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비리사건, 검찰이 뭉개버린 실마리 찾았다

[추적] 정식 사건번호 부여하고도 처분 결과 없어... 검찰의 사건 은폐 의혹 더욱 커져

등록 2013.07.16 19:19수정 2013.07.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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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지검에서 보낸 '체포통지서. 여기에 '2008 형제 8925호'라는 정식 사건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원주지검에서 보낸 '체포통지서. 여기에 '2008 형제 8925호'라는 정식 사건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오마이뉴스

검찰이 지난 2008년 평창휴게소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형사사건번호'를 정식으로 부여했지만, 제대로 사건처분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확인 결과,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지난 2008년 평창휴게소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2008 형제 8925호'라는 정식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나 불기소 등 사건처분을 내리지도 않았고, 관련 수사기록을 다른 사건에 편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휴게소 비리 사건 은폐 의혹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12월부터 검찰은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이 휴게소 운영업체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를 포착한 뒤 수사를 벌이다가 갑자기 중단했다. <오마이뉴스>는 수개월간의 추적을 통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 '검찰의 평창휴게소 비리 사건 은폐' 의혹을 상세하게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로비 수첩'까지 얻어놓고... 사라진 '휴게소 비리 사건' / 휴게소 비리 내사기록은 왜 숨어 있었나?).

휴게소 비리 사건, '로비 다이어리' 입수하고도 사라졌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지난 2008년 3월부터 평창휴게소 내 한식당 신축공사와 관련한 사기사건, 업무상 횡령·배임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2월 휴게소 운영업체에서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 소속 직원 등에게 향응과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검사가 범죄혐의를 인지해서 수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즉 고소·고발이나 진정사건이 아니라 '인지사건'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증거수입 등 치밀한 내사를 벌인 끝에 평창휴게소장이던 안아무개씨의 자택과 휴게소를 압수수색하고, 안씨를 체포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와 관할군청, 경찰지구대, 소방서 출장소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름과 술집, 금품 액수 등이 적힌 '로비 다이어리'를 입수했다. 안씨도 검찰조사에서 "다이어리에 기재해놓은 것은 모두 사실이다"라며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을 원주 소재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접대했고, 명절 때마다 관할군청과 면사무소, 경찰지구대, 소방서 출장소 등에 현금과 상품권, 양주 등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검찰로서는 휴게소 운영업체가 한국도로공사 직원 등을 상대로 벌인 로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그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할 경우 한국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가 얽힌 '구조적 비리'까지 파헤칠 수 있었다. 검찰이 지난 2006년 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이루어진 안씨의 금융거래를 광범위하게 추적한 것도 그러한 구조적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지난 2009년 3월 안씨의 친누나(휴게소 내 한식당 운영업체 T사의 이사)를 소환해 조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검찰의 통상 수사절차대로 '범죄 첩보보고→내사 착수→증거수집→체포·압수수색→피의자 신문' 등의 과정을 밟은 사건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휴게소 운영업체의 핵심 로비대상인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은 한 명도 소환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핵심 증거인 '로비 다이어리'를 안씨에게 돌려준 상태였다(이후 안씨는 그 다이어리를 폐기했다).  

 원주지청에서 작성한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 내사기록 목록.
원주지청에서 작성한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 내사기록 목록.오마이뉴스

체포통지서에 선명하게 찍힌 '2008 형제 8925호'


하지만 안씨의 자택과 휴게소 등을 압수수색하고, 안씨까지 체포한 사건을 '수사하지 않은 사건'으로 만들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에서 추적한 결과, 관련 수사기록은 다른 사건기록에 편철돼 있었다. 여기에는 ▲범죄첩보 보고서 ▲수사보고서 ▲피의자 신문조서 ▲참고인 진술조서 등 당시 수사한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허아무개 대검 연구관은 "휴게소 운영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인지했는데 형사적 죄로 볼 수 있는 혐의를 잡지 못했다"며 "앞서 고소사건이 있어서 거기에 참고자료로 수사기록을 넣어두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별도의 내사기록으로 할까 형사기록으로 할까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수사검사의 해명에 따르면, 검찰이 내사를 벌였지만 형사처벌을 할 만한 범죄혐의를 포착하지 못해 고민 끝에 관련 수사기록을 다른 사건에 편철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사사건번호'조차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오마이뉴스>는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정식 사건번호를 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한창 수사중이던 지난 2008년 12월 16일 안씨를 체포한 뒤 같은 날 그의 가족들에게 '체포통지서'를 보냈다. 이 통지서에는 '2008 형제 8925호'라는 정식 사건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는 검찰이 내사를 거쳐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을 정식사건으로 수리했음을 의미한다. 즉 안씨를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로 입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처분도 하지 않고, 관련 수사기록을 다른 사건에 편철했다는 점에서 '사건 은폐'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당시 원주지청장은 김진태 현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평창휴게소 비리 사건 수사가 중단되기 직전인 지난 2009년 1월 29일 퇴임했다. 지청장은 중요한 수사 과정과 결과를 최종적으로 보고받는 자리다. 검사출신의 한 변호사는 "신병을 인도하는 사건은 다 지청장에게 보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그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수사내용 등을) 보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형사사건의 경우 '사건부'에 '일련번호'('형제 번호')를 붙여 사건명과 인적사항 등을 기재함으로써 사건을 수리(입건)한다. 사건수리 사유에는 검사의 범죄인지, 고소·고발의 접수 등이 포함된다. 검사는 사건을 수리한 뒤 압수수색, 체포 등을 통해 수사를 벌이고, 수사를 마치면 기소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검사의 범죄혐의 인지로 수사에 들어간 사건은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도 지난 2009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검찰이 (범죄를) 인지하면 기소하게 된다"며 "인지사건은 대부분 기소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의 형사사건 처리 절차도.
검찰의 형사사건 처리 절차도.검찰 홈페이지

"형제 번호 부여는 형사피의자로 조사한다는 의미"

대검의 한 수사관은 "형제 번호가 부여됐다는 것은 사건이 수리됐다(입건됐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한 뒤 "내사를 벌이다가 피의자 체포 등 수사절차를 밟으려면 형제 번호를 따야 한다"며 "사건을 수리하는 시점이 형제 번호를 부여받는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형제 번호를 부여받은 사건은 기소, 불기소, 기소유예 등으로 처분해야 하고, 수사기록은 독립적으로 보관한다"라며 "내사기록은 기록편철할 수 있지만, 형제 번호를 부여받으면 기록편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받기 위해 임의로 사건번호를 넣을 수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처분을 하지 않고 다른 사건에 기록편철했다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박성수 전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사건번호에는 내사번호와 형제 번호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 뒤 "형제 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은 피내사자 등을 형사피의자로 조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것은 99% 이상은 처벌하겠다는 의미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즉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건에 형제 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박 전 부장검사는 "(평창휴게소 비리 사건의 경우) 검사가 사건을 인지해 처벌하려고 했는데 무슨 사정 때문에 처벌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사건에 슬쩍 편철해놓은 것 같다"라며 "안씨를 체포했더라도 혐의가 없으면 무혐의 처분하면 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아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은폐가 사실이라면) 검찰의 감찰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창휴게소.
평창휴게소.오마이뉴스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A지검 차장검사를 지낸 한 변호사도 "형제 번호를 부여해서 형사입건하면 무조건 범죄 유무(기소, 불기소)를 판단해야 한다"며 "형사입건됐다고 다 유죄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형제 번호가 부여됐는데 사건처분 결과가 없고, 다른 사건에 편철해놨으면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며 "사건을 뭉개버렸을 가능성이 있어서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혜련 전 대구지검 형사3부 수석검사는 "형제 번호를 부여받은 사건도 기록편철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형제 번호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사건을 처리해야지 없는 사건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없는 사건으로 만들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창 휴게소 비리 사건 #원주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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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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