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해군기지, 큰 뱀이 웅크리고 있네"

[강정 평화마음 동화②] 강정천은 얼음물

등록 2013.08.05 15:16수정 2013.11.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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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이동수

진섭이네 들어가는 올레가 시끌시끌하다.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갈아세우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마을 삼촌들이 깃대로 쓸 대나무를 엄청 많이 베어왔다.


대문을 나오면서 우리 집 깃발을 쳐다보았다. 대나무도 낡았고 깃발도 노란색이 다 바랬다. 어느 날은 높이 매달려 소리를 치듯 펄럭이지만, 대부분 어깨가 축 처진 채 우울해 보이는 깃발. 오늘 학교 갔다 오면 새 깃발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따라 나오며 물으셨다. 

"학교 끝나고 물놀이 누구하고 가나? 감자 쪄다 줄까?"
"진짜? 진섭이 윤재 성우랑 가우다. 근데 감자만?"
"감자 말고 뭐? 조그만 아아 놈덜 노는 데 닭 삶나?"
"할망, 수박도~. 전에 아빠랑 갈 때 수박도 가졍 가나지 안 헙디강?"

오후에 공사장 앞에는 들꽃 이모와 수녀님 한 분이 백합꽃 담긴 항아리를 가운데 두고 앉아 계셨다. 우리 마을은 한라봉과 감귤도 많이 나지만 백합도 많이 키운다. 작년에는 공사장에서 비산 먼지가 날아와 한라봉이랑 백합꽃이 많이 못 쓰게 되었다. 해군기지 공사 시작되고부터 우리 마을은 근심거리 투성이다. 

"아이고 상규 큰 거 봐라. 멱 감으러 간?"

벌떡 일어서서 반기는 이모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막 달려갔다. 뜨거운 햇빛 받으며 앉아 있는 이모에게 미안했다. 트럭이 들어가거나 나오면 이모는 또 길 저쪽으로 끌려가 내팽개쳐질 것이다.  


"저거 봐! 뱀이야!"
"뭐라? 뭐?"

맑고 찬 물에서 실컷 헤엄치다가 송사리 쫓으며 노는데 윤재가 소리쳤다. 냇물 가운데 솟은 바위에 노란 줄무늬 뱀이 혀를 날름날름! 또아리 튼 몸이 슬슬 움직이는 것 같았다. 슬그머니 무릎을 굽혀 우리는 물속에서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완전 겁이 났다. 물속으로 몰아내면 우리를 물지도 모른다. 도망치면 뒤쫓아 올 것 같아서 슬슬 뒷걸음질 쳤다.


"괜찮다. 이리 나오라. 뱀이 따뜻한 바위에 올라가 쉬는 거다. 삼촌이 봐줄 테니까 뒤돌아서 뛰엇! 핫핫핫."

찬호 삼촌과 콧수염 감독님이 카약을 들고 서계셨다. 할머니도 오셨다. 그늘이 진 강정교  밑으로 갔다. 수박은 달고 지슬은 폭신폭신했다. 마을 쪽에 배롱나무 꽃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저기 풍림콘도 후문 보이지? 4·3 때 우리 어멍하고 나하고 저기 숨었었다. 저 성우네 증조하르방도 애들 데리고 우리 식구랑 같이 갔지. 성우 큰하르방이 네 살이었는데 생각도 안 날 거다이."
"저기 숨을 데가 어디 있습니까?"
"콘도 짓느라고 엉(언덕)을 깎아 그렇지. 원래 냇가까지 이어진 엉에 굴이 있고 칡넝쿨 같은 거로 덮여서 숨을 만했지. 힘든 시절 다 지냈다 싶었는데, 왜 이리 우리를 괴롭히나."
"삼춘, 해군기지 공사 끝나면 우리 마을 사람들 여기 살기 어렵다던데 정말이에요?"
"아니, 해군기지 못 세운다. 작년 여름 태풍 한번 부니까 케이슨 다 뒤집어졌지 않았니? 그 뒤로 만든 것도 다 벌어졌어. 우리 앞바다는 파도가 세서 케이슨이고 삼발이고 못 견딘다."

찬호 삼촌이 카약을 태워주었다. 길쭉한 카약에 우리 네 명이 올라앉다가 뒤집혀 한바탕 허우적거렸다. 삼촌이 냇깍에서 바다로 카약을 타고 미끄러져 가는 모습도 멧부리에 서서 보았다. 콧수염 감독님은 사진을 찍고 우리는 마구 소리치며 박수를 쳐주었다. 삼촌은 돌고래처럼 멋있었다. 다리 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던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걸어왔다.

"아이고 못 살켜 이 냄새가…. 숨을 못 쉬겠다. 이놈의 해군기지. 마을 가운데 큰 뱀이 웅크리고 있는 셈이라."

종일 시동을 켠 채 서 있는 경찰버스 옆을 지나며 할머니가 중얼거리셨다. 트럭들은 중앙선도 무시하고 휙휙 돌아서 공사장으로 들어갔다.

집에 오니 튼튼한 청대에 샛노란 깃발이 매달려 대문간이 산뜻했다. 어? 예전 깃발은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적혀 있었는데 글이 달라졌다.

'생명평화 강정마을'

와, 좋다!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강정천 #카약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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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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