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숲? 역시 달랐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28]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소나무 숲

등록 2013.09.02 16:06수정 2013.09.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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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2012년 7월부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대관령 고개 아래엔 금강송이라 불리는 늠름하고 우람한 소나무들이 살고 있다.
대관령 고개 아래엔 금강송이라 불리는 늠름하고 우람한 소나무들이 살고 있다. 김종성

소나무는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한 나무지만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애국가에도 나오고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민중가요에도 등장한다. 한반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란다.

그런 소나무들이 강원도 대관령(大關嶺 832m)에 숲을 이뤄 살고 있다. 대관령은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의 고개다. '큰 관문의 고개'라 해서 대관령이라 불렀다지만, 길이 너무 험해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이 담겨 '대굴령'이라고 했다가, 음이 변해 대관령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그런 험하고 척박한 곳에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살고 있다니 숲을 좋아하는 이에겐 분명 매력적이다. 이 대관령 소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이란 이름을 얻기도 했다.

키가 크고 늠름한 자태의 금강송(혹은 강송, 황장목, 춘양목)이 주종인 이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최초로 생겨난 넓은 대관령 자연 휴양림이다. 가족들과 찾아도 좋다. 단언컨대, 대관령의 소나무 숲을 한 번 둘러보면 지금껏 봐왔던 소나무에선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흥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숲 휴양림

 예쁜 들꽃 벌개미취가 펼쳐져 살고 있는 휴양림내 야생화 길.
예쁜 들꽃 벌개미취가 펼쳐져 살고 있는 휴양림내 야생화 길.김종성

강릉시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타고 대관령 자연 휴양림을 품고 있는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마을의 좁은 오르막 언덕길을 구불구불 올라가 휴양림 앞에 내렸다. 매표소 옆 사무실에서 휴양림 숲 해설사 할아버지가 여행객을 반긴다. 휴양림 방문 전에 전화로 신청하면 숲 해설사에게 나무와 숲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다. 비용은 따로 없이 입장료(천 원)만 내면 된다.

대관령 자연휴양림은 '구름도 쉬어간다'는 대관령 고개 아래 아름다운 숲과 깨끗한 계곡이 어울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숲속 숙박시설인 통나무집들이 울창한 수목과 어우러진다. 캠핑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야영장도 숲 속에 있다.


특히 휴양림 주변으로 불그스름한 황톳빛 몸통을 한 키가 장대같이 뻗은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굽은 소나무와는 달라 생소하다. 이들은 대관령의 토질과 기온, 산소가 풍부한 동해의 바닷바람,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 생겨난 소나무로 금강송, 강송, 황장목, 춘양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휴양림 초입에서 '소나무 숲으로의 여행'이라 이름 붙은 '솔고개' 산책로 방향을 따라 왼쪽으로 걸어 오르면 이채로운 소나무 숲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1988년 생겨난 대관령 자연 휴양림은 한옥 고택처럼 안락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1988년 생겨난 대관령 자연 휴양림은 한옥 고택처럼 안락하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대관령 자연 휴양림

휴양림에 있는 5개의 산책 및 산행코스는 그늘 진 숲속을 걷는 즐거움과 오르내리는 맛이 있다. 짧게는 900걸음에서 길게는 3700걸음 코스까지 다양하다. 휴양림에 들어서면 처음 나타나는 '솔고개~쉼터~야생꽃밭' 코스는 700m의 푹신한 흙 산책로로 꾸며져 있는데 옛 주민들이 살았던 황토 초가집, 숯가마체험장 등이 있어 천천히 구경하며 걷기 좋다.

솔고개길에 있는 정자 금강송정에서 보이는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를 한 눈에 감상하면서 잠깐 쉬다가, 이어지는 이름도 재미있는 산행길 '도둑재'(옛날 배곯은 영서 주민들이 영동에 와 먹을거리를 도적질하던 곳에서 유래)로 들어서면 숲과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숲은 한낮의 따가운 햇볕이 못 느껴질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산행길엔 코스별 길 안내 이정표가 잘 나있다.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이라 불리는 장대하고 늠름한 소나무

 불그스름한 황토빛 소나무는 옛부터 궁궐이나 현재의 숭례문같은 문화재 복원용으로도 쓰인다.
불그스름한 황토빛 소나무는 옛부터 궁궐이나 현재의 숭례문같은 문화재 복원용으로도 쓰인다. 김종성

 국내 최초의 자연 휴양림에서 제 1회 아름다운 숲 수상을 알리는 오래된 안내 팻말.
국내 최초의 자연 휴양림에서 제 1회 아름다운 숲 수상을 알리는 오래된 안내 팻말.김종성

문명의 어머니인 숲들이, 어머니다운 위엄과 자애의 아름다운 그늘을 드리워주던 그 숲들이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숲은 살아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오늘 이 존귀한 생명의 터를 미래세대를 위해 물려주어야 할 생명의 숲으로 모시기 위하여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 하였습니다 - 아름다운 숲 수상 팻말에 써있는 문구 가운데 

대관령 자연휴양림에 사는 소나무들은 1922년에서 1926년까지 직접 소나무 씨앗을 심어 키운 것으로 우리나라 다른 숲의 평균보다 축적률이 3배나 높다고 한다. 나무 사이의 간격이 그만큼 좁아 잎이 넓지 않은 침엽수임에도 따가운 빛줄기가 땅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낸다. 이 길을 걷고 있으면 원시림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숲의 숨은 진가는 또 있다. 산림청에서 브랜드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문화재 복원용 대경재 생산기지'가 그것이다. 곧고 굵은 소나무 대경재의 확보는 고건축 문화재의 보수나 천년 궁궐의 복원에 필수적이다. 어제의 세대가 만든 민족문화유산이 오늘의 세대 손으로 보수·복원되어 다시 내일의 세대로 이어지는 중심에 이 소나무가 있다. 대관령 솔숲은 더 이상 평범한 솔숲이 아니다.

이 솔숲의 소나무들은 암석처럼 단단하다고 하여 강송(剛松)이라 부르는데 강원도의 소나무, 그 중에서도 강릉을 위시한 영동지역의 소나무를 지칭한다. 나이테가 조밀하고 심재(心材 : 나무의 제일 깊고 딱딱한 속살)에 송진이 가득 차 쉽게 썩지 않으며 잘 갈라지지도 않는다. 요즘은 주로 이들 나무를 금강송이라 부른다.

 강원도 화전민들의 가옥 굴피집에 쓰였던 굴참나무가 소나무와 나란히 산다.
강원도 화전민들의 가옥 굴피집에 쓰였던 굴참나무가 소나무와 나란히 산다. 김종성

 매미소리가 시끄럽지 않고 정답게 들리는 숲속.
매미소리가 시끄럽지 않고 정답게 들리는 숲속. 김종성

동부지방산림청이 이 일대 400ha의 숲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금강소나무 약 14만 그루가 밀식하고 있으며 그 평균 수령이 85년, 가슴높이 지름이 38cm에 이른다. 예로부터 임금의 관이나 궁궐 사찰의 대들보 기둥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불타버린 숭례문(崇禮門)의 복원공사도 바로 이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국가사업에 필요한 금강소나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경북 봉화군 춘양면 지역과 강원도 일대의 금강소나무 숲을 황장봉산으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했다. 

몇 기의 묘와 활엽수를 지나 계속 오르다 보면 도둑재의 정상이자 대관령 솔숲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소가 나타난다. 대관령의 북사면에 자리 잡은 이 일대는 워낙 바람이 심하고 경사가 가팔라서 다른 활엽수들이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장대한 소나무들의 자태에 누구나 경탄할만하다. 이국적이기까지한 이 풍광은 도둑재에서 다래터로 내려오는 1km의 하산길 내내 시선을 붙잡는다.

인간의 보살핌과 노력이 함께 하는 대관령 소나무 숲

 잎이 엷은 침엽수임에도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울창한 솔숲 속.
잎이 엷은 침엽수임에도 햇살이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 울창한 솔숲 속.김종성

 지금의 우람한 대관령 솔숲은 사람이 일일이 솎아베기와 가지치기를 하여 이루어낸 숲이다.
지금의 우람한 대관령 솔숲은 사람이 일일이 솎아베기와 가지치기를 하여 이루어낸 숲이다. 김종성

대관령 솔숲은 묘목을 옮겨 심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씨앗을 심어 정성을 들여 키운 후, 80여 년간을 솎아베기(키울 나무는 살려두고 그렇지 않은 나무는 골라 베어냄)와 가지치기(옹이가 생기지 않게 가지를 잘라냄)해 만들었다.

소나무 숲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의 손길때문에 지탱돼 온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산림학자들은 이런 소나무 숲을 '인위적 극상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솔숲 길을 걷다보면 나무들 밑둥에 작은 구멍이 두어 개씩 나있는걸 보게 된다. 알고 보니 주사자국이다. '수간주사'라 하여 병해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영양주사다. 소나무는 이 땅의 수목들 중 병해충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수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 해충은 모두 외래 해충이다. 원래는 이 땅에 없던 해충들로 인간의 왕래 때문에 유입됐다. 1990년대 이 지역 소나무에 극심한 피해를 주었던 솔잎혹파리가 창궐할 때에도 동부지방산림관리청 직원과 지역 주민의 헌신적인 방제 작업으로 솔숲은 파괴되지 않았다.

한때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이 땅의 소나무 숲은 오늘날 산림의 32%으로 줄어들었고,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100년 뒤에는 이 땅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으리라는 예측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대관령 솔숲은 점차 쇠잔해 가는 소나무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적절한 기술을 바르게 적용하면 훌륭한 솔숲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충해로부터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놓은 '수간주사' 자국.
병충해로부터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놓은 '수간주사' 자국. 김종성

사람처럼 나무도 외부의 병균을 이겨낼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름은 식물에게도 고통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모기에게 시달리듯 나무도 극성스러운 병충해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벌레가  나뭇가지를 뒤덮고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식물들은 치유제, 고통완화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과학적으로는 살리실산메틸(methyl salicylate)이라고 부르는데, 이 치유제를 이용해 인간이 만든 의약품이 우리가 잘 아는 아스피린이다.

그런데 살리실산메틸은 나무에 의해 다시 기화성이 강한 살리실산으로 변화해 공중으로 날아간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봉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이 생겼을 때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불을 피워 다음번 마을에 위급 상황을 알려 대비할 시간을 주듯이 병든 나무가 뿜어내는 가스가 옆 나무에 전달되면 바로 알아차린다. 그러면 옆 나무들은 재빠르게 병충해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독성 물질인 페놀수지와 타닌산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 나무들은 전멸이라는 치명적 위험을 빠져나간다. 들여다볼수록 나무의 삶이 참 신비롭다. 사람도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손길에 힘입어 척박한 대관령 고개 아래에서 나무는 결국 큰 숲을 이뤘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태어나 한 일이 없구나, 생각이 든다면 금강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시라.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ㅇ 대중교통 ; 강릉시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택시 이용
ㅇ 대관령 자연 휴양림 누리집 : www.huyang.go.kr
ㅇ 기타문의 : (033)641-9990
#대관령 자연휴양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숲 #소나무 #금강송 #춘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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