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왼쪽에서 네번째), 1960~70년대에 친구분들과 찍은 사진
곽진성
할머니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에 학교에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아버지(양증조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여동생을 학교에 입학시켰다. 할머니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양아버지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라는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마음을 눈치 챈 증조할머니는 딸의 손을 붙잡고 간이 학교 면접을 보게 했다.
증조할머니는 딸의 소망인 학교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만약 선생이 아버지 직업을 물으면 장사를 한다고 해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조금이라도 멋스럽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증조할머니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학교 선생은 할머니에게 아버지 직업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전했다.
"그때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아버지가 '말을 끌어요.'라고 답했어. 어렸지만 거짓말하기 싫었거든, 그런데 어머니(증조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고 어쩌냐, 너 이제 떨어졌어. 그렇게 학교 가고싶다더니 왜 그렇게 천치같은 행동을 했니?'라고 속상해 하셨지. 그래도 솔직함을 좋게 봐줬는지 합격해 학교에 가게 됐어. 13,14살 즈음이었어."늦은 나이의 입학. 간이학교에서 할머니는 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2학년 때, 전교에서 1명 주는 도지사 상도 탔다. 본 학교에서 간이학교 2학년 학생에게 상을 주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반대도 있었지만,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명석함 때문이었을까. 할머니는 학창 시절, 일본에 양녀로 갈 뻔한 일도 있었다.
당시 소학교에 다니던 한 일본인 아이의 부모가, 할머니를 눈 여겨 보고 "일본에 양녀로 와서 자기 딸과 같이 공부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암울했던 시절, 가난한 이들에게 출세의 길은 공부였다. 할머니도 자연히 공부에 대한 욕심이 났을 법했다.
"어머니(증조할머니)는 그 일본 부부의 제안을 완고히 거절했단다. 어머니 말씀이 '지금은 널 좋게 보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어머니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 (일본에 양녀로) 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