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대신 입대한 아버지의 기구한 '대리인생'

[공모-가족 인터뷰] 1961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등록 2013.07.25 14:55수정 2013.07.2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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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별, 휴학, 슬픔, 얼차려…. 이런 반갑지 않은 수식어가 불편하다면 명예로운 대한민국 병역의무의 이행자 쯤으로 풀어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며 군대는 제대 후 군번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 '군대'라는 이름에 '대리인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 할아버지의 기구한 사연이 있다. 바로 올해 74세인 내 아버지다.

형 대신 입대한 동생이 바로 우리 아버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혁명내각은 강력한 단속방침 아래 병역기피 일소를 다짐하며 징집 대상자들을 색출했다. 단 한 명의 열외도 인정하지 않고 병역 기피율 제로를 꿈꾸었던 '조국 군대화' 방침 덕분에 때 아닌 입소자로 넘쳐났다.

안보에 꼭 필요한 적정규모의 인원만 징집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에 필요한 적합형 인간을 육성해내는 교육장으로 군대를 이용한 것이었다. 물론 1960년대의 병역 기피자 수는 엄청났다. 아직 국가의 행정 능력이 대상자를 철저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한데다, 분단과 전쟁으로 호적 서류가 완비되지 않았던 탓에 매년 수만 명의 병역기피자가 나왔던 것이다.

만연한 병역 기피자 단속을 명목으로 시골 부락에까지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 이런 식으로 '사회기강 확립'을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를 길들여갔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아버지 형 대신 눈물을 머금고 입대한 아버지가 바뀐 이름으로 군대생활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아버지형 대신 눈물을 머금고 입대한 아버지가 바뀐 이름으로 군대생활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김학용

결국 아버지가 사는 전남 여수의 작은 섬인 개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1년 당시 징집대상자였던 큰 아버지는 병역을 기피하며 여수시내에서 한동안 숨어 지냈다. 그러다 정권의 단속이 강화되자 도피하듯 태평양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에 몸을 싣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서슬 퍼런 당시, 아들이 군대 징집을 거부할 경우 부모가 대신 옥살이를 해야 했다. 특히 징집거부 시 대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기피자의 집'이라고 써 놓은 팻말까지 나붙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본격적인 '대리인생'이 시작됐다.


아버지의 입대 사연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1961년 여름, 이역만리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형에게 입대하라는 소집 영장이 떨어졌다. 형의 행방을 놓고 가족들은 책임 공방이 벌어졌고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형 아래로 남동생들이 여섯이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는 바로 아래 동생인 아버지에게 모든 눈과 귀가 쏠렸다. 마침내 내려진 결론은 큰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입대하라는 처방이었다.

한참 기술을 배워 이제 막 주조공장에 들어가 미처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한 아버지에게 이것은 간밤의 홍두깨였다. 형처럼 도망을 가려고도 했지만 가족을 두 번 울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억울해 서럽게 참 많이도 울었다. 하지만 대리입대 이외에는 피해갈 다른 방법은 결코 없었다.

결국 당시 21살이었던 아버지는 징집 대상자였던 형의 신검을 대신 받고 동생의 마지막 도리로 여기며 군에 입대하고 만다. 1961년 12월 21일, 아버지는 형님이 돌아오면 가족들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남기고 군용트럭에 몸을 실었다. 기구한 아버지의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형 이름으로 한 군대 생활, 녹록지 않았다

입대신고를 하면서도 아버지는 형과 이름을 바꿔 허위 신고를 하게 됐다. 1094OOOO이라는 군번을 부여받고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아버지는 천안 성환에 있는 군수사령부 탄약창에 배치되었다.

군번에 새겨진 이름 석 자는 물론 군 복무 문서에도 모두 형의 이름으로 기록돼 있었기에, 혹시라도 관등성명을 절대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바뀐 이름으로 군대생활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야~! 거기 신병~!"
"예~~, 이병! 김순태…. 아니 김순시이이익~!"
"이 XX, 관등성명 하는 꼬락서니 좀 보소! 네 이름도 모르냐? 이런 군기 빠진 X이 있나. 너, 이리 나와!"


'김순태'라는 아버지의 이름 대신 '김순식'이라는 큰 아버지의 군번과 이름으로 위장한 채 군대생활을 해 나가야했으니 얼마나 실수투성이였을까. 모진 세월이었다. 그렇게 3년을 지치도록 기다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공식적인 대한민국 예비역이 아니었다. 육군 공식 서류인 전역 확인서나 군 복무 관련 자료에는 모두 형님 이름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었다.

1963년 12월, 군복무를 마치고 온 아버지의 대리 입영사실은 이미 마을에 소문이 난 후였다. 그렇지 않아도 형님 이름으로 대리 복무하던 중 아버지 이름으로 이미 영장이 나와 있었고, 아버지는 어느새 병역기피자가 되어 있었다. 고민하던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본인의 이름으로 재입대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가족들은 '대신 군대 다녀왔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며 자위했지만,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친척이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대리입대 사기극은 막이 내리는가 싶었다.

결국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형님 대신 아우가 대리 입영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고 말았다. 천만 다행으로 법원은 '머슴이 주인을 대신해 입대하는 경우는 있었다지만 형을 대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며 두 형제 중에 한 명이 군대를 다녀왔으니 병역 의무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아버지 이름으로 병장 계급장 달 수 있을까

군 입대를 면제받은 자를 '신의 아들', 방위나 공익근무로 판정을 받은 자를 '장군의 아들', 현역병으로 징집된 자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평생 대리인생을 살아 온 '어둠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기구한 사연에 흥분하는 나의 분노를 일축한다.

"큰 아들, 큰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그래도 (대신 다녀왔지만)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켜야하는 국가의 명령을 받들었지 않느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갔다와야 할 일이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주면 되는 일이고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다. 그래도 우리 아들 삼형제가 본인 이름으로 모두 군대를 다녀와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군대를 정상적으로 다녀온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과분한 욕심일 것이다. 그나마 가족의 의무와 나라의 부름을 다 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가 확인해 줄 수 있는 어떤 서류에도 아버지의 기구한 병역 사연을 증명할 길은 없다. 50년 전 자포자기했던 푸른 옷의 명예를 되찾을 희망은 없는가. 과연 우리 아버지는 50년 만에 당신의 이름으로 병장 계급장을 가슴에 달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가족인터뷰> 응모 글입니다.
#아버지 #군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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