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사진(이 사진의 촬영일자는 1951. 1. 5. 로 학도병 이우근 님이 전사한지 5개월 25일 뒤다. 이 교과서의 사진 설명대로라면 학도병 이우근은 1951년 1월 5일에 살아있어야 옳다.
NARA, 눈빛출판사
이 사진은 학도병 이우근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근거는 이우근은 한여름인 1950년 8월 11일에 전사하였는데, 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 중인 이 사진의 뒷면 캡션에는 '5. Jan. 1951'으로 이우근 학도병이 돌아가신 지 5개월 25일이 지난 뒤이기 때문이다.
역사전문가가 아닌 똑똑한 중1학생이라도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이 사진이 이우근 학도병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사실 이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역사학자나 출판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확인절차도 밟지 않고, 마구잡이로 교과서에 게재한 직무태만으로 보인다. 이것이 과연 사실이라면 이들을 과연 역사학자라고, 출판편집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도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다 이런 장난을 친다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다.
더욱이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런 교과서의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교과서 검정위원들의 직무유기다. 분명 이들은 검정위원의 자질이 없는 이들로,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눈뜬장님들로 그들의 건강(시력)과 정신상태가 매우 의심스럽다.
내가 분개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진솔한 해명과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2013년 9월 12일 오마이뉴스에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라는 기사에서 "나는 이 사진을 실은 교학사출판사와 편집자, 그리고 이를 감수한 분이 이 사진을 입수한 경위와 이를 '학도병 이우근'으로 단정한 까닭과 이를 교과서에 게재한 경위에 대한 솔직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고 명확한 답변을 요청했다. 하지만 입때껏 이에 대한 해명은 일언반구도 없다. 사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다. 진실고백과 참회는 발전의 밑거름이기도 하고 관련 상대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
진솔한 답변을 기대함이 기사에 대한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학도병 이우근 님의 조카 곽아무개씨가 나에게 분개한다는 메일을 보낸 적은 있으나 교학사나 저술 관계자의 답변은 전혀 없었다. 나는 일단 그 뜻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오늘 교학사와 교육부에 등기우편을 발송할 것이며, 아울러 이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린다. 왜냐하면 이 사진 건은 출발부터 공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은 옛 말이요, 이즈음에는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관계자들에게 들려준다. 상대가 인터넷신문이요, 기자가 강원도에 사는 촌놈이라고 깔보고 말라. 지금 수많은 백성들이 이 사건의 전말을 지켜다 보고 있다. 양자강과 같은 큰 강도 그 원천은 술잔을 띄울 만한 작은 물줄기였고, 동학농민운동의 효시도 한 탐관오리의 학정에서 비롯되어 결국은 나라가 망했다.
아마 교육부장관과 출판사 대표는 이만한 상식을 지닌 이로 나는 이들이 현명한 처신을 할 것으로 믿으며 그 진솔한 답변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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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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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장관과 교학사 대표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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