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결혼생활은 한 지붕 두 살림, 딸아 넌 아니?

[서평] 정신과 전문의 한성희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등록 2013.08.02 14:58수정 2013.08.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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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책겉그림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갤리온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다 보니 젊은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는 결혼 시기가 꽉찬 여성들도 있고, 이미 혼기를 놓친 여성들도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구속됨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워킹우먼'이 좋거나, 부모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는 까닭에 그걸 닮을까봐 결혼 자체를 싫어 하는, 그런 경우들 말이다. 그래도 부모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것이다. 


정신분석 전문의 한성희는 자신이 쓴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통해 그렇게 말한다. '치열하게 싸울 수 없다면 절대 결혼하지 마라'고 말이다.

잘못 오해하면 그녀가 '결혼금지론자' 같지만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매일같이 풀고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게 결혼생활이기에 그걸 고민하고 대화할 수 있는 남편이라면 기꺼이 결혼하라고 주문한다.

사실 나도 아내와 산 지 이제 11년 남짓 됐다. 33살에 5살 차이가 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살고 있다. 결혼 초에는 누구보다도 달콤한 관계였다. 하지만 차츰차츰 그게 현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됐다. 결혼 한 뒤의 자녀계획과 교육부분, 돈 관리, 하다못해 양말 벗어 놓는 것과 변기 사용문제는 지금까지도 풀어가고 있는 부분들이다. 30년 가까이 홀로 살아온 자기 방식과 문화를 어찌 한 순간에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런 관계들 때문에 그녀는 자기 딸에게 그런 충고를 했던 것이다. 딸이 남편으로 맞이하게 될 그 남성도 쉽게 아내와 한 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만큼 둘이 한 몸을 이루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남편될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대화가 가능하다면 기꺼이 결혼하라고 주문한다. 결혼생활이란 바로 그런 조율과 조화의 삶이니 말이다.

33년간 약 20만 명의 환자를 만나며 7만 시간을 진료한 한성희씨도 그렇다. 그녀는 지금 30살이 된 딸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딸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거나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상황이 못 된다. 그녀의 딸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난 뒤 그곳에서 취직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한국에 들어오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란다.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 미국서 혼인하여 살겠다고 선언했단다.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들 역시 독립이 어렵다. 딸의 성장 과정에서 유독 강렬한 정서적 일체감을 경험한 엄마들일수록 딸의 독립은 엄청난 심리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한 성인으로서 단단할 때에만 견뎌 낼 수 있는 시련인 것이다."(237쪽)

가정적으로 힘들게 살아 온 어머니들일수록 딸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법이다. 심리적인 보상 차원에서 말이다. 또 심한 경우에는 나르시시즘의 연장선에서 자기가 못 이룬 꿈을 딸에게 강요하거나 실패한 인생에 대한 책임을 딸에게 덮어씌우는 엄마들도 많다. 그만큼 딸과 엄마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렇듯 결혼적령기에 처한 딸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꼭 그런 딸을 둔 어머니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중고등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을 딸들,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을 딸들, 직장 3년차에 대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을 품고 있을 딸들을 향한 다정한 마음도 베어있다. 

그 가운데서 중고등부 학창 시절에 겪은 자신의 경험담은 정말로 새겨들을 만하다. 한성희 원장은 학창시절 어머니 곁에서 천을 자르고 이으며 바느질을 하고 놀았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는 핀잔을 주거나 꾸지람 같은 걸 하지 않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때의 바느질이 의사로서 몸담고 있을 무렵에 그렇게 쓰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다른 누구보다도 '청춘의 삽질'에 대해 힘차게 격려하는 것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삽질하는 게 허무맹랑한 일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녀는 그런 삽질도 모두 쓸모 있는 일이라고 추켜세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에, 불황이 장기화되는 시대에, 엉뚱하게 행한 그 삽질 덕에 또 다른 인생 2막이 펼쳐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에서다.

"20대에게 결혼이라 함께 있고 싶음이다. 30, 40대에게 결혼은 생산의 개념이다.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고, 재산을 쌓아 나가는 시기다. 50, 60대에게 결혼은 한 지붕 아래 두 살림이다. 둘이서 하나로 살았으니, 이제는 다시 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49쪽)

다시 결혼이란 주제로 돌아 온 느낌이다. 각각의 세대에 걸맞은 각각의 결혼관념들이다. 현재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내 아내, 그런 딸을 둔 장모님은 어떻게 자기 딸을 바라보고 있을까?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집 사고, 재산을 모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세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50대 후반을 살고 있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보노라면, 꼭 이 책에 나온 그 세대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한 지붕 아래에 함께 살고 있지만, 예전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 말이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얼마 전 장모님께서 2주 동안이나 멀리 외출한 것 말이다. 그것도 온데 간데 소식도 없이 말이다.

그때 아내는 그런 입장이었다. 자기 어머니가 무모하다고 하면서도, 그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말이다. 여태껏 받아 온 아버지의 구속이 너무나도 싫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것은 울 어머니의 모습을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쪼록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대변해주고 있고, 그래서 더 슬프기도 하고 또 힘을 얻기도 한 이 책을, 모든 여성분들이 꼼꼼히 챙겨봤으면 한다. 남성인 나도 공감하는 바가 많은데, 여성들은 더더욱 눈물을 흘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 30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한성희 지음,
갤리온, 2013


#한성희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20대 결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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