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로 해장해 주는 '말바우 아짐'

[인터뷰]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 "웃음으로 보신하는 배우되고 싶다"

등록 2013.07.26 17:08수정 2013.07.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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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18 30주년 기념 작품 <언젠가 봄날에>(극단 놀이패 신명) 출연 당시 지정남씨. 마당극 배우인 그는 '말바우 아짐'으로 유명하다.
2010년 5·18 30주년 기념 작품 <언젠가 봄날에>(극단 놀이패 신명) 출연 당시 지정남씨. 마당극 배우인 그는 '말바우 아짐'으로 유명하다.이육호 제공

'호랭이 물어가네' '예말이요, 글믄 쓰것소' '뭐 낀 놈이 성낸다드니' '긍께, 어째야 쓰까'.

상식적으로 잘못된 일에 대해 꾸짖거나, 다른 이의 사연을 안타까워 하며 위로하는 마음, 퍽퍽한 세상사에 한 마디하고 싶을 때, 애달프거나 기쁠 때, 음식 맛 등을 표현 할 때.


전라도 사투리만큼 맛깔난 것이 있을까. 전라도 사투리는 은유와 익살스러움, 그 풍자성 때문에 마당극에서 자주 사용된다. 해학과 촌철살인의 미학도 맛볼 수 있다.

 마당극 배우가 '말바우 아짐'으로 통하는 이유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
마당극 배우 지정남씨강성관

'말바우 아짐'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마당극 배우 지정남(41)씨. 그의 전라도 사투리는 제 맛이 난다.

<말바우 아짐>은 그가 진행을 맡았던 광주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타이틀. 지난 2005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평일 아침에 방송됐던 광주지역의 몇 안 되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시민의 입장에서 지역 현안 등을 1인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 프로그램이 유명해지면서 지씨는 동명의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말바우는 광주시내 재래시장(말바우시장) 이름이면서 그 일대를 지칭한다. 아짐은 아주머니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말바우에 사는 아주머니의 눈으로 본 세상살이 이야기인 셈이다.


지씨는 특유의 사투리로 신랄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지역 현안을 풍자했고, 시민들은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그의 전라도 사투리와 연기에 호응했다. 구수하고 익살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끌어가는 이야기는 청취자들의 귀에 감겼다. 아쉽게도 프로그램은 폐지 됐지만, <말바우 아짐>을 꼬박 7년 동안 진행한 지씨를 두고 어떤 이는 "사투리로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장(解腸)해 주는 '전라도 아짐'이 됐다"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지씨는 현재 2003년부터 인연을 맺은 광주MBC의 <신 얼씨구학당>, KBS1 <남도 지오그래피>와 <필통> 진행자와 리포터 등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사이 다양한 행사와 집회 사회자로, 강사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지역의 유명 인사가 된 지 오래다.


그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어떤 의미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들은 조폭이나 야비한 캐릭터로 그려지기 일쑤잖아요. 그래서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생기고, 그 때문에 '전라도 사투리는 빨리 교정을 해야 하는 말'로 느끼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사투리는 나와 우리의 정체성이고 사회언어학적으로 봐도 사투리가 (표준말 보다)더 풍부하고 너무 예쁜 말이죠. 그러면서 직설적이지 않고 따뜻해요. 복잡할 것 같은 세상도 단순하게 설명해 주잖아요. 사투리는 남도의 따뜻한 정서,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말이고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밥줄이기도 해요".

'보물1호 수첩'에 빽빽하게 적힌 것은?

 2010년 5·18 30주년 기념 작품 <언젠가 봄날에>에서 지정남씨는 5·18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을 옛 도청 앞 은행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무당 박조금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10년 5·18 30주년 기념 작품 <언젠가 봄날에>에서 지정남씨는 5·18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을 옛 도청 앞 은행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무당 박조금 역을 맡아 열연했다.이육호 제공

사투리 하나로 지씨가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고 방송인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다. 무대에서 설 때면 사투리와 어울리는 농익은 연기력으로, 방송인으로서 매끄러운 진행 솜씨를 보여주면서 '롱런'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투리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이어주는 '밥줄'이다.

<말바우 아짐> <신 얼씨구학당> <말바우 아짐> <필통> 등 방송인으로 활동 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 준 것도 그랬고, 마당극 배우에서 영화배우라는 새로운 이력을 추가하게 된 독립영화 <낮술> <어떤 개인 날> 출연 역시 그렇다. 전라도 사투리를 익살스럽게 잘 구사하는 여성 진행자와 배우가 필요했던 일들이다.

많은 노력을 통해 몸으로 익히고 배운 사투리는 자연스레 작품 속에서 빛이 난다. "제 맛이 난다"는 평가를 받는 연기와 사투리의 매력, 무엇이 원천일까.

그는 "전라도 어매(어머니)들은 저에게 큰 공부"라고 말한다.

"방송 프로그램 리포터 등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전라도 어매(어머니)들을 많이 만났어요. 전라도 어매들은 가슴 아팠던 자기 이야기를 참말로 재미나게, 덤덤하게 객관화해서 말씀 해요. 그 속에 아픔도 있고 해학도 있어요. 저는 큰 공부를 합니다. 마당극 캐릭터 역시 어매들에게서 온 것이 많아요. 어매들과 아버님들께 들었던, 은유가 많은 속담과 사투리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수첩에 적어둬요. 방송이나 마당극 캐릭터에 맞게 쓰고 있어요."

전라도 사투리와 속담이 빼곡하게 기록한 수첩. 그 수첩이 "보물 1호"란다. 어디서 저런 표정과 맛깔스런 사투리를 끄집어낼까. 그 궁금증이 풀린다.

'버스 토큰 두 개'가 벌이의 전부였던 시절

 지난 4월 신명 39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초연된 <꽃같은 시절>. 지정남(사진 오른쪽부터 3번째)씨는 <꽃같은 시절> 기초 각색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신명 39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초연된 <꽃같은 시절>. 지정남(사진 오른쪽부터 3번째)씨는 <꽃같은 시절> 기초 각색 작업을 하기도 했다.지정남 제공

몇 해 전 늦깎이 대학생으로 동신대 문화기획학과를 졸업한 그의 논문 주제도 사투리였다. '사투리의 자긍심'이 그 것이다.

지씨의 현재가 있었던 원동력은 극단 '놀이패 신명'의 활동이다. 그는 1993년 3월 극단 '놀이패 신명'에 입단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놀이패 신명'과의 인연은 '부당한 해고'가 계기가 됐다.

그녀는 광주여상을 졸업한 후 1991년 무등양말에 입사했다. 고교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지씨는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고, 그 이유로 해고됐다. 7개월 여 동안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집회에서 '놀이패 신명'의 공연을 보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마당극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는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선배가 매일 손에 쥐어주던 '버스 토큰 두 개'가 월급을 대신했다. 하나는 '오늘' 귀가할 때 쓸 토큰이고, 다른 하나는 '내일' 극단으로 출근 할 때 쓰라는 것이다. 그 만큼 극단의 살림이 궁했다.

그는 "토큰 두개를 쥐어주던 선배가 재미있기도 하고 마당극 연기가 즐거웠다"며 "다음 날 아침 토큰을 사용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 시절, 노동자·농민·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나 행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면서 극단의 마당극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마당극 배우로서 20년. 중견 배우가 된 그는 공선옥의 소설 <꽃 같은 시절>을 마당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초기 각색 작업을 직접 하기도 했다. 마당극 <꽃 같은 시절>은 4월 극단의 정기공연 때 초연된 이후 잇따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마당극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 소설가 공선옥을 찾아가 의사를 밝혔고 지난 4월 <꽃 같은 시절>을 극단 정기공연 작품으로 올렸는데. 기초 각색을 제가 한 것이에요. 오랜만에 준비하는 정기공연이어서 인지, 연습실을 빨리 가고 싶고 마음이 설레더라고요. 깔깔거리고 웃고 속을 풀어내는 마당극과 연애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 좋아요. '놀이패 신명' 단원으로서 마당극 <꽃 같은 시절>을 들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현장에서 공연하고 싶어요".

마당극 배우인 그는 정작 방송인으로 대중에게 더 알려져 있다. 이데 대해 지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방송과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사투리와 속담을 더 익히려고 노력했고,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마당극 배우로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다, 방송일은 제가 마당극 배우로 살아 갈 수 있게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방송 활동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보탬이 되고 있고, 이것은 결국 그가 배우로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잘 노는 배우' 꿈꾸며 1인 '씻김굿' 도전

 <꽃같은 시절>에서 열연하고 있는 지정남씨
<꽃같은 시절>에서 열연하고 있는 지정남씨지정남 제공

"'천생 배우'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는 그가 방송 활동 등을 통해 만난  이들은 마당극 캐릭터로 되살아난다. <꽃 같은 시절>의 등장인물 8명 중 5명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씨는 요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씻김굿 공연이다.

그는 "정직하게 살았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자살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작은 공연을 하고 싶어요"라며 "무당으로 재미난 캐릭터를 만들어 웃음으로 보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1인극 형식의 씻김굿 작품을 구상 중인 지씨는 올해 안에 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그는 씻김굿을 배우고 있다.

"잘 놀고 속을 잘 풀어주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지씨가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서민들에게 어떤 '해장국'을 내놓을지 궁금해 진다. 그의 씻김굿 공연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광주도시철도공사(http://www.gwangjusubway.co.kr)가 발행하는 <광주 메트로> 여름호에 실린 '사투리로 해장해 주는 말바우 아짐' 기사를 수정한 것입니다.
#배우 지정남 #말바우 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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