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도 무화과 맛, 아주 그냥 죽여줘요~"

[전라도 여행3] 장산도 무화과

등록 2013.09.09 13:24수정 2013.09.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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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
무화과가 익어가는 계절.이명화

장산도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메랄드 물빛과 전라도 장산도 무화과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다.

목포에서 출발해 장산도 가는 뱃길에서 바라본 바다 빛은 장산도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맑았고, 그날 밤 낚시터에서 바라본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도 담을 수 없어 가슴 깊숙한 곳에 담았다. 또, 장산도에 도착하자마자 맛본 무화과는 황홀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경상도에 있는 큰집에 가면 수돗가 옆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주렁주렁 달린 무화과가 하나 둘씩 익었는데 발갛게 익은 무화과를 몇 개 따 먹어 본 적이 있었다. 잘 익은 무화과를 손으로 반을 잘라보면 잘 익은 속살이 드러났고, 입안에 넣으면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잘도 넘어갔다. 그때 먹은 무화과 맛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가끔 시장에 무화과가 나온 걸 보면 발걸음이 절로 머물고, 입맛이 절로 다셔진다.

지금 내가 사는 마을에도 이웃집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야 할 무화과나무를 억지로 눌러 고정시켜서 모양이 변형됐다. 이 무화과나무는 잎이 떨어지는 황량한 겨울이 되면 굽은 가지 모양이 기형적으로 보여서 보기가 흉했다. 그래도 그렇게 굽어진 채로 9월이 오면 하나 둘씩 무화과가 달려서 익어갔다. 여름 내내 무화과나무에 나오는 독특한 향이 미풍에 실려 오곤 했다.

 반으로 자른 무화과, 달콤하고 향기로운 과육.
반으로 자른 무화과, 달콤하고 향기로운 과육.이명화

무화과(無花果)는 말 그대로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그러나 꽃이 안 피는 건 아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진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꼭대기만 조금 열려 있는 모양이 된다.

주머니 속에서는 자기들끼리 은밀하게 수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깨알 같은 씨가 생긴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없고, 어느 날 열매가 익기 때문에 그만 꽃 없는 과일로 불린 것이란다. 무화과는 감미로운 과실이라는 뜻으로 '밀과'(密果), 꽃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은화과(隱化果), 은둔화라는 이름도 지니고 있다.

무화과는 나무맨 아래, 뿌리에서 가장 가까운 가지의 열매부터 익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딴 햇무화과가 가장 크고 실한데 붉게 색이 오르고 과육이 찢어지기 직전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또 무화과는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좋아한 과일이며 고대 올림픽 선수들과 로마 검투사의 스태미나 식품이었고 그리스의 호머와 플라톤의 예찬 대상이었을 정도. 그리고 <동의보감>에는 "체내 독성성분제거와 위장질환, 빈혈과 치질 등에 좋고 소화촉진, 숙취해소에도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무화과 차이


 손 닿지 않는 높은 가지 위에 달린 무화과를 따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다.
손 닿지 않는 높은 가지 위에 달린 무화과를 따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다. 이명화

장산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나자 천사 섬 장산투어에 나섰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돌아보면서 동네 고샅 고샅마다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옆지기의 고향인 이곳은 예전부터 전라도 무화과가 맛있노라고 자랑해서 그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전라도 장산도에서 만난 무화과는 그동안 내가 봐왔던 경상도 무화과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경상도 무화과는 이파리가 갈래갈래 갈라진 데 비해 이곳 무화과 이파리는 더 넓고 둥글었고 무화과는 동글동글하다. 당도 역시 전라도 무화과가 훨씬 높고 맛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와서 집 앞에 내렸을 때, 누군가 '무화과다!'라고 소리를 쳤고 우리는 우르르 몰려갔다. 주인장의 넉넉한 웃음 속에 우리는 손이 닿는 곳엔 팔을 뻗어서 잘 익은 무화과를 땄다. 손닿지 않는 높은 가지에 달린 것은 옆지기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땄다. 그래도 손이 닿지 않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간 채로 나뭇가지를 흔들어서 땅에 떨어뜨렸다. 우린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무화과가 입안으로 사라졌다.

한 번 맛을 본 무화과는 자꾸만 먹고 싶었고, 먹고 또 먹어도 무화과는 배부른 줄도 모를 정도로 황홀했다. 이번 장산도 여행은 벌초하러 왔다기보다는 맛 탐방 여행인 듯했다. 장산도에는 가가호호마다 무화과나무 한 두 그루 이상은 곁에 두고 있었고, 때는 바야흐로 구월.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 달콤한 계절이었다.

 그 맛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그 맛은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이명화

이틀 동안 무화과를 실컷 먹고 또 먹었다. 큰집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익은 무화과를 따서 먹는 것을 시작으로 이웃집에 또 들녘에 서 있는 큰집 밭에 있는 무화과를 따 먹었다. 서울서 온 이방인들이 무화과를 따 먹는 게 신기한 지, 마을 주민들은 그저 너털웃음을 지으며 무화과를 따 먹게 두었다. 전라도 무화과를 처음 먹어보는 것치고는 실컷 먹었다.

해마다 구월이 오면 장산도에서 맛 본 황홀한 무화과 맛이 그리울 것 같다. 혹 마당이 있는 집이 생긴다면 그 마당 안에 꼭 심고 싶은 나무가 하나 더 생겼다. 그 달콤하고도 황홀한 무화과 맛에 반해 그 시절 내내 향기로울 것 같다.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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