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본사서 면담 요청... 저승길 불려가는 기분"

현대차 관리자 역량강화교육 대상자 20여명 지목... 노동자들 "퇴출 수순" 불안

등록 2013.08.26 14:50수정 2013.08.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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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을 전후로 해 기자에게 현대자동차 과장·차장·부장 등 여러 간부사원들의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 기자에게 전화를 건 간부사원들은 "현대차 회사 측이 (우리에게) '8월 마지막 주에 서울 양재동 본사에 면담을 받으러 오라'고 통지했다"고 전했다. 한 간부사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양재동 본사 면담을 통보받았습니다. 그동안 언론보도 등으로 눈치를 보면서 시기를 늦추던 회사 측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아래 현대차노조) 파업이 진행되는 틈을 타 (간부사원들의) 퇴출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아요."

면담 대상자는 현대차가 2009년부터 도입한 관리자 역량강화교육(Performance Improvement Plan·아래 PIP)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역량강화교육'을 받은 간부사원들이 왜 양재동 본사 면담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간부사원 취업규칙' 만든 현대차

 현대차 본사 면담을 통보받은 일부 간부사원들은 불안함에 떨고 있다.
현대차 본사 면담을 통보받은 일부 간부사원들은 불안함에 떨고 있다.오마이뉴스

지난 1987년 노태우의 6·29 선언 후 전국의 노동현장에서는 노조 결성이 봇물을 이뤘고, 그 해 여름 조합원 5만여명 규모의 거대 노조인 현대차노조도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현대차노조는 지난 26년간 거의 해마다 파업을 이어오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노무관리 등에 대항했다.

특히 지난 1997년 IMF를 겪은 회사 측은 당시 정리해고 한 정규직 자리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우기 시작했고, 이후 해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거 양산됐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절반도 못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2003년 노조를 결성하고 회사 측에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비정규직들은 지난 2004년 노동부에 회사 측을 불법파견으로 고발했고, 노동부는 그 해 현대차 대부분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불법파견 판정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에 소송을 이어왔고, 비정규직노조도 소송에 맞대응했다.


이처럼 현대차에서 정규직노조에다 비정규직노조의 저항까지 거세지자 회사 측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졌다. 현대차는 노조의 파업 등에 대응하기 위해 관리자들을 구사대로 동원해 왔다. 그러다 급기야 2004년 이들 구사대 동원 간부사원들을 대상으로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만들어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취업규칙에 의해 간부사원들은 구사대로 동원은 동원대로 되면서 월차수당이 없어지고 '본분에 어긋나면 해고'라는 조항 등으로 압박해왔다. 특히 현대차 회사 측은 지난 2009년부터는 이들 간부사원들을 대상으로 PIP 제도를 도입했는데, 올해 3월 노조를 복원한 현대차일반직지회(아래 간부노조)는 이 제도를 두고 "퇴출프로그램"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관련기사: 현대차 간부들 "구사대 강제 동원... 24시간 보초").


이에 대해 회사 측은 "간부사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2009년부터 시행된 PIP 교육 이수자 271명 중 75명이 자진 퇴사 또는 해고를 당했다. PIP 교육 후 점수가 낮으면 징계를 받는데,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있는 '3년간 2회 이상 징계면 해고'라는 지침이 곧 'PIP 교육 대상자는 해고'라는 불안감을 만든 것.

"PIP 교육 종착역은 '타부서 강제 전출'"

 본사 면담 대상자인 B씨는 "현대차 회사 측은 다른 부서로의 강제전출을 '재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부서장 평가가 잘 나올 수가 없다, 한마디로 타부서 전출은 해고하기 위한 명백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본사 면담 대상자인 B씨는 "현대차 회사 측은 다른 부서로의 강제전출을 '재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부서장 평가가 잘 나올 수가 없다, 한마디로 타부서 전출은 해고하기 위한 명백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변창기

PIP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은 "PIP 교육의 종착역은 '타부서 강제 전출'"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정 횟수 이상 PIP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자진 퇴사 등의 절차를 스스로 밟지 않으면 더 이상 교육을 보내지 않고 다른 부서로 강제 전출을 1년 동안 보내는데, 이 1년 간 업무상황을 부서장이 평가해 본사로 보고한다.

지난해 7월 강제 전출자는 20여명. 이들은 1년간 타부서로 전출된 뒤 일한 결과를 부서장으로부터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 평가 결과를 토대로 현대차 회사 측이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면담을 하자고 한 것.

이번 본사 면담 대상자 중 하나인 A씨는 "타부서로 강제 전출되면 부서장의 상시 관찰, 부서장의 분기별 평가, 피평가자의 업무계획서 실적 제출 등이 이뤄진다"며 "하지만, 현업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부서장 평가가 잘 나오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서장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부서장이 평가를 잘 올리면 본사 주무 부서에서 부서장에게 경고를 주면서 다시 평가하게 한다"며 "부서장이 본래 평가 점수보다 하향 조정해서 올리면 그제야 평가 결과를 받아준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상자인 B씨는 "현대차 회사 측은 다른 부서로의 강제전출을 '재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부서장 평가가 잘 나올 수가 없다, 한 마디로 타부서 전출은 해고하기 위한 명백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소집 대상이 된 간부 사원 20여명은 8월 마지막 주 현대차 양재동 본사 면담을 두고 "저승사자에게 불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인식에 '면담'은 곧 '퇴출을 위한 수순'이었다.

현승건 간부노조 지회장은 "지난 3월 28일 간부노조가 복원된 후 노조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점차 알려지면서 회사 측이 서둘러 싹을 자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조합원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 회사 측은 PIP교육 대상자 20여 명이 서울 양재동 본사 면담을 통보 받고 불안해 하는 것과 관련해 "현재 파업이 있고 회사가 어수선해 그 부분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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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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