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위미 바닷가에서 조성일씨
사진작가 임종진
첫 음반의 7할은 감귤밭 창고에서조성일씨는 하원이라는 작은 마을에 '뜬금없이' 있는 아파트에 산다. 창문을 열면 한라산이 가리는 것 없이 다 보이고, 옆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그는 기적같이 이 집을 구했다. 제주에는 '신구간'이라고 해서 매년 대한(大寒) 후 5일부터 입춘(入春) 전 3일까지 총 7일 동안 이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조씨는 2012년 3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꽃다지' 공연을 하게 되면서 그해 '신구간' 시기를 놓쳤다. 공연이 끝나고 서귀포에 갔지만, 공연 전에 애써 조사했던 정보들은 이미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귀포에 있는 한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가 기적처럼 현재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를 소개받았고 보자마자 바로 계약을 했다.
지난해에는 지인의 감귤밭에서 일을 했다. 감귤을 리어커로 운반하고 수확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는 당시 감귤밭에 있던 창고에 평상 하나를 갖다놓고 작업실로 사용했다. 그에게는 너무 소중한 공간이었다. 여름 내내 감귤밭 작업실에서 내내 잠도 안자면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중해서 계속 노래를 만들었다.
"이번 음반에 들어가는 노래의 60~70%는 그 감귤밭 창고 평상에서 나온 거에요. 나머지 30~40%는 차 안에서 나왔고요. 차 타고 가다가 중얼거리다보면 '괜찮은데' 하고 나오는 곡들이 있어요. 동기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놓고 창고에 가서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거죠."감귤밭 작업실에 계속 있다 보니 '밥을 얻어먹는' 등 '민폐'를 끼치는 횟수가 늘게 되자 최근에는 어린이집 부근에 작업실을 구해 어린이집 근무 사이 비는 시간과 퇴근 이후에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에 <하늘을 나는 새>는 제주에 와서 만든 노래로, 차를 타고 막힘이 없는 제주 도로를 가면서 '이런 게 자유인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다 놓고 오니 훨씬 넓은 걸 볼 수 있더라는 깨달음이 담긴 노래다.
"꽃다지 4집은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현장에서도 좋아해 줬어요. 저도 몇 곡을 썼는데, 그 곡들도 괜찮은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계속 꽃다지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 거 다 내려놓고 온 거니까. 내 상태를 생각 안하고 욕심 부렸으면 있을 수 있었겠죠. 그런 느낌을 담은 노래에요."하늘을 나는 새 넌 알고 있었지 모든 욕망을 버리고 가볍게 떠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하늘과 바다 얻을 수 있는 평화와 자유 - <하늘을 나는 새> 또 하나의 인연, 강정마을"하원마을에서 차로 5분만 가면 강정마을이에요.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몰랐어요. 이사하고나서 지도를 보니까 강정이 밑에 있는 거예요. 연이 되려고 그러나보다 생각했죠.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놓지 말고 계속 뭔가를 하라는 의미인가보다. 서울에 있었으면 음악을 아예 못 했을 거예요. 제주에 와서 상태가 나아지면서 조금씩 다시 하고 있는데, 긴장을 하라고 옆에 강정이 있는 거구나 했죠."기적처럼 살 집을 구한 것과 함께 또 하나의 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강정마을, 그리고 강정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정착을 위해 제주에 온 것이기에 사람을 천천히 만나고 관계도 천천히 맺고 싶었다. 그래서 강정과도 급하게 연을 맺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지난해 여름, 강정포구에서 '평화활동가대회' 문화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서 멀찍이 앉아 지켜보고 있었는데, 두물머리에서 활동하던 가수 '쏭'에게 존재를 들키게 된다. 즉석에서 다음날 있을 예정이던 평화활동가대회 행사 공연 섭외를 받고, 이를 수락하여 제주에서 첫 번째 무대에 서게 된다. 이를 통해 그가 제주에 왔다는 소문이 강정마을을 포함하여 그를 알만한 제주 사람들에게 퍼졌다. 요즘은 신중한 '정착 지향자'의 자세를 견지함과 동시에 자신이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제주에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강정마을에 가고,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행사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익산 금산사 템플스테이 '내비둬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조성일씨에게 제주는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