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
권우성
"급해요."
권오인(40)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이하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경전철 사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지하철 9호선·우면산 터널 등 서울시의 민간투자사업(이하 민자사업)을 감시해 온 그를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앞에는 서울시가 지난 2일 공개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 용역 보고서'가 있었다. 700쪽이 넘는 분량이다.
박 시장이 급해진 이유를 그는 선거에 있다고 추측했다. "노원구와 관악구 신림에는 '민주당이 해냈다'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렸다"며 "결국에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중심의 서울시의회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입김에 박 시장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서울시장 선거가 경전철 사업 발표에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민자사업 전문가의 충고 "시범 운영한 뒤 신중하게 하자"박 시장은 취임 1년 9개월여만인 지난 7월 24일, 경전철 9개 노선 신설을 골자로 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한 뒤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가 민간 자본 사업자(이하 민자)에게 경전철의 건설과 운영을 맡겨 진행하는 사업이다(관련기사 :
'빚 26조' 서울시, 8조 대형사업 가능할까?). 10년간 총 8조5000여억 원이 드는 이 계획이 공개되자, 박 시장에 우호적이던 시민단체들도 "박원순 스타일이 아니다, 박원순식 4대강 사업"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나라살림 연구소·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등 8개 시민단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가 8조5533억 원이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경전철 사업을 하면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도 하지 않았다"며 "경전철 건설 계획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서울시가 용역보고서를 공개하고 시민단체에 토론회를 제안하는 등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지만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권 팀장의 눈에도 탐탁지 않다. 그는 "이대로 가면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을 따라가게 된다"며 "박 시장이 기존 정치인들이 하던 공공대형 사업을 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사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외부 검증이 이뤄지고 난 뒤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박 시장에게 조언했다.
그는 시가 공개한 용역보고서를 검토 중이다. 그는 "700쪽이 넘는 분량이라 며칠 만에 충분한 검토는 어렵지만 한 눈에 봐도 추상적인 보고서"라며 "재원 조달 방안·민자 사업 추진 방식 등에서 서울시가 보완해야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에게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고 하니 부탁의 말을 남겼다.
"재원조달 계획·민자 사업 추진 이유·경제적 타당성에서 비용이 축소된 이유, 9개 노선을 10년 안에 추진해야할 만큼 시급한지 등을 제가 얘기했던 것들 꼭 물어봐주세요."
다음은 권오인 팀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추상적인 용역 보고서... 재원 조달 계획 등 빠진 게 많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경전철 사업 발표에 대해 소통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박 시장은 취임 때부터 무분별한 토건 사업을 경계했다. 또 민자 사업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발표부터 해놓고 밀어붙였다. 9개의 경전철을 10년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짓는다는 것은 서울을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박 시장의 기존 철학과 배치되고 있다. 이미 노원구와 관악구 신림에는 '민주당이 해냈다'는 식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결국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것이다. 내년에 지방 선거가 있으니 이에 맞춰서 발표하지 않았겠나. "
- 박 시장이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서울시가 보완·개선한다는 기대를 할 수 있지 않나?"지난 주,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에서 전화가 와서 토론회 참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토론회에 참고할 용역보고서를 8월 2일에 발표해놓고 6일에 토론회를 하자고 했다. 700쪽이 넘는 보고서를 4일 안에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 영역이 많아 밤새 봐도 쉽지 않다. 토론회를 할 수는 있겠지만 수준 높은 토론이 되기 어렵다.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자기 입장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다. 서울시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다 같은 의견일 것이다. 사업 검증이 한두 달에 끝나는 게 아니다. 여러 논란이 터져 나오면 그 보다 더 1년 가까이 길어질 수 있는 문제다. 서울시가 급한 것 같다."
- 박 시장은 경전철 사업의 당위성을 '교통 소외 지역의 복지'에 맞췄다. 소외 지역 복지를 위해서 서울에 9개나 경전철이 필요할까?"당장에 9개 노선을 일시에 추진할 만큼 시급하지는 않다. '교통 소외'라는 박 시장의 명분도 빈약하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걸어 다니는 게 아니다. 구석구석 마을 버스가 다 있다. '어디서나 10분 안에 도시철도'라는 구호로 시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 서울시가 지난 2일 공개한 용역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다. 보고서를 총평한다면?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민자 사업 추진 방식 등이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다. 어떻게 재원을 끌어올 것인지는 보고서를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가용 재원만 밝히고 있는데 서울시의 세입에서 지출을 빼고 쓸 수 있는 재원을 뭉뚱그려서 제시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향후 예산 배정 순위와 항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어디서 돈을 끌어올 것인지 모르겠다. 실제 투자가 안 된다면 빚을 낸다는 것 아니겠나.
경제적 타당성을 산출하는 변수도 검증해야 한다. 변수에 운영 비용·대기오염 감소·통행시간 절감 등을 설정할 수 있는데 이런 변수들이 과연 제대로 적용된 것인지, 또 변수 산출이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서울시가 경제적 타당성과 수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고 나머지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전철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재무적 타당성은 이미 마이너스로 나왔다. 향후 서울시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발표해야할 것이다."
"수요가 많든 적든, 민자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