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
이러한 상법의 연혁을 보면, 약 50년간 감사 선임 방법에 있어 3% 초과 지분 보유 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안착되었다. 특히 상장회사의 경우 최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감사 등을 선임하기 위하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여 제한하여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감사 및 감사위원이 모두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인물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상장회사만 본다면 97년 이후로 약 15년 넘게 이 제도가 운영되었는데, 대주주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소수 주주가 제안한 감사가 선임된 사례는 아주 미미하다.
실제 기업지배구조펀드 운영을 자문한 필자도 3% 제한을 활용하여 펀드가 추천한 감사 등을 선임하려고 했으나, 대주주와 의결권대결이 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및 그 우호세력(전현직 임직원, 국내 기관투자자 등)으로 인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이 제도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제도란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위기의 순간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경우에도 독립적인 감사가 필요하겠지만, 실제 독립적인 감사가 정말 필요한 시점은 회사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때이다. 만일 한 회사의 경영진 또는 이사진이 불법행위를 일삼고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있다면, 소수 주주들이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고, 이사보다 선임하기 쉬운 감사를 선임함으로써 불법행위를 막고 사후적으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또한, 이럴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도 경영진 등의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대주주의 전횡이 여전한 한국의 상장 대기업에서 3% 제한은 아직도 유효한 법적 수단이며, 오히려 이를 강화하여 대주주의 전횡을 사전적으로 방지하는 제도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현재 복잡한 상장회사의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방법을 합산 3% 제한으로 통일하여 감사 등이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으로 뽑힐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계는 이러한 3% 제한에 대해서 다수결에 반하는 제도이며, 특히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제도라며 이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수결의 원칙과 함께 소수의 보호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이다. 또한, 회사의 지배구조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추구한다면, 주주의 구성비율에 따라 이사회의 구성비율이 결정되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맞을 수도 있다.
즉, 대주주가 60% 지분을 보유한다면 이사회도 60%가 대주주 측, 나머지는 40%는 기타주주 측으로 구성되는 것이 다수결에 부합되고 합리적일 수 있다. 마치 국회의 구성이 여야 한쪽 100%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회사의 이사회가 국회처럼 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는 이사회를 100% 장악할 수 있고 따라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다수의 횡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수의 견제를 제도화 한 것이 3% 제한인 것이며, 그 필요성은 여전히 소유가 집중된 재벌에게는 50년 전과 동일하다.
3% 제한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재벌총수의 견제장치가 될 것한편, 이번 상법 개정안 중 재계가 가장 반발하는 것이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이다. 먼저, 감사위원 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제도는 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IMF의 권고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의무적으로 감사 대신 감사위원회를 두게 되었다.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이므로 이사가 되어야 감사위원이 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선임될 수 있도록, 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을 분리하여 선출하고, 감사위원 선임은 3% 제한을 적용하였다(감사위원 분리선출). 그런데, 2009년 이를 규정하고 있던 증권거래법이 폐지되고 관련 내용이 상법으로 이관되면서 감사위원은 이사로 선임된 자 중에 선임하도록 조항이 신설되었다(감사위원 일괄선출).
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는데, 어찌 보면 은근슬쩍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던 것이 일괄선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감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로 선임되어야 하는데, 이사선임 투표에서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다보니 이사는 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선임되고, 결국 감사위원이 독립적인 사람으로 선임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3% 제한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를 원상복구하여 감사위원을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하고,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매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재벌총수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보면, 재벌총수 일가는 그룹 전체적으로 1% 내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재벌총수들은 그룹을 마치 개인회사처럼 전횡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도 재벌에 대한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총수들은 여전히 횡령·배임, 조세포탈을 일삼고 있으며,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하고,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의 불공정한 거래로 자신만이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재도입되고,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 등이 함께 도입된다면 예전과 달리 재벌총수들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장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재계의 논리와 그 허상재계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감사위원 선임을 통해 외국계 펀드들이 이사회를 장악하여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사회가 장악되면 기업의 주요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펀드는 국적을 불문하고, 특정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M&A펀드라기 보다는 분산투자로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들이다. 현실적으로 적대적인 M&A는 엄청난 자금을 한 기업에 쏟아부어 대주주보다 지분을 더 확보하여, 기존 경영진을 해임시키고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해서 장기간 기업을 경영하거나 회사를 되팔아 투자이익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뮤추얼펀드는 분산투자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기업에 집중투자를 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뮤추얼펀드라 하더라도 대주주보다 더 많은 주식을 매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을 뮤추얼펀드는 없다. 또한, 현재 상법 개정안이 적용될 회사는 자산총액 2조원의 대형 상장법인인데, 수많은 뮤추얼펀드들이 갑자기 연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한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자고 나설 가능성도 없다. 게다가 기존 경영진을 대신할 새로운 경영진을 찾는 것이 한국의 전문경영인 인력풀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적대적인 M&A펀드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중에서 이러한 경영권 위협을 당할 만큼 지분구조가 취약하거나 시가총액이 낮아 적대적인 M&A의 목표가 될 만한 회사는 없다고 본다. 결국, 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펀드가 소액주주들로서 회사의 경영진을 감독할 감사위원을 한두명 선임하려는 것인데, 이를 경영권 위협이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돈만 투자하고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즉, 재계의 주장은 대주주의 눈에 거슬리는 단 한 명의 감사위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고 자멸하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한편,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못하게 될 것이고, 특히,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 매입 등에 경영권 방어에 자금을 사용하여 R&D 및 시설투자를 못하게 되고 결국은 고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이나 현금 등 유휴자산을 많이 보유하여 자기자본수익율이 낮은 기업이 M&A의 대상이 된다. 즉, 기업이 높은 수익이 낼 투자안이 있다면 이에 투자하여 기업가치를 올리고 주가도 올려야 할 것인데,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포기하고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주가는 떨어지고, 이는 더욱 M&A를 부추기는 것이다.
또한, 재계는 현재도 경영권이 불안하여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도 고용도 못했다는 있다고 주장하는데, 최근 투자와 고용의 저조는 세계적인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나 내수의 부족 등 때문이지 경영권 위협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재계가 투자와 고용을 무기로 경영권 안정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꾼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재계는 기업지배구조는 법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탄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기업은 업종이나 기업문화에 맞는 각자의 기업지배구조를 가져야 기업도 좋은 성과를 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업의 자율에 맡긴 결과는 전횡을 일삼고, 반대의견은 용인하지 않고,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한심한 모습이 되었다.
이런데도 기업지배구조의 탄력성을 주장하며 기업의 자율을 더 강조한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자율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도 따라야 하는 것을 재계는 곱씹어보기 바란다. 이번 개정안은 최소한의 건강한 기업지배구조를 위해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재계는 자발적인 변화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주춧돌, 경제민주화!지금까지 얘기한 상법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담합에 대해 소비자가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제 도입 등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계속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개정안들이 나올 때마다 재계는 경영권 위협과 투자와 고용을 빌미로 정부의 법안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를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신상필벌의 경제정의가 세워지고, 이를 기반으로 창조경제도 가능해지며 투자도 늘고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즉,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경제성장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국회는 다시 한번 현재의 재벌의 문제점을 재인식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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