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선거개입에 침묵하는 교수들

[주장] 시국선언에 교수들이 소극적인 이유

등록 2013.06.27 10:06수정 2013.06.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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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권력 기관이 온갖 편법과 부정을 동원해 정권을 쟁취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을 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어느정도까지 허용될까? 또한 정당한 집회 절차를 밟은 요구를 당국이 각종 핑계로 허가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이에 맞서서 불법적 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옳을까? 집회의 허용범위는 어느 선에서 지켜져야 할까?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고정적이지 않다. 특정 사회가 부패할수록 이를 묵인하는 부정적 의견들은 더욱 많이 개진될 것이다.

국내의 경우엔 어떠할까. 불의를 참지 못하고 촛불집회에 참가하겠다는 학생들이 있다면 대다수의 부모와 교수들로부터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인 시위에 참가하지 말고 제 할일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특유의 교육관인 '너 할 일을 먼저 잘해야 나중에 큰 그릇이 된다'는 논리다.

허나 지금같이 국가의 최고 권력 기관이 질 낮은 댓글놀이 행태를 일삼으며 각종 선거마다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위급한 시국에서 위와 같은 대답이 되풀이된다면, 이는 그 부모와 교수의 현명함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닌 그 무능한 불감증을 탓함이 도리일 것이다. 여러 논쟁거리를 안기는 위의 질문에 날카로운 답변을 내놓은 서구의 지성인이 있다.

"합법적 수단으로 충분치 않을 때 억압받는 소수의 사람들은 비합법적 수단을 통해 저항할 권리가 있다. 그들의 폭력은 폭력 행위의 새로운 악순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의 폭력은 기성의 폭력 사슬을 끊을 것이다."

바로 독일의 철학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다. <이성과 혁명> <일차원적 인간> 등 주요 저작들을 남긴 마르쿠제는 프랑스의 실천하는 지성인 사르트르가 그랬듯이, 적극적인 사회 참여 발언으로 당시 68운동을 전개하던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물론 부정의 탈취에 대한 저항수단으로 폭력을 내세운다는 논리에 적지 않은 시민들이 반발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학생들의 폭력이 기성의 폭력 사슬을 끊을 것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보다 진보된 민주주의 사회의 구현을 누구보다 앞장 서서 바란 마르쿠제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마르쿠제가 온전한 관심을 둔 것은 유수깊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 자리가 아닌 억압 없는 자유의 새 시대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현 상황에서 이 땅의 그 어느 지성인이 60년대의 마르쿠제처럼 용기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서울대를 필두로 각 대학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각종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나서고 있지만 이 땅의 교수들은 입에 모두 풀칠을 한 듯 조용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파장이 잠잠해질 줄 모르고 있으나 아직도 대학의 지성을 책임지는 교수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신자유주의 시대의 산물인 '주식회사 대학'의 정직원으로서 자신의 안일과 품행을 잃지 않으려 처신할 뿐이다. 무언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되어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여야 합의로 국정원 진상조사가 국회위를 통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입맛에 맞게 편집한 발췌본으로 여론을 왜곡하다 마지못해 국정조사에 합의한 새누리당이 각종 이견을 달며 파행을 예상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검찰은 노무현의 NLL발언에 대한 왜곡으로 과대심리전을 펼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함으로서 또다시 정치검찰이란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 이미 5년도 더 지난 정권의 서거한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는 그들의 왜곡 행태는 궁지에 몰릴 수록 보다 파렴치해질 것이다. 고작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했다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뻔뻔한 변명은 그들이 이미 국가의 외교절차와 공정성을 망각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국정원장의 무례한 해명과 이를 비호하는 새누리당의 행태는 더욱 더 교수들의 주도 하에 분개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드높게 타올라야 할 시점임을 암시한다. 또한 좌우 논리를 막론하고 이 땅의 보수와 진보 모두 손을 합쳐서 천인공노할 사태에 목청을 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당연히 지성의 요람인 대학의 교수들이 앞장서야 한다. 시국선언에 적극 동참하는 행동이야말로 그들의 온전한 도리이자 교수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책임있는 자세가 아닐까.

다행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한양대 47인의 교수들이 국정원 공작정치에 대한 시국선언 참여로 새로운 활기를 모색했다. 한양대를 필두로 각 대학의 교수들은 지식인이 온전히 행해야 할 자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사회의 장으로 적극 나와야 할 것이고,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문제를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의 처음에 던질 질문에 대한 답안은 공란이다. 그 이유는 앞으로 지성을 갖춘 교수들과 그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하며 적어나가야 할 그들의 답안란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국정원 시국선언 #노무현NLL #한양대교수 시국선언 #남북정상회담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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