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출범식
이주영
서울의 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직원인 임아무개(45)씨는 두 아들의 아빠다. 올해 10살·6살이 된 아이들의 소원은 온 가족이 다 같이 캠핑을 가는 것. 하지만 임씨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에어컨·TV 등 가전제품 수리 요청이 많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서비스 담당을 맡은 그의 최근 업무 스케줄은 이미 꽉 찬 상태다.
캠핑을 갈 수 없다면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먹고 싶다는 아이들이지만, 성수기 때는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1시 넘어서 퇴근한다.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늘 지쳐서 잠이 들고 만다고 한다.
"아이와의 약속 지키고 싶다"... 노조원들 '근무시간 단축' 요구그가 생전 처음으로 노조에 가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과 여름에 놀러갈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서다. 임씨는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다, 캠핑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임씨와 같은 바람을 가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이 모여 노조를 결성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이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14일 오후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노조 출범을 정식으로 선포했다.
장마철 궂은 날씨에도 서울·경기·부산·포항 등 각 지역 협력업체 40개사의 전·현직 노동자 386명이 이날 창립총회에 모였다. 이들은 최근 위장도급 등 불법 고용 의혹에 휩싸인 삼성전자서비스를 규탄하고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서비스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삼성 로고가 박힌 반팔 유니폼을 차려입고 온 이들은 첫 노조 활동이 어색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구호를 외치거나 박수를 치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노조원은 협력업체 직원들의 어려움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주말 근무 특근 수당도 이들의 결사를 막지는 못했다. 노조 창립총회를 하루 앞두고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들의 주말 특근 수당을 파격적으로 높이는 수법을 통해 노조 설립을 방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총회에 참석한 직원들은 "일시적인 수법에 누가 넘어 가냐"며 손사래 쳤다.
그러면서 노조원들은 "지금 돈 보다 사람답게 사는 게 더 시급하다"며 노조 참여 이유를 밝혔다. 경기 양주의 한 센터에서 근무하는 유아무개(37)씨는 "몇몇 센터의 문제가 아닌 전국 모든 직원들이 느끼는 고충이 있기 때문에 다들 특근수당을 무시하면서까지 총회에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서 온 김아무개(31)씨는 "그동안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밥 먹듯이 해왔지만 추가 근무 보상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며 "고작 하루 돈 많이 받는 것보다 앞으로 야근·주말 근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영일 노조위원장 "더 이상 삼성전자의 앵벌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