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가 친무르시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군부가 무르시 전 대통령을 축출했을 때, 그리고 이후 대량살상이 발생할 때마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미국에 쏠렸다. 이집트는 미국에서 연간 16억 달러의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군부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17일 이집트 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그간의 대응을 분석하면서 "미 정부가 했던 모든 노력은 이집트 역사상 최악의 정치적 유혈사태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호스니 무바라크에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무르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이슬람주의에 편향된 정책으로 반대세력의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봄,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한 존 캐리 국무장관은 무르시 당시 대통령에게 반대파와 접촉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무르시의 의지를 오히려 강화시켰다고 <뉴욕타임스>는 무르시 측근의 발언을 인용해 전했다.
무르시의 '독단'이 이집트 경기침체와 맞물리자 6월 말,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의 반정부 세력이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군부개입 움직임이 나타나자 미 정부는 '원조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7월 3일, 군부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무르시를 감금하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냈지만 오바마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이집트 군부에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라고 압박하면서도, 군부의 행위가 '쿠데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이러한 태도는 계속 이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대량학살이 일어난 뒤였다.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합,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스라엘은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정'은 이집트 사회 내 갈등 중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에미리트는 앞에서는 '화해'를 말하면서 뒤로는 이집트 보안병력에게 친무르시 세력 진압을 촉구했고,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외무 장관은 미국을 방문해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한 이집트 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 역시 미국의 이집트 원조 지속을 위해 로비를 펼쳤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달 랜드 폴 상원의원이 이집트 군사원조 중단 법안을 상정하자,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는 7월 31일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는(원조 중단은) 이집트에서 불안을 높일 수 있고 미국의 이익을 저해하며 우리의 이스라엘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 법안은 86 대 13으로 부결되었다.
"미국이 원조를 끊는 폭력의 기준점은 어디인가" 지난 35년 간 이집트는 미국 중동외교의 핵심지역이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미국가'인 이집트 군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인도주의적 접근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집트 군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과 최근 거의 매일 1시간~1시간 30분 동안, 총 17통의 통화를 했다. 통화에서 헤이글은 시시에게 민정이양을 압박했다. 이에 시시는 오바마 정부가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집트와 군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평했다고 미 관료는 전했다.
미 정부는 이집트 과도정부의 몇 안 되는 '온건파'를 포섭하고자 했다. 과도정부 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전직 외교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그 대상이었다. 7월 26일, 두 번째 대량 살상이 일어난 이후 엘바라데이는 부통령직 사임을 원했다. 하지만 존 캐리 미 국무장관이 이를 만류했다. 엘바라데이가 과도정부 내 강경파를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바라데이는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지난 14일 대학살 이후 결국 사임했다.
지난 4일, 캐리는 국무 부장관인 윌리엄 번스를 이집트에 보냈다. 이후 번스와 유럽연합의 베르나디노 레온 이집트 특사는 중재안을 마련했다. 레온 특사는 무르시 전 대통령의 조언자인 아므르 달라크를 만나 수감돼있는 2명의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들을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대신 무슬림 형제단은 농성장소를 2개의 캠프로 한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풀려나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6일 존 매케인과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이집트를 방문했다. 의원들은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 석방과 조속한 민정이양을 촉구했지만 군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다음날인 7일, 과도정부는 "국제사회의 중재노력은 끝났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있을 폭력사태는 친무르시 세력의 책임이라고 천명했다. 달라크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럽사회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단지 쿠데타 정부가 '협상이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주장하기 위해 불려왔다. 그리고 실제로 협상은 없었다." 9일 오후, 헤이글 장관은 시시에게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90분 동안 통화를 했고 헤이글은 폭력에 반대하고, 집회의 자유를 존중하며, 민정 이양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4일 대학살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 달로 예정됐던 '브라이트 스타' 합동군사훈련을 취소했지만 원조 중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 의회에서는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한 군사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미국이 원조를 끊는 폭력의 기준점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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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대학살' 한 달 반, 미국은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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