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 집행위원장 "무사히 내려와 감사해"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인 재능교육 노사가 해고자 12명의 원칙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에 최종 합의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202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오수영 조합원이 종탑에서 내려오자, 유득규 재능교육지부 집행위원장이 두 조합원을 포옹하며 축하해주고 있다.
유성호
두 사람은 숫자 '202'가 적힌 아이스크림 케이크 받았다. 3개의 초를 '후~'하고 분 뒤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마음이 복잡하다"고 운을 뗀 오수영씨는 "2076일 동안 힘들었던 것 다 넘기고 오늘이 왔다"며 "(이제부터) 현장에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여민희씨는 "일단 씻고 싶다"며 "웃으며 내려 올 수 있게 돼서 고맙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일지 |
- 2007년 12월 21일, 재능교육 노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 돌입 -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노조에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 2008년 10월 31일, 사측 단체협약 일방해지 - 2010년 11월 노조,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앞 농성 천막 설치 - 2012년 1월,이지현 조합원 암 투병 중 사망 - 2013년 2월 6일 오수영 조합원, 여민희 조합원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농성 돌입 - 2013년 8월 19~23일 집중교섭 및 잠정합의안 도출 - 2013년 8월 25일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총회 개최 및 잠정합의안 가결 - 2013년 8월 26일 종탑 농성 202일, 거리 농성 2076일 만에 농성 해제 및 노사 '협력과 상생을 위한 2013년 합의문'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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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와 여씨는 성당 길 건너 재능교육 본사 앞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우리가 승리했다", "끈질기게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는 구호를 외쳤다.
재능교육 노조와 연대해온 이들이 두 사람에게 축사를 남겼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온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재능지부의 소중한 성과가 학습지 노조에 국한된 게 아니고 250만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희망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오늘 철야 당번이었는데, 내려와서 기쁘다"고 말한 김희연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는 "현장으로 돌아가서 더 무겁고 긴 싸움을 해야 할 텐데 끝까지 지지하고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병원에서 두 사람 몸이 괜찮다고 한다면, 맥주 한 잔 사겠다"며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반갑다"고 말했다.
"2076일 뚜벅뚜벅 걸어왔듯이 현장에서도 깃발 날릴 것"
이어 마이크를 잡은 두 사람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소감을 말하는 동안 울먹였다.
"위에서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누군가가 올려주는 밥을 먹고 누군가가 찾아와야지만 만날 수 있고, 그렇게 202일을 보냈다. 오늘 아침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이제 내가 현장으로 돌아가는구나. 해고자가 아니라 이제 재능 선생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구나 설레면서도 기뻤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들이 책임으로 느껴졌다."(여민희) "이번 합의문은 2076일간 하루하루 쌓아올린 상처와 분노, 연대와 투쟁의 결과물이다. 202일간 일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비난과 수모를 감수하면서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고 참고 버틴 결과다. 희망의 문을 열겠다고 종탑에 오르면서 쉽사리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그때마다 힘을 주신 동지들의 연대 잊지 않겠다. 정말 고맙다. 앞으로의 시간도 뚜벅뚜벅 걸어왔듯이 현장에서 깃발 날릴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 (오수영) 두 사람은 기자회견 후 재능본사 회의실로 올라가 양병무 재능교육 대표이사와의 조인식에 참가했다.
재능교육은 이날 양 대표 이름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제 회사는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인식을 떨쳐 버리고 미래지향적이 협력, 상생에 기반한 선진 노사관계의 새 장을 열고자 한다"며 "장기농성으로 야기된 노사간의 앙금을 털어내고 불신의 골을 메우는 신뢰 회복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합의가 특수고용직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