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번꼴로 병원에 다니는 안부엽씨는 종일 누워 생활한다. 살림은 모두 70대 후반의 부인 몫이다.
임온유
"몸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해."운문1리의 김돌암(79·여)씨는 젊은 시절부터 다리와 허리가 아파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남편 안부엽(77)씨와 함께 산다. 방 하나, 작은 거실과 부엌이 있는 집에서 남편 안씨는 거의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김씨도 다리가 불편해져 농사를 짓지 않은 게 4년째다. 2970㎡(900평)의 논과 198㎡(60여 평)의 밭이 있지만 일용직 농사꾼들에게 일을 맡기고 있다. 자기 땅에 농사를 지으니 먹고 사는 걱정은 크지 않지만 성치 못한 몸이 제일 큰 고통이다.
안부엽씨는 이틀에 한번 꼴로 병원을 찾는다. 집에선 내내 누워있지만 병원에 가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버스와 택시를 타야 한다. 영주 시내까지 가는 데 40분 가량 걸리는데 직행 버스가 없어 다른 버스와 택시를 갈아탄다. 병원에 자주 가야 하니 택시비가 꽤 부담이 된다.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지어 오지만 별 차도가 없다는 것이 더욱 속상하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 사는 최병인(78)씨는 13년 전 척추수술을 한 뒤 허리를 거의 쓰지 못한다.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는데 역시 오가는 길이 고통이다. 병원이 있는 제천시 중앙동으로 가는 길은 1시간이면 되지만 버스가 하루 3회만 운행하기 때문에 아침 7시30분 첫 차를 타고 나가도 오후 1시 30분이 되어야 집에 올 수 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불편해 참고 참았다가 아주 많이 아플 때만 왕복 5만 원짜리 콜택시를 이용해 병원에 간다. 최씨는 "약을 먹어도 잘 낫지를 않는다"며 "아파도 참고 사는 게 생활의 일부"라고 한탄했다.
119 구급차 출동 기다리는 데만 1시간 영주와 제천 등 농촌 마을 노인들의 공통점은 수십 년 농사를 지으며 허리, 무릎 등에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이 있다는 것이다. 아파도 치료비 등의 부담 때문에 어지간하면 참는다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은 병원이 너무 멀다는 것이다. 운문1리 노인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일 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병원치료가 필요한데, 교통비가 많이 들거나 오가기가 불편해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먼 병원'의 문제는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제천 도화리의 한 노인이 한밤중에 복통을 일으켜 119구조대를 불렀지만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어렵게 제천 시내 병원으로 갔지만 상태가 심각해 강원도 원주의 종합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다. 도화리의 이미자씨는 "가까이에 병원이 있어 간단한 치료라도 빨리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런 위험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농촌 마을 부근에는 보건소가 있어 1차 진료기관 역할을 하지만 노인들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주 운문1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이산면 보건지소에는 한방·양방 공중보건의 2명이 있으며 내분비계, 당뇨, 관절염, 위장질환, 감기 등 기초적인 검사 및 치료와 침 시술이 가능하다. 또 진료비는 일반 병원에 비해 훨씬 싸다. 하지만 보건소로 가는 길 역시 버스 운행이 뜸해 접근성이 낮은데다 정작 노인들에게 필요한 치료는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 보건소, 보건지소는 예방 차원의 일차보건의료를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관절염, 디스크 등 만성질환이나 중병을 앓는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영주시 이산면보건지소 박준상 공중보건의는 "노인들에게 중증질환을 앓고 있다면 2, 3차 병원에 가길 권한다"고 말했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문건강관리사업도 하고 있지만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체크 등 기초적인 서비스에 그친다. 이산면보건지소 김미희 행정 담당자는 "'음식 싱겁게 먹어라', '앉아 있지 말고 운동하라'는 지침을 내려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서 보건소에 대한 노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제천 도화리 정순헌(68․여)씨는 "거기 가서 뭐하냐"고 쏘아붙였다.
"에이, 혈압약이나 감기약만 타먹지. 노인네들이 자다가 아프거나, 밭에서 일하다가 아파서 남의 차 힘들게 얻어 타고 가도 의사는 없어. 간호사 시켜서 약이나 처방해 주라고 말하고. 걸핏하면 강의하러 가서 없고, 숙소에 있다가 뛰어나와서 보기나 하고. 촌 노인네들은 다 불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