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서 슈퍼를 찾다니? 미리 먹을 걸 준비했어야지.
이규봉
이전과 달리 35킬로미터나 올라왔는데도 그 사이 슈퍼가 하나도 없다. 아마 산중이라 마을이 많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물은 떨어지고 먹을 것도 떨어졌다. 갈증을 느꼈으나 옆에 흐르는 계곡 물을 마시진 못하고, 입만 헹궜다. 배도 엄청 고팠다. 잘못하면 쓰러질 것 같았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산악 자전거에 아주 빠져 살던 몇 년 전, 대전 계족산을 도는 산악 자전거 대회에 출전했다. 늘 다니던 곳이라 방심하고, 아침도 부실하게 먹은 채 대회에 참가했다. 한참을 산을 타고 다녔는데 갑자기 속도가 나지 않는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계속 나를 앞질러 갔다. 이상하다 했는데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다. 길가 옆에 자전거를 뉘여 놓고 앉아 등산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한 사람이 내려오자 체면 불구하고 '먹을 것 좀 있으면 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그는 감을 서너 개 꺼내줬다. 정신없이 감을 모두 먹고 나니 비로소 힘이 생겼다. 그 덕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결승점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기록은 형편 없었지만…. 그 이후로는 미리 먹을 것을 챙겨 먹고 간식을 갖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40여 킬로미터 가까이 올라가니 비로소 정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힘이 모두 빠져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조금 내려가니 마침 길가에 있는 집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쉬는 김에 물 좀 얻어먹을까 했더니 더운 물을 준다. 그들이 차를 마시려고 끓여놓은 물이다. 그나마 더운 물을 마시고 갈증을 조금 해소한다.
10여 킬로미터를 더 내려 달리니 조그만 마을이 나왔다. 까오치아오(高橋)라는 곳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이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식당 주인이 알려주는 여관을 찾아가니 여긴 방만 있고 에어콘이 없다. 게다가 화장실도 없다. 그나마 화장실이라도 있었으면 그런대로 묵으려 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
다시 알아보니 오던 곳을 조그만 되돌아가면 한 여관이 있다고 한다. 되돌아 가보니 1층은 식당이고 2층과 3층은 객실인 여관이 있었다. 문제는 전기가 안 들어온다는 점. 같은 마을인데 점심을 먹은 아랫동네는 전기가 들어오고 이곳 윗동네는 전기가 안 들어왔다. 일전에 내린 폭우에 나무가 쓰러져 전깃줄을 건드렸단다. 그러나 저녁에는 들어올 거라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대낮인데도 모기가 여기저기 있다. 대체로 아직까지는 모기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모기가 소리도 내지 않고 문다. 이곳처럼 모기에 많이 물린 적이 없다. 잠을 설친 것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간지럽다. 마을에는 개천이 흐르고 주위는 온통 논밭이다.
순례의 종착지 바둥항에 도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