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소피아 요한슨 관련 서류
한나 소피아 요한슨
요한슨씨는 입양아로 스웨덴에 살면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경험이었다. 스웨덴에는 해외입양인들이 많지만 아시아 사람은 적다.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은 곳곳에서 요한슨씨에게 "차이나맨(China Man)!, 너희 나라로 돌아가! 넌 여기에 속하지 않아!"라고 소리쳤다. 그녀가 들었던 가장 흔했던 인종차별적 발언은 "네 엄마는 양공주, 아빠는 미군이었지? 넌 혼혈아지?"였다. 요한슨씨는 혼혈아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 인들은 모든 해외입양인들은 혼혈아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요한슨씨는 10대 때 마구간에서 말과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았다. 그녀는 말을 돌볼 때가 가장 편했고 시비 거는 스웨덴 인들도 없었다.
"내가 말을 돌 볼 때 주위사람들은 내 피부색에 관심이나 시선을 두지 않았어요. 말에만 관심과 시선을 두었고 그래서 난 아주 편했지요."요한슨씨의 양부는 정신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3년 전 은퇴했다. 그녀의 양부는 스웨덴 시골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젊어서는 목수 일을 하시다가 나이가 들어서 간호사로 취직하여 은퇴한 것이다. 요한슨씨 양모는 오는 12월 그동안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은퇴한다. 그녀의 양모는 총 8년간만 학교를 다녔다.
양부모님에게는 친아들이 하나 있고 요한슨씨에게는 오빠가 된다. 그녀의 오빠는 학교 교사로, 아내와 16세 된 아들이 있다. 요한슨씨는 기차로 몇 시간 거리에 사는 양부모와 사이는 좋지만 자주 만나지는 않고 전화통화를 자주 한다.
현재 요한슨씨는 스톡홀름에 있는 국가기관 노동문제연구소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에는 스웨덴 교육부 범죄예방국 조사관으로 근무했고, 그 전에는 스톡홀름대에서 이학박사를 받고 연구원과 강사 생활을 했다.
요한슨씨는 금년 여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해외입양인모임에 참여한 후 본격적으로 친부모를 찾고자 한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부모님도 나이가 드셨을 테고, 더 늦게 전에 친부모님을 찾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입니다"라며 그 감회를 전한다.
"입양기록, 정부에서 총체적으로 관리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