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kV 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 국회 상경시위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인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주민들이 국회를 향해 절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권우성
최고 기온이 31도였던 21일 오후, 열기가 후끈 올라오는 보도블록 위에서 칠순 팔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연신 절을 하고 있었다. 경남 밀양에서 온 노인들이 절을 한 방향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열렸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밀양 주민 140여명이 버스 4대에 나눠타고 서울 국회 앞까지 온 건 이날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송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줄이면 '송전탑보상법' 혹은 밀양법이라고도 불리는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15명씩 돌아가면서 국회 정문 앞에서 절을 했다.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앞에서 국회 앞으로 가려던 주민들을 경찰이 막아섰고, 경찰은 '15명씩만 가게 해주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할 수 없이 15명씩 돌아가며 국회 앞으로 걸어가 '릴레이 30배'로 밀양법 저지 의지를 표시하기로 했다.
오후 2시 30분께 릴레이 30배가 시작되기 직전 한 80대 할머니가 쓰러져서 통곡했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내 고향 내 집 지킬라는 게 무슨 죄고. 냐는 아무 죄도 안 지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노"라는 흐느낌에 노인들도 활동가들도 아무런 말을 못했다.
다른 주민은 절을 하며 "송전탑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절을 하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는 주민도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이들은 할 수 있는 만큼만 절을 하고 앉아서 한숨만 쉬기도 했다. 국회 상임위가 이 법안을 어떻게 한다는 결정을 내릴 때까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였다.
오후 3시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밀양법 처리를 유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주민들은 서로 얼싸 안았다. 방금 전만 해도 억울함에 흐르던 눈물이 감격의 눈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절은 하지 않아도 됐고, 표정이 밝아진 주민들은 그제야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주문했다. "죽자카면 살고, 살라카면 죽는데이" 하는 즐거운 목소리가 주민들 사이에 울려퍼졌다.
이날 상임위 회의를 참관한 밀양 주민 대표 2명은 주민들과 합류한 자리에서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과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을 법안 보류에 공이 있다고 칭찬했다. 밀양 송전탑 저지에 나선 주민들의 이날 상경투쟁은 '해피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