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정조사 촉구민주당 의원들이 25일 오후 국회 본관 계단에서 국정원 대선개입사태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며 김한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우성
국정원이 무단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여의도에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세간의 시선은 3개월여의 파행 끝에 25일 오전 10시 열릴 예정인 국회 정보위로 쏠렸다. 검찰 수사로 드러난 국정원의 불법 정치·선거개입 사건은 물론, NLL 회의록 열람·공개를 둘러싼 여야 간 격돌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날(24일) 회의록 공개를 진두지휘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회의에 참석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일치단결'해 전장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주당이 내부 균열 조짐을 보였다. 25일 오전 9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를 둘러싸고 민주당 의원들의 대응 방안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쪽은 이날 오후 2시에 열릴 본회의 보이콧을 비롯해 국정원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 시한인 26일까지 연좌농성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은수미 의원은 "본회의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무슨 개새끼냐. 목줄 잡고 들어간다고 들어가야 하느냐, 저들은 살인을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민생 입법'을 놓을 수 없으니, 본회의나 상임위 일정에는 참석하되 국정원 사건 대응을 함께 가져가자는 입장을 내놨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의견차는 2시간여의 토론에도 끝내 좁혀 지지 않았고, 의원총회는 오후 1시 30분 비공개 회의를 예고한 채 중단됐다.
오후 1시 2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온 민주당 여성의원 15명이 국회 본관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계단에는 "새누리당 국정조사 응하라,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입장 밝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깔렸다. 여성 의원들은 계단에 앉아 "국정조사 즉각 실시하라", "국정조사 외면한 새누리당 각성하라"고 구호를 외쳤고, 지나가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향해 "약속을 지키세요"라고 다그쳤다.
오후 1시 35분 경,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김한길 대표가 여성의원들을 향해 "의총 안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 의원이 "이게 의총이에요?"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오전 의원총회에서 '본회의 사수'를 주장한 온건파 의원들에 대한 불만을 김 대표에게 표출한 것이다. 김 대표는 다시 의원들에게 의원총회 참석을 독려했고, 대부분의 의원들이 김 대표와 함께 2층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내 여론이 강경파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고, 따라서 오후 본회의 개회 여부가 불투명해보였다. 그런데 오후 1시 40분경, 새누리당 최경환·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함께 3층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2층 민주당 회의장 앞에서 밝게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옆에 있는 정성호 수석부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한 번 기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양당 원내대표가 6월 임시국회 내에서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어요."기자들은 속보를 날리기 위해서 기자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김한길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어제부터 여야 간 원내대표단이 애쓰면서 얘기해왔고, 오늘 오전 중에도 그런 상황이 계속돼왔다"고 배경 설명을 했다. 이후 전병헌 원내대표가 국정원 사건 국정조사에 대한 합의 내용을 설명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쪽에서 오늘 오전 내내 의총을 열어 본회의 등 국회 일정을 보이콧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며 "(국정조사 실시 합의는) 산적한 법안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오는 26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27일 본회의에 이를 보고한 후 다음달 2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3개월여를 끌고 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 논란은 일단락을 짓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정조사를 실제 실시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여전히 남아있다. 여야는 이날 국정조사의 범위와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즉, 새누리당이 '검찰 수사 완료'란 전제조건을 철회했더라도 여직원 감금 사건 및 매관매직 의혹 부분을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선·정치 개입 사건뿐만 아니라 'NLL 회의록' 공개의 불법성도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국정조사 증인 채택 등의 문제를 놓고도 여야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또 어디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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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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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작전' 펼친 국정원, "끌려갈 수 없다"던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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