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허핑턴 포스트>, '조지 W 오바마'라는 제목의 톱 기사.
허핑턴 포스트
오바마 2기가 출범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5년 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의욕적인 협상외교로의 전환을 선언했었지만, 급박한 국내사정과 함께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실천도 못 하고 경색국면으로 진입해 버렸다. 그리고 초임 4년간 소위 '전략적 인내'를 고수했다. 공공연하게 북한 정권교체를 내세우던 부시 행정부보다 온건한 행보를 보여 온 것은 분명한데 실제로는 '무전략'에 가까웠다.
몇 차례 소극적 대화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은 오바마 외교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며 일종의 아웃소싱(기업 업무의 일부 프로세스를 경영 효과 및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에 의존했다. 즉,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한 주도적 해결을 포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선 핵폐기론에 입각한 대북강경정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작년 11월 오바마가 재선되면서 이러한 기본입장에 대한 변화 여부가 주요 관심거리였다. 먼저 2기 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로 구성된 외교안보팀에 협상파들이 전진배치된 것이 주목을 받았다. 힐러리와 게이츠의 1기 외교안보팀이 당시 민주당이 꾸릴 수 있는 가장 보수적인 라인이라는 평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에 각각 임명된 척 헤이글과 존 케리는 알려진 대로 대표적인 협상파다.
협상파 전진배치헤이글은 이라크전을 반대해왔으며, 공화당이 오바마에게 더 강력한 대이란 제재를 요구할 때도 제동을 걸었다. 케리도 27년간 상원외교위원회에서 뼈가 굵은 외교통으로서 비둘기파로 분류되며, 북한을 포함한 적대적인 국가들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초임기간 내내 오바마의 발목을 잡았던 경제 문제도 1기 때보다는 호전되었다.
또한, 재선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과감하게 북한이나 이란문제에 대한 극적 타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었다. 그리고 대북강경책을 아웃소싱했던 이명박 정부가 퇴임하고, 보수 세력의 재집권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는 전임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도 변화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읽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들에서는 변화보다 연속성이 더 감지된다. 우선 북한의 도발이 재현되었다. 4년 전 미국의 외교진영이 채 갖춰지기도 전에 북한이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경색국면이 초래되었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한 위기로 치달았다.
미국 역시 첨단무기를 동원한 전례 없는 맞대응을 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치킨게임이 수 개월간 벌어졌다. 대치국면이 다소 이완되기는 했지만, 대화의 문은 좀처럼 열릴 기미가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매우 강경하다. 미국은 북한이 협상과 도발을 반복해 온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북한이 회담을 제의했지만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선행하라고 압박중이다.
워싱턴의 대북정책 결정 메커니즘
미국의 대북 및 대한반도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음 4가지다. 첫째 미국의 국내 상황과 워싱턴의 대북정책결정 메커니즘이다. 현재 미국은 지난 20년간의 북핵 위기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한 협상무용론이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이고, 전문가와 언론 그리고 일반여론까지 지배하고 있다. 협상을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이들조차도 북한이 확실한 행동변화를 보일 때까지 협상에 나서지 말라고 권고한다.
오바마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마무리, 빈 라덴 사살, 중동 민주화의 지분확보 등 여러 외교업적에도 끊임없이 유화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선제타격 위협을 받았다는 것을 좌시하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미국내 여론이 현재 알 카에다보다 나쁜 상황에서 오바마가 아무리 원한다고 하더라도 선뜻 대화국면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또한, 대외정책결정과 관련해서 기대를 모았던 협상파의 전진배치 역시 아직은 미지수다. 과연 오바마가 문제 해결에 관한 의지가 있으며, 또 권한을 이들에게 이양해주느냐가 관건이다. 오바마의 외교가 닉슨 이후 백악관에 가장 권력이 집중되어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역대 장관들과 비교해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세계를 누비면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유형이었지, 입안하고 주도하지는 않았었다. 실제 정책결정을 주도한 사람은 톰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을 위시한 백악관 측근들이었다. 최근 그가 물러나고 수잔 라이스 전 유엔대사가 임명되었는데, 오바마와의 관계는 도닐런보다 더 가깝다. 게다가 대북제재를 적극 찬성해 온 인사라는 점에서 대북정책의 유연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한 미 행정부 전체에서 북한사정을 잘 알고, 북한의 입장을 감안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소위 '지역전문가(regionalists)'들이 배제되고, 비핵화 또는 비확산 전문가들처럼 북한에 대한 이해 없이 획일적인 일반론을 엄격하게 적용한 '기능전문가(functionalists)'들로 채워져 있는 것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대외적으로는 미·중관계,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이 한반도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미국은 국력약화 속에서도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원한다. 군사적 충돌을 원하지 않지만 미국은 자신의 지배질서에 대한 도전이 되는 중국의 부상을 용납할 수 없고, 필요하다면 봉쇄전략을 구사해서라도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시험하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