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억원짜리 그림, 이렇게 망가뜨려도 되나

[2013 전국투어- 대구경북울산⑨]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논란

등록 2013.08.20 20:49수정 2013.08.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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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8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구·경북·울산입니다. [편집자말]
 올해 봄 갈수기 때의 반구대 암각화 모습.
올해 봄 갈수기 때의 반구대 암각화 모습. 사진작가 권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에는 각종 동물과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200여 점이 새겨져 있다. 본래 반구대는 '거북이 엎드린 모습'이라는 뜻으로, 암각화는 반구대라는 256m 산자락 절벽의 바위 가운데 높이 3m, 너비 10m 안에 선사인들이 갖가지 그림을 새겨넣은 것이다.

학자들이 추정하는 반구대 암각화 제작 시기는 기원전 3500년~7000년으로, 그 추정 연대의 폭이 넓다. 지난 7월 울산대에서 강연한 장석호 동북아역사재단 박사는 반구대 암각화를 "7000년 전 문자가 없던 시대 사람이 그림으로 표현한 문화경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구대 암각화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스페인 알타미라 암각화 등 세계적인 암각화들이 주로 육지동물만을 표현한 데 반해 반구대 암각화는 육지동물은 물론 바다동물 80여 점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래사냥을 하는 사람의 모습 등 고래와 관련한 그림이 많다는 게 특이할 만한 점이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의 위치가 울산 앞바다와 25km가량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고래를 사냥하는 그림은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여러 종류의 고래와 사람이 고래를 잡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이 당시 생활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학계 등의 연구로 이곳이 바다와 인접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의문이 풀리고 있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재가 수십 년간 훼손되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지난 10여 년 간 암각화 보존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울산지역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두고, 지역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의 훼손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가치 4926억원, 국내 문화재 중 최고

지난 2009년 문화재청은 전국 20세 이상 남녀 5900명을 대상으로 국가문화재 가치를 산정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건부가치평가법(CVM)을 적용했는데, 설문과 연계해 국민들의 평균지불의사를 계량화한 것.

조사 결과 반구대암각화의 가치는 4926억 원으로 국내 문화재 중 가장 높은 가치가 부여됐다. 정이품송 4152억 원, 종묘제례·제례악 3184억 원, 창덕궁 3097억 원, 팔만대장경 3080억 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국보 285호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국보 285호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문화재청

이러한 문화재가 '훼손'이라는 비극을 맞은 것은 산업화의 영향이 크다. 인구 10만 명의 조용한 농어촌이었던 울산은 1962년 정부로부터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공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보통 한 도시에 공장이 들어서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은 늘어나는 인구와 물의 소비다. 특정공업지구 지정 이후 늘어나는 인구·공장에 물을 대기 위해 울산에는 댐들이 속속 건설됐는데, 1965년 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 하류에 생긴 사연댐도 그중 하나다.


사연댐이 하류에서 물을 가두니 대곡천이 불어났고, 자연스럽게 대곡천의 앞의 반구대암각화도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면 물에 잠기는 상태가 된 것. 이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우수기인 6~7개월을 물에 잠겨 있어야 했다. 다행히(?) 올해는 울산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현재 반구대 암각화 앞 대곡천은 바짝 말라 있다.

결국 선사인들은 수천 년 전 물을 의식하지 않는 위치에서 바위에다 마음 놓고 그림을 그렸지만 후손들이 물을 더 많이 가두기 위해 댐을 건설했고, 급기야 그림을 그리던 자리가 일년에 절반은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댐 건설 당시는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반구대 암각화가 댐이 건설된 후 6년이나 지난 1971년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받고 이곳을 조사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기 때문이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퇴적암 재질이라 물에 잠기면 훼손이 가속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훼손 상태를 공식적으로 최근에 확인한 것은 올해 3월 11일. 당시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와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 등은 반구대암각화 현장을 탐방하면서 암각에 새겨진 그림이 훼손된 것은 물론 암각화 바위의 표면이 일부 떨어져나간 곳도 적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오랜동안 반구대 암각화를 촬영해온 사진작가 권일씨는 "지금의 반구대 암각화는 10년 전과 비교해 너무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며 "우리 민족이 5000년 역사를 가졌다고 하는 증거가 반구대 암각화인데, 너무 빨리 훼손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변영섭 교수 등이 3월 11일 반구대 암각화 훼손을 목전에서 발견한 지 4일 뒤인 3월 15일, 훼손 확인자인 변 교수가 여성최초의
문화재청장으로 임명된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 두고 문화재청·울산시 8년간 공방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카이네틱 댐이 설치됐을 경우 물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보호되는 가상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카이네틱 댐이 설치됐을 경우 물에서 반구대 암각화가 보호되는 가상도 문화재청

1971년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후 훼손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됐지만, 본격적인 보존 대책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6년 초, 가뭄으로 드러난 반구대 암각화에서 백화현상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 일부가 하얗게 변하면서 결국 빨리 보존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본격적으로 높아진 것.

이때부터 반구대암각화 보존방법을 두고 정부(문화재청)와 울산시의 공방이 본격화됐다. 결론적으로 지난 6월 정부와 울산시는 오랜 공방 끝에 '카이네틱 댐(가변형 투명 물막이)'이라는 임시방편을 보존대책으로 합의했지만, 이는 영구적이고 실질적인 보존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과 훼손에 대한 책임을 두고 울산시와 문화재청 양측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그동안 문화재청은 줄곧 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가 만들어진 본래의 상태로 돌려야한다는 입장인 반면, 울산시는 물 부족을 이유로 들어 반구대암각화 앞에 차수벽(물막이벽) 혹은 제방을 쌓는 안을 고수했던 것.

울산시는 초지일관 사연댐 수위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식수 부족'을 든다. 울산시의 물에 대한 요구가 강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09년 경북 청도 운문댐과 경남 밀양댐의 잔여 물줄기를 울산으로 연결하는 방안과 정부예산 3400억 원을 투입해 2만 톤급 소규모 댐 2개를 건설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타당성 검토에서 불합격을 받아 결국 불발됐다.

새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보존방법을 합의하지 못해 비난여론이 높았던 가운데 올해 들어 상황이 변화하는 듯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전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더 잘 알려진 변영섭 교수를 문화재청장에 전격 임명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이 댐 수위를 낮추는 것 뿐이라고 했고, 변영섭 청장도 이 주장을 펴왔다.

변영섭 청장은 지난 수년 간 반구대암각화 보존방법에서 토건방식을 고수하는 박맹우 울산시장에 맞서 댐수위 조절을 요구하며 싸워온 대표적 인물이다. 이 때문에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법에서 진보적 입장을 갖고 있던 변 청장을 임명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이 드디어 댐 수위 조절로 낙점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변영섭 문화재청장 임명 후 친박인 박맹우 울산시장을 비롯한 지역의 보수세력은 박 대통령의 의중 여부와는 상관없이 반구대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는 안을 고수하면서 더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일부 지역주민들은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암각화를 현장 조사하려 하자 꽹과리를 두드리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지역 보수세력을 등에 업은 박맹우 시장의 의지가 관철됐다. 비록 박 시장의 안대로 흙으로 제방을 쌓는 것은 아니지만 댐 수위를 낮추는 안은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댐 수위를 낮추는 대신 반구대 암각화 앞에 투명 재질인 카이네틱 댐을 설치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로 합의했다. 흙으로 댐을 쌓는 대신 반구대 암각화를 멀리서 볼 수 있는 투명 프라스틱 제질로 바뀐 것.

지난 6월 16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변영섭 문화재청장, 박맹우 울산시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등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카이네틱 댐(Kinetic Dam) 설치 추진 협약을 체결하고 이 안대로 움직이고 있다.

카이네틱 댐은 투명한 재질의 고강도 보호막으로 된 소규모의 댐으로, 수위 변화에 따라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 장치를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반구대암각화의 모체바위와 그 앞 대곡천에 쇠파이프로 고정 장치를 박아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일각에서는 충격에 따른 반구대암각화 붕괴위험을 제기하고 있다.

이 안이 성사되려면 문화재위원회의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카이네틱 댐 건설은 울산시와 정부가 중재한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울산시는 8월 5일 카이네틱 댐 설치 기초조사 용역에 들어간다고 밝힌 후 6일 입찰공고를 냈다. 8월말 적격심사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오는 9월 초 본격 조사에 착수해 11월까지 기초조사를 마친다는 게 울산시의 계획이다.

"물 부족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니..."

 반구대 암각화 초입.
반구대 암각화 초입. 사진작가 권일

반구대 암각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존 방법을 두고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대립해 온 것은 결국 '물' 때문이다. 문제의 사연댐은 갈수기엔 52미터,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엔 60미터의 댐 수위를 보인다. 댐수위가 항상 52미터를 유지하면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길 염려가 없지만, 우수기때 불어난 8미터의 댐 수위로 암각화도 물에 잠기게 되는 것. 이 때문에 문화재청은 댐 수위를 항상 52미터로 유지하도록 댐 수위를 조절하자는 안을 제기했지만, 울산시는 물이 부족해진다며 차라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 둑을 쌓자고 주장해왔다.

울산시에 따르면 현재 전체 울산시민에게 필요한 물은 하루 33톤. 울산시에 있는 전용댐은 사연댐(1965년), 대암댐(1969년), 회야댐(1986년) 등으로, 이 댐에서 나오는 물로도 모자라 하루 6만 톤가량의 물을 낙동강에서 연간 35억 원의 비용을 들여 끌어오고 있다.

울산시 담당자는 "지금도 물이 모자라 돈을 주고 낙동강 물을 끌어오지만, 물의 품질이 나빠 문제"라며 "이런 와중에 사연댐 수위가 낮아지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국토해양부 조사 결과, 사연댐 수위를 52미터로 낮춰도 하루 평균 공급하는 댐의 물의 양은 14만2000톤이 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공방을 두고 지역의 보수단체 등은 카이네틱 댐으로 합의되기 전까지 연일 문화재청을 향해 "울산시민의 식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카이네틱 댐으로 서둘러 합의되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그 동안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울산시민연대와 울산환경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울산시민단체협의회는 울산시와 박맹우 시장이 고수하는 물 부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에 물을 대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울산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 6월 현장에 가서 보니 현재 사연댐의 수위는 52미터 이하로 내려가 있지만 울산의 식수는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참석자 모두 확인했다"며 "이는 울산시민 누구나 (수자원공사 등에) 공개된 자료와 현실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계속 울산시는 물 부족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작 울산시와 국토해양부 모두 울산의 물 수요 및 사연댐의 물 공급 능력에 대해서는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국보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정부와 울산시 모두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울산시민단체협의회는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카이네틱 댐 건설은 여러모로 부적절한 합의이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며 "우선 즉각적 보존조치로 내놓은 임시방편치고는 반구대암각화 원형훼손여부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구조물"이라고 강조했다. 
#반구대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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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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