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단 폭격 뒤 왜관읍내의 모습(1950. 8. 19.)
NARA
고약한 냄새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들은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 까닭은 날만 새면 유엔군 진지에서 포탄이 날아오거나 하늘에서 미 폭격기들이 폭탄을 마구 쏟았기 때문이다. 야포의 포탄이나 폭격기의 폭탄 탄착점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상대 적진에 떨어지는 것보다 그 외곽에 떨어진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민간인 피해도 엄청 많았다. 전투가 벌어진 도시는 성한 건물이 거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유엔군 측 화력이 더욱 막강해졌다. 그러자 인민군 전사들은 미 전투기의 폭격소리와 포탄의 폭발소리에 가위눌려 전의를 잃은 전사들이 점차 늘어갔다. 그럴수록 독전대들이 더욱 설쳤다.
다부동전투가 장기전으로 이어지자 그 일대 산과 들에는 피아 병사들의 사체가 가을 낙엽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 사체들은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푹푹 썩어갔다. 다부동전선 산야에는 사람의 사체만 널브러진 게 아니었다.
소나 말도 군수품을 산으로 나른 뒤 포탄이나 폭격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람이나 소와 말의 사체에는 파리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피를 빨거나 구더기가 허옇게 들끓었다. 그 사체 썩는 고약한 냄새가 유학산 일대에 진동했다. 거기가 지옥이었다.
병사들은 전투 중 식수를 현장에서 자급하기 마련인데, 계곡물에는 사체 썩은 물이 시뻘겋게 흘러 내려 하는 수 없이 그 옆에다 땅을 판 뒤 괸 물을 마셔야 했다. 병사들은 그런 물을 마시다 보니 복통을 앓거나 설사병을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