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동도에 남은 해녀는 3명뿐이다. 남아 있는 해녀중 가장 젊은 해녀 신한점 할머니가 물질을 준비중이다.
심명남
이제 남은 사람 중 가장 젊은 해녀는 신한점(문수동 원앙아파트) 할머니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6세다. 할머니는 현재 아들 집에서 며느리랑 손자랑 함께 산다. 필자가 사진 한 번 찍자고 조르니 "이런 것 사진 찍어 갖고 뭐하게"라며 쑥스러워 한다. 해녀라는 직업이 몸서리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해녀 되신 거 후회하세요?""후회는 안 해. 왜 안 하냐면 그냥 하고 싶으면 하구, 놀고 잡으면 놀거든. 지금은 용돈이나 벌어 쓰지만 이날 평생, 물질을 해서 자식 셋을 키웠어. 돈 모아 놓은 것은 없지만 오늘도 용돈 벌려고 바다에 나왔어." 할머니는 물질이 마음 먹기에 달렸단다. 아직도 한 달에 3~4일 정도만 빼고 일을 하기도 한단다. 한참 젊었을 때는 오동도 끝 방파제를 훨씬 넘어 깊은 바닷속을 겁없이 누볐다. 그곳은 배들이 지나다니는 뱃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단다.
나이가 들어도 물질을 나온 이유가 있다. 집에 있으면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에 나오면 아프지 않다. 세상 바람 다 쏘이니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단다. 노년에 바다는 그의 삶을 치유하는 '힐링캠프' 같은 곳이다.
여수를 비롯해 남해안 바닷가에 해녀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 여자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해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해녀하면 흔히 '제주해녀'가 연상된다. 하지만 예전엔 남해안을 끼고 있는 바닷가에 해녀가 많았다.
어릴 적 물 속에서 불쑥 솟아오르던 해녀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뭍사람들은 해녀의 '숨비소리'를 듣고 신기해한다. 때론 낭만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 일이 직업인 해녀들의 일상은 고달프다. 물질을 해서 가정경제를 도맡아 왔다. 그래서 해녀는 강해야 했다. 허나 이들 역시 여자였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나잠어법으로 20m 바닷속을 누비는 해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