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신명 39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초연된 <꽃같은 시절>. 지정남(사진 오른쪽부터 3번째)씨는 <꽃같은 시절> 기초 각색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지정남 제공
몇 해 전 늦깎이 대학생으로 동신대 문화기획학과를 졸업한 그의 논문 주제도 사투리였다. '사투리의 자긍심'이 그 것이다.
지씨의 현재가 있었던 원동력은 극단 '놀이패 신명'의 활동이다. 그는 1993년 3월 극단 '놀이패 신명'에 입단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놀이패 신명'과의 인연은 '부당한 해고'가 계기가 됐다.
그녀는 광주여상을 졸업한 후 1991년 무등양말에 입사했다. 고교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지씨는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고, 그 이유로 해고됐다. 7개월 여 동안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집회에서 '놀이패 신명'의 공연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마당극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는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선배가 매일 손에 쥐어주던 '버스 토큰 두 개'가 월급을 대신했다. 하나는 '오늘' 귀가할 때 쓸 토큰이고, 다른 하나는 '내일' 극단으로 출근 할 때 쓰라는 것이다. 그 만큼 극단의 살림이 궁했다.
그는 "토큰 두개를 쥐어주던 선배가 재미있기도 하고 마당극 연기가 즐거웠다"며 "다음 날 아침 토큰을 사용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 시절, 노동자·농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나 행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면서 극단의 마당극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마당극 배우로서 20년. 중견 배우가 된 그는 공선옥의 소설 <꽃 같은 시절>을 마당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초기 각색 작업을 직접 하기도 했다. 마당극 <꽃 같은 시절>은 4월 극단의 정기공연 때 초연된 이후 잇따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마당극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 소설가 공선옥을 찾아가 의사를 밝혔고 지난 4월 <꽃 같은 시절>을 극단 정기공연 작품으로 올렸는데. 기초 각색을 제가 한 것이에요. 오랜만에 준비하는 정기공연이어서 인지, 연습실을 빨리 가고 싶고 마음이 설레더라고요. 깔깔거리고 웃고 속을 풀어내는 마당극과 연애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좋아요. '놀이패 신명' 단원으로서 마당극 <꽃 같은 시절>을 들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현장에서 공연하고 싶어요".마당극 배우인 그는 정작 방송인으로 대중에게 더 알려져 있다. 이데 대해 지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방송과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사투리와 속담을 더 익히려고 노력했고,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마당극 배우로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다, 방송일은 제가 마당극 배우로 살아 갈 수 있게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 활동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보탬이 되고 있고, 이것은 결국 그가 배우로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잘 노는 배우' 꿈꾸며 1인 '씻김굿'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