙겨 준다 하더라'는, 순전히 부모들 입소문으로 아이들은 꾸준히 있는 편입니다.
나는 을이면서 갑인 존재입니다온갖 '갑' 원장들이 다 있다지만 저는 좋은 원장을 만나 급여 미뤄지는 일이 없었고 시험기간에는 보충비까지 받아가며 일합니다. 자식 나이쯤 되는 저에게 슬쩍이라도 한 번 말을 놓으신 적도 없지요. 간혹 옆 교실에 앉아 제 수업을 엿듣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정도야 '원장님 귀엽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입시경쟁을 부추긴 정부가 사교육을 사회악으로 칭하는 사회입니다. 진짜 갑들은 따로 있을 텐데요. 그들은 사교육 종사자 전체를 '을'로 만들어 들었다 놨다 합니다. 사교육 안에도 분명한 양극화가 있습니다. 사교육 종사자들이 엄연한 현실에 대책 없이 때려 잡자니요.
어느 학원이 문을 닫았다더라, 선행학습 금지법 이야기가 나오더라 하면 원장님은 속이 타지요. 이제와 다른 어떤 일을 하실 수 있겠어요? 저는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원에서 나온 선생님께 과외를 받았습니다. 방과 후에 학교 교실에서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연결해 준 것이지요.
의식하든 안 하든 나는 을이면서 갑인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은 '갑'일 거예요. 직장에서 을이던 사람이 퇴근 후에는 제대로 갑 행세를 해대기도 하지요. 친구들이 일하면서 '고객'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들으면 다음부턴 나도 조심하게 되죠. 내 돈 낸다고 '갑' 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오늘 사람 하나 '을' 만드는데 한몫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그 정도지요. 내 테두리 안에서 단도리.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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