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명 어린 여행자들, 라오스에서 펄펄 날다

[서평] 김향미·양학용의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등록 2013.09.17 14:09수정 2013.09.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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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길 달려온 배낭 이걸 어쩌나, 안쓰럽게 내려다 보는 성호의 눈빛이 애처롭다.
비포장길 달려온 배낭이걸 어쩌나, 안쓰럽게 내려다 보는 성호의 눈빛이 애처롭다.양학용

부부가 아이들 열셋을 데리고 여행길에 나섰다. 그것도 26박 27일이나. 여행지는 라오스. 태국 방콕에서 치앙마이를 거쳐 라오스로 들어가 라오스 전국을 둘러본 뒤 다시 방콕으로 나오는 코스였다.

아이가 열셋이라니 많기도 해라, 하지 마시라. 다 남의 집 아이들이다. 그것도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골고루 섞였다. 고3을 앞둔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2011년 1월, 훌쩍 여행을 떠났다. 이름 하여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는 바로 이 여행학교의 여행 기록이다.


아이 열셋 데리고 라오스 여행... 그것도 다 남의 집 아이들

예담
김향미·양학용, 이 부부는 평범한 이들은 아니다. 결혼하고 10년이 되던 해에 전세금을 빼서 세계여행을 떠났다. 이럴 때 부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967일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닌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기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를 책으로 출간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는 제주도로 간다. 전세금까지 몽땅 빼서 여행을 다녀온 부부는 귀국한 뒤 새로운 삶을 꿈꿨고, 제주를 선택했던 것. 양학용씨는 제주교육대학에 입학,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어찌 보면 일상으로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행은 생각보다 혹은 기대보다 긴 여운을 남기는 법. 그건 여행을 떠나본 이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여행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귀하디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체득한 그는 아이들에게도 그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를 준비하게 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참여 신청을 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보통의 여행이 숙소, 교통편을 전부 미리 준비하고 일정에 따라 똑같이 움직이는데 반해, 이 여행학교는 현지에서 직접 아이들이 숙소를 찾아서 정하고,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 알아서 결정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양학용씨의 계획은 이랬다. 아이들을 4~5명으로 모둠을 만들어주고 모둠별로 알아서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하고, 여행지를 돌아다니도록 하는 것. 여행지에서 바람처럼 자유로워지게 아이들을 놓아준 것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하나. 저녁마다 일기를 쓰는 것.  아이들이 쓴 일기는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에서 일부 실려 있다.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 거다.

여행 인솔자인 김향미·양학용 부부는 그런 아이들을 가까이 혹은 멀리서 지켜보는 역할만 하겠단다. 그렇다고 감시를 하는 건 아니다. 가끔 조언만 해줄 뿐이고, 답답하고 속이 터져도 꾹 참고 그저 지켜만 본다는 것이다.


대학생이야 다 컸으니 그게 가능하겠지만, 중·고등학생들이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그게 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야무지고 똘똘하고, 현실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다. 단지 부모들이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지.

 선착장.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아이들
선착장.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아이들양학용

솔직히 이런 상황은 어른들에게도 버겁다. 생전 처음 온 낯선 도시에서 말조차 통하지 않는데 숙소를 알아서 찾아? 그리고 음식도 알아서 사 먹고, 어딜 갈 것인지도 알아서 정해? 아이들이 쓸 비용은 처음에는 모둠별로 나눠주고, 나중에는 개인별로 나눠주었다. 돈도 알아서 쓰라는 거다.

낯선 도시에 처음 도착해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얼마나 막막한지 모른다. 거리에서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 역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만 되는 경험, 여러 번 했다. 한데 아이들에게 그런 상황을 주고 무조건 알아서 하라고?

나중에 아이들은 서로 좋은 숙소를 찾아냈다면서 자랑했고, 저마다 가고 싶은 곳에 다녀온 경험담을 줄줄 늘어놓게 되었다. 코끼리를 타려고 돈을 아껴 밥을 굶기도 한다. 아이들의 뛰어난 현실 적응력은 어른을 능가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다.

김향미·양학용 부부는 아이들에게 관광지에서만의 여행 경험을 아이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에게 산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경험도 더불어 안겨주었다. '히늡'이라는 산골마을에 외국인이 방문한 것은 이들이 처음.

이들이 히늡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기금을 모아 우물을 파주었고, 그들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함께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방문에 맞춰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더란다.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들은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돼지 멱따는 장면을 보겠다고 나선다. 마을에서 제공하는 전통술까지 마시는 경험까지 하는 조숙해진 아이들. 이 마을에서 아이들은 더 소중한 경험을 한다. 서너 명씩 짝을 지어서 마을사람들의 집으로 가서 잔 것. 진짜 홈스테이다.

어느 집은 아이들에게 방을 내주고 가족은 닭장에서 잠을 잤다나. 어쩐지 밤새 닭들이 울어대더라니. 아이들이 신기해서 저녁 내내 아이들만 쳐다보던 가족도 있었단다. 아이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나? 잠자리가 불편하고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했을 텐데 불평하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양학용씨의 주장이다. 리얼리?

다음날, 이 마을 학교에 간 아이들.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교실에서 칠판도 공책도 책상도 연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공부하는 히늡 마을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26박 27일 여행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 무엇이 달라졌을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재미난 모양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재미난 모양이다^^김하영

여행지에서 좋은 경험만 했을 리는 절대로 없다.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 사고를 당해 다치기도 한다. 가끔은 병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실한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와 통화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현지 아이들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26박 27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이들이 달라진 것을 가장 실감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이 아이들의 부모가 아닐지.

큰딸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용돈을 모으고 있어요. 여행은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 세상에는 새롭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나 싶네요. - 수경·희경 엄마

여행을 다녀온 아이와 2박3일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빠가 되어 아이와 그렇게 오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 나운 엄마

그렇다고 열세 명의 아이들과 여행에 나선 김향미·양학용 부부가 즐겁게 룰루랄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아이들은 꼭 그만큼 이리저리 공처럼 튀었고,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고,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니 가슴을 졸이는 순간, 뿌듯한 순간도, 대견한 순간도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나. 이들 부부는 인솔자지 감시자는 아니었으므로.

이렇게 시작된  '아이들을 위한 여행학교'는 인도 라다크 여행으로 이어졌고, 이들 부부는 지금 새로운 여행학교를 준비하고 있단다.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를 읽으면서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꿈을 갖지 못했던 아이들이 길 위에서, 여행지에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자들의 자리에 내 아이를 대입해 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 열세 명 어린 배낭여행자들의 라오스 여행기

김향미 지음,
예담, 2013


#양학용 #김향미 #라오스 #여행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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