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차이코프스키와 폰 멕 부인 환영의 듀엣. 차이코프스키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인이던 폰 멕 부인의 지원이 끊긴 후 작곡가 머릿속의 정신적 방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부분.
국립발레단
여자주인공들의 비중도 컸다. 박슬기는 차이콥스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도와 문란한 생활을 하며 변해가는 당차고 요염한 '차이콥스키 부인' 역에 적격이었다. 지난 작품에서 '감자티'역을 요염하고 완벽하게 소화하며 멋진 모습을 보였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캐릭터로 잘 표현했다. '폰 멕 부인'역의 유난희는 차이콥스키와 평생 수 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를 후원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폰 멕 부인 역을 가녀린 카리스마의 내면연기로 특히 2막에서 잘 표현했다.
발레로 표현한 인간의 내면적 방황, 다소 한계 보여하지만, 대사가 없는 춤으로 한 인간 내면의 고뇌를 표현한다는 것이 다소간의 한계가 있어 보였다. 1막 병상의 침대 위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마녀 카라보스, 차이콥스키의 내면, 자신의 부인 밀류코바의 환영, 흑조 군무 등에 시달리는 모습이 한 작곡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표현하고 있고 공감을 준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다른 발레작품의 주인공을 모르거나, 혹은 극의 흐름을 서사적으로 파악하는데 익숙한 관객에게는 개인의 내면의 과정을 표현한 이 발레의 흐름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출연진들의 발레 동작 자체가 어색하거나 호흡이 서로 안 맞는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환상적이고 강렬한 춤이 극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2막이 되면 더욱 극적이고 격렬한 안무로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폰 멕 부인으로부터 편지가 끊기자 차이콥스키의 내부에서는 그녀를 미라처럼 환영으로 만들고, 우울하고 쓸쓸한 춤을 추는 장면은 이 극의 초점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발레의 우아한 군무와 장대한 서사성, 주인공들의 강렬한 발레 개인기와 연기, 우리가 알고 있던 흐름과 다르게 표현한 작곡가가 환영에 시달리며 미쳐가다가 결국 죽음에 도달하는 작곡가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역부족으로 보였다.
또한 발레를 잘 받쳐주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간혹 금관 연주에서 유연하지 못한 소리를 낼 때는 실망이었다. 금관은 음정내기가 힘들고 힘이 많이 드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종종 들려오는 부드럽지 못한 패시지 연결과 이탈 음은 춤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디어 시대에 관객에게 볼거리가 많다. TV채널도 종편으로 수없이 많아졌으며, 지자체 바람이 불어 시·도·군·구 지역별로 크고 작은 공연이 난무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보아왔던 공연형식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양식들도 서로 혼합되고 타 장르와 섞이며 관객들은 웬만한 문화적 자극에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기준은 있다. 좋은 대본, 기획단계의 매끄러움, 연출, 연습량, 출연진들의 열정 등이 잘 배합된 공연과 전시는 관객에게 여전히 소구된다. 스스로 요구되는 레벨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의 그 어색함이란 공급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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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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