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의 고향 가는 길, 태양이 가로등처럼 내려왔다

[디카詩로 여는 세상⑤] <대륙>

등록 2013.08.07 19:13수정 2013.08.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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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흥 가는 길
소흥 가는 길이상옥

절강성 소흥 가는 길
태양이 가로등처럼
내려와 있다
- 이상옥의 디카시 <대륙>

2011년 10월 절강성 소흥에 소재한 절강월수외국어대학과 내가 재직하고 있는 창신대학과 국제 학술교류 관계로 소흥을 다녀온 바 있는데, 이게 계기가 되어 지난해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간 역시 김해국제공항에서 중국 상하이를 경유하여 절강성 소흥에 다녀왔다.


지난해 소흥 가는 길은 필자 혼자 자력으로 가는 길이어서 다소 긴장됐다. 중국 푸동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상해 남녘으로 가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소흥까지 약 3시간여 달렸다. 짧은 중국어와 영어 단어를 나열하며 물어 찾아가는 길은 긴장되면서도 흥미가 일었다. 소흥 고속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갈 때도 택시기사에게 서툰 중국어로 말했을 때 알아듣는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다.

절강성 소흥은 무엇보다 <광인일기>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중국문학의 거장 노신의 고향이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중국도 봉건왕조 체제가 무너지고 서구의 가치관과 문물이 급격하게 유입되는 격변기에, 노신은 중국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격변기에 노신은 개인의 자유와, 민족의 자유를 위해 모든 억압과 허위에 맞섰기에 정작 그는 외로웠고 늘 소수자의 편에 서 있었다. 청년 지식인들에게 "나를 딛고 오르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1936년 10월 19일 세상을 떠났지만 시대를 밝히는 프로메테우스의 불로,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노신의 고향 소흥 가는 길, 버스창으로 바라보는 대륙에 걸린 태양은 무언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대륙이어서 그런지 태양은 시내 한 복판으로 내려와 가로등처럼 걸려 있었다. 저 태양이 중국 대륙을 환히 밝히듯, 프로메테우스의 꺼지지 않는 불로 살아 있는 영원한 청년 노신을 어찌, 소흥 가는 길에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27일 절강월수외국어대학에서 개최된 한국문화 국제포럼에서 나는 <SNS와 디카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절강월수외국어대학의 한국어과는 매우 활성화되고 있다. 이 대학에서 한국문화 세미나를 해마다 개최한다. 중국대학 소재 한국어과 교수들과 한국대학의 몇몇 교수들이 함께 모여 한국문학, 문화를 논의하는 것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에서도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행사를 마치고 조선족 출신 교수와 함께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하나라의 시조인 우와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대우릉을 관광했다. 우는 치수를 잘하여 순왕에게 왕위를 넘겨 받는 전설적 인물이다. 순왕이 얼마나 우의 인물됨을 믿었으면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러주지 않고 우에게 그랬겠는가.

중국은 오랜 역사가 대륙으로 펼쳐져 있어, 곳곳에 영웅담이 산재해 있다. 노신도 더 세월이 지나면 영웅담으로 전해질 듯하다. 노신기념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와 편지 등 600여 점의 사료가 전시돼 있다고 하는데, 일정상 둘러보지는 못했다.


다음 번 소흥 가는 길에는 꼭 노신기념관을 둘러볼 작정이다. 절강성 소흥은 대우릉도 있지만 노신의 고향이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소흥 가는 길에  가로등처럼 내려와 대륙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이 보기 드문 장관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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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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