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값 깎아달라는 아내, 일본인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일본 가는 길 104] 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 쓰보야(壺屋) 도자기마을 기행

등록 2013.06.25 11:12수정 2013.06.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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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沖繩) 나하(那覇)의 번화가인 고쿠사이도리(國際通り)에서 남쪽의 헤이와도리(平和通り)를 10분 정도 지나가자 쓰보야야치문도리(壺屋やちむん通り)의 서쪽 입구가 나온다.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고쿠사이도리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인데도 이 거리는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거리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한적한 도로의 양편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동네, 쓰보야 도자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쓰보야 도자기 거리 오키나와의 도자기 공방들과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쓰보야 도자기 거리오키나와의 도자기 공방들과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노시경

도자기 굽는 쓰보야 마을

이 마을은 야치문(やちむん), 즉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고향이다. 1682년에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왕명에 의해 오키나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던 도요지의 공방과 가마들이 이 쓰보야에 모여 통합되었다.

이후에도 쓰보야 도자기 마을은 왕조의 꾸준한 지원을 받아 도자기 굽는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도자기 마을로서의 자랑스런 역사를 간직해온 이 마을에는 현재도 약 20곳의 공방이 쓰보야 도자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현재 오키나와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자기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다양한 문양과 색상을 자랑하는 도자기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도자기 마을에는 도예 공방과 함께 도자기를 파는 판매점, 갤러리 등 약 40여개나 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이쯤 되면 어느 가게부터 들르고 어느 공방에 들러야 될지 고민이 시작되게 마련이다.

이 거리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상업적으로 계획된 공간은 아니기에 나는 발길이 닿는 순서대로 이 꾸밈 없는 공간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도자기 마니아인 아내는 이미 앞장서 걸으며 도자기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녹색의 담장 아래로 가지를 뻗은 나무의 노란 꽃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담장 위의 꽃 쓰보야 도자기 거리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이다.
담장 위의 꽃쓰보야 도자기 거리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이다. 노시경

야치문 거리는 총길이가 500m에 이르는데 거리의 바닥이 운치가 있다. 1998년에 이 길 바닥은 오키나와에서 풍부한 류큐 석회암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는 석회암이 많고 오랜 집과 담에는 온통 이 석회암이 장식되는데, 전통의 거리를 단장하면서 바닥을 전통 석회암으로 모두 포장한 것이다.

아내는 구멍이 많이 뚫린 돌을 보고 제주도의 현무암을 잠시 떠올렸지만 나는 이 돌이 석회암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무튼 이 길은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아스팔트 길보다도 석회암으로 만든 돌길이 훨씬 운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사람들이다.


쓰보야 공예점 작은 공방들이 저마다의 도자기 실력을 자랑한다.
쓰보야 공예점작은 공방들이 저마다의 도자기 실력을 자랑한다. 노시경

우리는 대량생산으로 똑같은 도자기들을 찍어내는 작은 가게들 몇 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눈에 띌 정도로 정성이 담긴 도자기를 전시하는 첫 가게를 만나게 되었다. 이 도자기 가게에서는 밖으로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그곳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식기 도자기들을 만났다. 도자기 안에서 붉은 색 물고기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어울리고 있었다. 최근에 도자기 공부를 했던 아내는 오키나와 도자기들의 개성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쓰보야 도자기 질감이 생동감 넘친다.
쓰보야 도자기질감이 생동감 넘친다. 노시경

현대적이고 편안한 느낌의 오키나와 도자기

오키나와의 도자기들은 소박하고 간단한 듯 하면서도 참 예쁘다. 일본 본토의 도자기들처럼 깔끔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더 현대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300년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쓰보야 도자기의 생동감 넘치는 질감은 참 특징적이다. 이 도자기들의 이러한 특징은 이곳이 일본 본토와 다른 독자적 문화를 창조했던 류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도자기 그릇 몇 개를 샀다.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여러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접시 도자기를 샀다. 주인 아주머니는 도자기가 깨질까봐 아주 조심조심 포장을 하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신문지가 포장지로 요긴하게 쓰인다.

옆에 있던 아내가 예상치 않게 가게주인 아주머니에게 도자기를 여러 개 샀으니 할인을 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친절했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은 본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해 주겠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그릇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할인을 해주겠다고 한다. 나는 가격이 표시되어 판매되는 도자기가 정찰제로 유명한 일본에서 할인이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런 일본에서 할인해 달라고 우기는 아내도 더욱 웃겼다.

그런데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현금으로 내야만 할인이 가능하고 카드로 결제하면 원래 가격을 받겠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일본여행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현금 우대 가게를 만나면서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는 오키나와 도자기를 사면서 일본 지폐 현금을 사용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계속 여행하면서 보니 오키나와는 시골 쪽으로 들어갈수록 신용카드를 받지 않은 곳이 많았다. 이 도자기 가게에서의 현금 사용은 오키나와 여행 내내 엔화 현금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사실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쓰보야 도자기마을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이 남긴 전통 도자기 굽는 법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오키나와에 흩어져 있던 자기 굽는 가마가 조선인 도공들의 도예법을 익혔다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사실이다.

이는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 본토도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공들이 가장 많이 끌려간 곳이 오키나와에서 북단으로 이어지는 규슈(九州)이기 때문에 규슈에 상륙한 조선의 선진 도자기 문화는 바다를 따라 오키나와로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쓰보야의 도자기들은 왠지 더욱 각별하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일본 본토의 도자기들이 화려하고 큰 형태로 꽃을 피웠지만 오키나와 도자기는 단순하면서도 작고 현대적인 모습이 조선의 도자기와 더 닮아 있다.

훼누가마 언덕 위의 초록색 담장 위에 자리잡은 공방이자 카페이다.
훼누가마언덕 위의 초록색 담장 위에 자리잡은 공방이자 카페이다. 노시경

돌길을 걷다보니 오키나와현의 문화재로 지정된 훼누가마(ふぇ-ぬかま)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도자기 마을 한복판의 언덕 위에 있으니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곳이다. 훼누가마는 경사지에 만들어진 가마를 뜻하는 이름이다.

나하 시내에서 흔치 않은 목조 건물인데 언덕의 초록빛 담장 위에 들어서 있고 자그마한 전통찻집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언덕의 가게를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도자기로 만든 험상궂은 시사(シ-サ-) 한 마리가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다락방 같은 아늑한 가게 안에는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만 있고 실내에는 온통 도자기들의 향연이다.

도예작품 도공이 심혈을 기울인 명품을 만나볼 수 있다.
도예작품도공이 심혈을 기울인 명품을 만나볼 수 있다. 노시경

도자기 마을의 도자기 가게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키나와의 도공들이 빚은 도자기들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각 가게마다 다른 장인들이 만든 차이가 조금씩 느껴진다. 불과 몇 천원, 몇 만 원하는 싼 도자기도 많지만 100만 원에 달하는 도자기는 누가 봐도 명품이다. 아내는 수초 사이로 노니는 물고기가 그려진 작품을 보며 감탄하고 있다. 이 명품 도자기는 이 공방의 대표작임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도예상 수상 이 가게는 오키나와 전통 도자기로 수상한 도공의 가게이다.
도예상 수상이 가게는 오키나와 전통 도자기로 수상한 도공의 가게이다.노시경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아내는 일본 가게에서 가게 주인에게 말 걸기를 잘 한다. 아내는 가게 주인에게 도자기들이 예쁘다며 이 도자기들을 직접 만들었느냐고 물어본다. 도자기 작품 뒤에 이 가게가 실린 신문 기사가 자랑스럽게 스크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사진 속의 젊은 여성 도공은 가게를 운영하는 아가씨의 친언니였다. 주인 아가씨에게 이 가게 도자기의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너무나 자랑스러워한다. 칭찬하고 칭찬받기를 즐기는 일본 사람에게 외국사람인 한국 사람이 거듭 칭찬을 하고 있으니 더욱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귀여운 시사 재난을 막아주는 시사가 이곳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되었다.
귀여운 시사재난을 막아주는 시사가 이곳에서는 귀여운 캐릭터가 되었다. 노시경

입을 벌리고 있는 시사가 수놈, 입을 다물고 있는 시사가 암놈

오키나와 어디를 가도 보이는 동물 시사는 쓰보야 마을에서도 온갖 다양한 모습과 크기를 드러낸다. 이 도자기 마을의 인상적인 붉은 기와지붕 위에는 도공들이 빚었을 환상 속의 동물 시사가 다양한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시사는 익살스러우면서도 각기 개성이 넘친다.

도자기 공방에서도 정말 수많은 시사들을 만날 수 있다. 가게의 도자기 시사는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띠게 할 정도로 익살스러운가 하면 악귀를 잡아먹을 정도로 사나운 눈길을 부라리고 있다.

쓰보야에서 도자기 굽는 곳은 어디든지 견학이 가능하고 마음에 드는 도자기들은 바로 구입할 수도 있다.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공방이 보여서 들어가 보았더니 이름부터 시사공방(シ-サ-工房)이다.

시사는 류큐 왕국 당시에 슈리성의 성문과 왕·귀족의 무덤, 전통 사찰, 신사 등에만 설치되어 왔지만, 후에 시사가 민간에서도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을 입구와 돌담, 민가의 지붕 등에 설치되어 현재와 같은 시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시사 공방에서는 이 시사를 다양한 크기, 그리고 온갖 개성적인 모습으로 빚고 있다. 가게 앞에서 직접 도공이 만드는 시사를 보고 있으니 구경하는 재미가 각별하다.

시사공방 아직 유약을 바르지 않은 시사는 벌거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사공방아직 유약을 바르지 않은 시사는 벌거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시경

시사공방에는 오키나와의 고운 태토를 반죽하는 도공이 있고, 그 옆의 도공은 태토를 빚어 시사를 만들고 있다. 화려한 색상으로 덧칠되는 시사는 아직 벌거숭이 같은 갈색만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직 굳지 않은 시사의 엉덩이는 말랑말랑하고 윤기가 있다. 시사를 공장에서 찍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모두 수공예로 만들고 있었다. 시사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정성 들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키나와의 대표 캐릭터 '시사'는 더욱 발전하고 사랑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보야야치문도리가 끝나는 남단까지 걸어가니 쓰보야 마을을 알려주는 도자기 안내도가 서 있다. 쓰보야 마을의 여행을 남쪽에서부터 시작하면 이곳이 여행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쓰보야 도자기 마을 안내도 옆에는 커다란 시사 2마리가 앉아 있다.

오른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시사가 수놈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시사는 암놈이다. 시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마귀를 내쫓고 복을 불러오는 의미이고, 시사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나쁜 일은 들어오지 말고 행복은 놓치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전설의 동물 이야기 속에 암수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으니 오키나와 인들의 삶의 철학은 상당한 깊이가 있다. 이들은 암수가 조화되어야 세상이 편안하다는 이치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쓰보야 시사 수놈은 입을 벌리고 있고 암놈은 입을 다물고 있다.
쓰보야 시사수놈은 입을 벌리고 있고 암놈은 입을 다물고 있다.노시경

붉은 기와지붕과 돌담 속에 많은 도자기 공방과 가게들을 이곳저곳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오키나와 도자기의 잔잔한 매력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쓰보야 도자기 마을 자체도 참 아담하면서도 예쁘다.

이 도자기 마을은 마치 나하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한 시골마을로 들어 온 것 같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일본도 미국도 아닌 류큐 안으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 것이다. 고쿠사이도리에서 미국을 느끼고 헤이와도리에서 일본을 경험했다면 이 쓰보야 도자기 마을은 류큐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내는 쓰보야 도자기 마을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한 가게에서 도자기 접시를 몇 개 더 샀다. 경제적으로는 부담이지만 귀국해서는 항상 아내의 선택이 옳았던 경험이 많아서 나는 아내에게 사고 싶은 것은 사자고 했다.

쓰보야 도자기 마을의 끝에 다다르니 내 양손에는 아내와 함께 산 식기 도자기들이 들려 있었다. 구입한 도자기 봉투의 손잡이를 손목에 걸고 사진을 찍으려니 불편하기도 하다. 도자기를 사서 들고 다니면 나하에서의 오후 일정이 아무래도 힘들어질 것 같다. 결국 나와 아내는 짐을 놔두기 위해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아내와 같이 다니면 항상 생각지 못했던 여행의 변수들이 생기고 나는 여행의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오키나와의 전통문화를 접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큰 길의 혼잡함에서 조금 벗어나니 작은 골목길이 나오고, 골목길에는 옛 류큐의 차분한 아름다움이 눈 앞에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쓰보야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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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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