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엘리사벳 수녀.
노동과세계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같이 간 한 자매가 최병승씨와 전화통화를 해서 우리가 왔다고, 힘내시라고 전했다. 그리고 천의봉 최병승 두 노동자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 수녀들에게는 이념이나 그런 것이 없다. 수도자들은 진보도 보수도, 좌도 우도 아니다.
우리 수녀들도 빨갱이 소리를 많이 들었다. 대한문에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있을 때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수녀들이 빨갱이라고 했다. 이제는 우리를 종북세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수녀들이 빨갱이이고 종북세력일까. 우리는 복음세력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우리 사회에 현안들이 너무 많이 생겼고 그 문제들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나라 4대강 사업이 국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됐고, 핵발전소 사태가 터졌는데도 아무론 대책이 없다. 정부 태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언론도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국민 눈과 귀를 다 막고 있다.
- 대한문 매일미사를 하고 있는 천주교 수도자들이 8월 말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했는데..."전국의 천주교 사제 수도자 5143인이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선언을 했다. 지난 8월 26일 선언일 당시에는 5038인으로 발표했지만 누락된 105인 명단이 뒤늦게 알려졌다. 총 5143인이다.
5143인이면 전국에 있는 천주교 수도자의 30% 이상 규모다. 우리 여성 수도자들은 이 사업을 조직적으로 준비했다. 공문을 써서 나르고 여기에 동참하자고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글도 써서 보냈다. 이 사태의 본질이 뭔지, 왜 동참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 등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쌍용차 사태를 그냥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회계조작이 있었다는 것도 많이 알게 됐다.
이 사태는 그야말로 상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 가정을 책임진 2646명의 가장들이 하루 아침에 잘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중한 가정을 파괴한 범죄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지아비이고 아버지인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24명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 야당은 그 사태에 침묵했다. 많은 국민도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그래도 더 알리고 알려져서 국정조사든 뭐든 해서 그들의 말대로 일상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나는 이렇게 편히 누리는 일상의 삶을, 다른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고 편히 생활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나만 편히 살자는 세상이 아니다.
진실을 아예 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 기득권들이 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1:99라고 표현한다. 99%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나라의 역사는 1%가 아닌 99%의 대중이 이끌어왔고 대중이 써 왔다.
국민의 48%가 문재인 후보를 찍고, 52%가 박근혜 후보를 찍어서 대통령이 됐다. 그 후 48%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서는 국민대통합을 할 수 없고 경제민주화도 할 수 없다. 물 건너갔다.
교회의 목숨 줄도 쥐고 급하면 나쁜 짓까지 한다.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생명, 존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인권 불감증이다.
우리는 지난번 선언에서도 밝혔듯이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약속은 생명이다. 우리는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기도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매일 미사를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매일 미사가 되지 않는가. 오늘(9월 4일)로 150일째다. 우리는 기도가 일상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 비록 당장 이뤄지지 않아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노동자들이 그들이 있어야 할 곳,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매일미사 현장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분향소를 침탈해 화단을 조성한 뒤 노동자들이 그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매일같이 인권을 유린했다. 분향소가 철거된 그 상황에서 벼랑 끝까지 몰린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두려웠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야 했고 또 죽으면 어쩌나 싶었다. 신부님들이 우리가 거기서 매일 미사를 하면서 지켜주자고 했고 우리도 동조했다.
얼마 전에는 교도소에 가서 김정우 지부장을 만났다. 밖에서 연대하는 이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힘내시라고 했다. 수녀들이 가서 만나고 위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해서 갔다. 그렇게 해서 연대가 생기고 그 연대가 더 커지고 그러는 것 같다.
지난 2월 대한문 앞에 가서 인사를 해도 나를 반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일미사를 시작하고 처음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는 노동자들이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고 그 아픔과 트라우마가 작용해서 다른 사람이 내미는 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두려웠을 것이다. 누군가를 무턱대고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가족이나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매일 미사를 150일 하다 보니 이제는 "수녀님, 어디 다녀왔어요?" 하고 묻는다. 그럼 저는 "연수 갔다 왔어요" 하고 대답을 한다.
강정 대행진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서로 불러줄 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삶의 일부를 공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문 앞 미사를 쌍용차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아가기를 염원하며 우리는 기도하고 있다. 한데 모여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도 그런 것을 느끼지 않나 싶다.
우리 수녀들은 쌍용차 노동자들과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150일 간 미사를 해 오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가정사도 알게 되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함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