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점선이 원래 계획했던 철로지만, 일본은 현재 노란선으로 철로를 만들어 임청각을 두 동강 냈다.
위성지도 갈무리
임청각을 없애려는 일본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방을 불과 몇 년 앞두고 일본군은 중앙선 철도를 연결하는데, 원래는 현재 35번 국도가 지나는 안동과 영주 구간과 마찬가지로 직선으로 중앙선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은 갑자기 설계를 변경하게 된다.
안동에서 임청각을 마당을 지나 옹천역까지 돌아서 두 번이나 꺾이도록 우회를 시켰고, 그 과정에 세 개의 터널(와룡, 성남, 사동)을 뚫는다. 또 소금모래로 유명한 유적지인 '가수내'를 막기 위해 옹벽과 축대를 쌓아버렸다. 이 때문에 기차는 십 여 킬로를 돌아서 가게 됐다. 일본이 얼마나 '임청각'을 두려워 했는지 알 수 있는 실례다.
"임청각은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현재 임청각은 이상룡 선생의 증손이 이항증씨가 관리하고 있다. 이씨는 현재 임청각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임청각의 역사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베포하고 있고,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고택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설도 현대화 하면서 샤워실과 화장실을 보수했다. 안동시에서는 주변의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는 등 '임청각'을 안동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유적지로 만들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항증씨는 소개책자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과 그 후손들이 타지로 흩어지고 그 자녀들은 정규교육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임청각의 역사가 잊혀졌다" 면서 "지난 2009년에 정부가 현충시설로 지정하기 전에는 극심한 재정난을 비롯해 자손들간의 소유권다툼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임청각이 보존돼야 하는 이유는 4가지다. 첫째는 국가문화재(보물182호)고 둘째는 임진왜란때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면서 국권수호에 기여한 역사적 건물이며 셋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넷째는 조상 대대로 참 선비의 삶을 보여준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관리를 맡은 관리인은 "석주 선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산 역사현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가치가 높아 관광객들뿐 아니라 건축가들과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현재 임청각은 보다 많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일부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 같은 공사가 완공되면 고택체험에 불편이 없이 가족단위나 단체관람객들도 부담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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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두려워했던 한국 가문, 뭔가 다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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