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에도 끄떡 없던 동네은행, 우리도 만들자

[주장]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힘, 답은 공동체은행에 있다

등록 2013.08.30 19:02수정 2013.08.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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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은행 돈을 노리는 악당들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넓은 땅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홀로 떨어진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악당들 입장에서는 치안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마을은행들만큼 매력적인 범죄의 대상도 없었을 것이다. 은행금고 속의 돈을 노리는 강도들과 끊임없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어야했던 총잡이 시절의 이 지역 밀착형 금융기관들이 지금도 미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은행(Community Bank)이다.

통상 1860년대에서 1890년대까지를 서부 개척시대로 분류하므로 현존하는 공동체 은행들 대다수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사회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마을주민들이 곧 은행의 '주인'인 상호은행(Cooperative Bank)이다. 주식회사 은행은 이익이 생기면 그 대부분이 은행 '밖에 있는' 주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지만, 공동체 은행의 수익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쓰인다. 한 마디로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차례에 걸쳐 발생한 크고 작은 공황 때에도, 2008년 금융위기가 미 대륙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을 때에도 이들은 건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외부 투자자가 없으니 은행장이 주주들 눈치를 볼 이유도 없고, 무리한 투자로 수익 늘리기 게임을 할 이유도 없으므로 안정된 기조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자산 건전성이 나빠질 까닭이 없다. 이 은행들은 그 옛날 자기 조상들이 마을은행을 만든 이유와 목적을 충실히 따르려 노력한다. 목적이란, 다름 아닌 지역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이들 은행들 중 일부는 외부 자금 차입을 통한 규모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주식시장에 지분을 내다 팔았다.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주식 상장 후 은행장의 주 임무는 공동체 주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기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역 주민은 더 이상 섬겨야 할 주인이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뜯어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공동체 은행들은 상장요건을 갖추었음에도 주식시장에 발을 내밀지 않고 본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의 주인인 주민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지역공동체를 위한 공동체 은행은 없다

 영국 계좌이동운동 누리집
영국 계좌이동운동 누리집www.moveyourmoney.org.uk

공동체은행을 포함하여 미국 전역에 깔려있는 지역개발금융기관(CDFI), 협동조합은행, 지역신협, 주택금융조합들이 모두 같은 일을 한다. 조합원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별 볼 일 없던 이들이 최근 미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 약탈적 금융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불안한' 대형은행보다 규모는 작지만 진정으로 고객을 위하는 제도와 문화를 갖춘 '안전한' 지역은행이 더 적합한 대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 점령시위 이후 계좌 이동 캠페인(Move your money)의 목적지로 지목된 곳이 바로 이들 지역기반 금융기관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지역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 은행이 없다. 전국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지방은행 간판이나 대형 상업은행들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들 은행들이 하는 일이란 돈을 맡아주고 빌려주는 여수신 서비스가 전부다. 그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빼면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한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여 은행의 주인인 주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들 은행들에게 지역주민이란 단지 금융소비자일 뿐이다.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지역주민들이 예금한 돈을 재원으로 '돈' 장사를 하면서 지역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소유주들의 호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해 일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인 은행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금융은 사적 이익을 좇는 머니게임의 수단이기 이전에 경제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되도록 피를 공급하는 혈관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공공재'에 더 가깝다.


마을과 고장에 '동네은행'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말할 나위 없이, 지역에 돈이 돌기 시작할 것이므로 마을경제가 살아날 것이다. 주민들이 출자하여 만든 주민은행일 것이니 당연히 주민들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하려 할 것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보다 싼 금리로 대출이 이루어질 것이니 가난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불법 대부업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고 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기구, 마을기업들을 위한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더욱 튼실해질 것이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동네 은행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 가제트 신문>에 실린 크리스마스펀드 관련 기사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 가제트 신문>에 실린 크리스마스펀드 관련 기사캐나다 몬트리올 가제트 신문

이 뿐만이 아니다. 동네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은 작은 소기업들의 창업이 증가하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사회서비스 확대를 포함 지역발전을 위한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지역경제가 풍요로워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거 상업은행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금융기관이 창출한 잉여가치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 안에서 순환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내생적' 발전 구도 안에서 자원의 선순환(virtuous circle)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 지역신협협회(NF CDCU)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역기반 신협 하나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는 약 800개의 소기업 창업, 9000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을 포함해 연간 2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이 낙후지역 개발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금융 기반을 확충하려고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불황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 재정투자를 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은행, 지역신협 등 지역밀착형 금융기관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는 크고 넓다. 시중은행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빼앗고 날이 개면 우산을 쓰라고 강요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움직인다. 경기침체로 채무자들이 상환에 어려움을 느낄 때 원금상환을 유예해주기도 하고 먼저 이자만 갚고 천천히 상환해도 되도록 융통성을 발휘한다. 2000만 원짜리 적금 통장을 만들고 1000만 원을 저축하면 나머지 1000만 원을 지원해주는 방법(IDA, 개인발전계정)으로 취약계층들이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지역신협이 하는 일 중 하나다.

캐나다의 지역 금융기관들은 연말이 되면 주민들의 돈 씀씀이가 커질 것을 예상해 한 해 동안 기관을 이용해 준 고객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성탄절 펀드(Christmas Fund)를 조성, 파격적인 조건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준다. 이 특별한 상품의 판매조건은 한 가지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구매하라는 것이다. 고객 사은행사를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계시켜 연말 특수를 '더불어 함께' 풍성하게 누리자는 아름다운 전략이 담겨져 있다. 이 펀드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전액은 공공사업에 기부된다고 한다.

우리가 희망하는 건 금융회사의 적선이 아니다

우리 금융회사들은 어떤지 살펴보자. 시중은행들은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전년에 비해 수익성이 악화되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나아가 저금리로 인한 순이자 이익 축소, 부동산 거래 위축 등 경기 불황에 따른 수지 개선을 위해서는 수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묻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은행 직원들의 급여는 계속 올라 평균 1억이 넘어서는 등 안으로는 '돈 잔치'를 하면서 왜 고객들의 지갑만 털어내려 하는가? 은행 수익성 개선은 대관절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지역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 은행이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지역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 은행이 없다. sxc

이번 수수료 인상에 구체적 '명분'을 제공해준 것이 한 대학 연구소가 금융감독원의 용역을 받아 만든 연구보고서다. 이야기인즉, 은행 수수료가 원가보다 더 낮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보고서 내용의 타당성을 입증할 여력도 없거니와 그럴 가치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원가의 기준을 어떻게 잡았건 핵심은 고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익(비이자 수익)을 가져가기 위한 포장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공동체은행들과 비교할 때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흥미로운 것은 시중은행들 대부분이 '착한 금융'을 실천하겠다며 연일 보도 자료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단언하건대, 이들에게 착한 금융이란 가능한 한 뽑아낼 수 있는 이익은 다 추출한 뒤 '자비'를 베풀어 빵 부스러기 일부를 적선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은행도 수익이 생겨야 공익사업을 할 것 아닌가'라는 어떤 은행장의 독백은 영리 기반의 주식회사 금융기업이 사회적 책임의 범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맞는 말이다. 기부도, 후원도, 기여도, 사회적 책임이행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금융회사들의 적선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지역주민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공동체은행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지역개발금융기관, 유럽 각국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은행, 캐나다의 지역밀착형 신협들처럼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일하는 동네은행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처럼 상업은행들의 지역투자를 강제 의무화한 지역재투자법(CRA)도 없는 현실에서 맹랑한 이야기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지역공동체를 지켜주고 있는 수많은 공동체은행과 협동조합 금융기관들은 모두 작은 기금, 별 볼 일 없는 신용기관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망가진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를 일구어가는 분들에게 권한다. 동네은행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지금 절대다수의 서민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진짜 은행이다.
덧붙이는 글 문진수님은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공동체금융 #커뮤니티뱅크 #동네은행 #지역금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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