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속에 끝없이 이어진 1.4 후퇴 피난행렬, 피난민들이 봇짐을 지고 서울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1951. 1.).
NARA, 눈빛출판사
[제2부를 시작하면서]이번 50회부터는 <어떤 약속> 제2부다. 그동안 제1부 첫 회부터 그때그때 빠짐없이 읽어주신 많은 애독자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혹 중간에서 읽으시거나 이제부터 읽는 분을 위하여 제2부 시작에 앞서 그동안 연재된 제1부 줄거리를 간단히 들려드린다.
이 작품의 화자인 박상민은 작가로 2007년 2월 하순,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하였다. 그런 가운데 한 인민군 포로가 미군 포로신문관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진을 발견하고, 그 포로가 매우 어린데 놀랐다. 그 순간 문득 어린 시절 자기 고향마을에 흘러온 인민군 포로 김준기 아저씨가 떠올랐다. 이 작품의 남 주인공 김준기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평북 영변군 용산면 용문중학교 학생으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한다. 여 주인공 최순희는 서울 적십자간호학교 학생으로, 인민군 서울 입성 후 의용군에 입대한다. 이들은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위생병 사수 조수로 만난다. 1950년 8월 하순부터 유엔군 총공세로 날마다 다부동 유학산 일대에 쏟아 붓는 미군 B-29 폭격기의 폭탄 세례를 견디지 못해 최순희는 김준기를 꼬드겨 한밤중 두 사람은 전선을 탈출하여 낙동강을 건넌다. 이들은 한 민간 집 행랑채에서 몸을 피하면서 서로 정을 통한다. 최순희는 탈출 도중 이별을 대비하여 김준기에게 전쟁이 끝난 뒤 8월 15일 낮 1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이후 탈출 도중 김준기는 유엔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휴전을 앞두고 남이냐, 북이냐를 결정 순간에 고향의 어머니냐 서울의 순희냐의 선택에 몹시 갈등을 느끼다가 포로송환을 묻는 기표소에서 먼저 떠오른 얼굴에 따라 'S'(South, 남)와 'N(North, 북)'을 택하기로 작정한다. 준기는 마침내 'S'쓰고 반공포로로 남녘에 남는다.1953년 6월 18일 새벽 2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김준기는 천만 뜻밖에도 헌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수용소 철조망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준기는 그렇게 그리던 바깥세상에 나왔건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때 준기의 실망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도 준기는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최순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는 포로 석방 일주일 뒤 국군에 입대한다. 군 복무 중에도 약속한 날 대한문에 갔으나 끝내 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준기는 강원도 화천의 한 국군부대 의무실에서 복무한 뒤 제대하고는 곧장 순희를 찾아나선다.[제2부]
#14. 구미형곡동구미사람들은 '형곡동(荊谷洞)'을 '사창' 또는 '시무실'이라 불렸다. 사창이란 별칭의 유래는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환곡을 저장해 두던 곳집 '사창(社倉)'이 이곳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시무실이란 '가시골'의 변형된 말로, 예로부터 이 마을에는 가시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었다.
1950년대 경북 선산군 구미면 형곡동은 일백 호 안팎의 꽤 큰 마을이었다. 그 무렵 이 마을도 다른 예사마을처럼 이른 봄이면 양식이 떨어지는 집이 많았다. 그럴 때면 이 마을 아낙네들은 금오산에서 산나물 푸성귀를 뜯어다가 알곡 반, 나물 반의 나물밥이나 국수, 수제비, 범벅 등으로 끼니를 이어갔다. 그 시절 봄이면 대부분 구미 일대 사람들은 몇 날 며칠 굶주려 피부가 누렇게 붓는 부황에 시달렸다.
1956년 8월 하순 어느 날, 저물 무렵 낯선 사내가 형곡동 인동댁 집 앞을 기웃거렸다. 그 시절은 전쟁 여파로 거지들이 많았다. 하지만 낯선 사내는 행색이나 행동거지로 보아 거지는 아니었다. 낯선 사내는 대문 앞에서 집안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누군교(누굽니까)?""아, 예. 디나가는 사람입네다.""근데, 왜 남의 집안을 그렇게 기웃거리시오?""아, 디난 육니오(6·25) 때 내레 이 집에 잠시 머물고 간 적이 있어 기럽네다."그때 집안에서 30대 후반의 한 사내가 대문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어무이(어머니), 뭔 일입니까?""저 사람이 지난 육이오 난리 때 우리 집에 잠깐 머물고 간 적이 있다 카네."주인 사내는 구미 장터마을에서 가축병원을 개업한 수의사 김교문이었다. 그는 낯선 사내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