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
유형경
황해도 출신인 할머니께서는 간혹 내게 월남하시던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지 않는 일 중에 하나는 총에 맞아 생긴 허벅지의 흉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만 대충 알고 있던 할머니의 월남기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아버지께 물었는데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셨다.
2011년 가을 즈음, 아마도 추석 무렵이라고 생각된다. 가족들이 다 모인 틈에 할머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풀어내 본다.
- 안녕하세요. 오늘 할머니의 인생에 관해서 인터뷰를 좀 해보겠어요. 먼저 정확한 고향은 어디인가요? 생년월일도 말씀해주세요."황해도 연백군 호남면 자봉리지. 할머니는 1932년 2월 17일 출생이고..."
- 할머니, 처녀 시절에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세요."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지. 나는 장녀였고, 내 밑으로 남동생 세 명과 여동생 두 명이 있었어. 나는 말하자면 3남3녀 중 장녀였지."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가족 중에 가장 좋아하셨던 분이 있나요? "어머니를 가장 좋아했지. 부모님이 아주 좋은 분들이셨어. 굉장히 착하시고 나한테 잘해주셨지. 사실 다른 장녀들은 동생들도 돌봐야 하고 일도 많이 했는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한테 그런 걸 시키신 적이 없으셨어. 항상 당신들께서 다 하셨지. 날 굉장히 곱게 키워주셨어."
- 그럼 학교는 어디까지 다니셨어요? 그리고 할머니께선 어떤 학생이셨나요?"초등학교까지 다녔지. 그때는 여자면 대부분 초등학교까지 다니곤 했어. 나는 호남초등학교에 다녔었는데 그 당시 나는 수줍은 학생이었지. 초등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운동회를 했던 게 생각이 많이 나. 달리기도 하고 단체로 몸뻬에 반팔 티를 입고 무용도 했었지."
- 아! 정말요? 굉장히 활발하셨을 것 같은데... 그럼 할아버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부모님들 중매로 만났지.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어.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그렇게 결혼하곤 했지."
- 그럼 첫인상은 어떠셨어요?"어머니를 뵈러 왔을 때 슬쩍 봤는데... 어려 보2였지. 할아버지가 나보다 한 살 어리셨으니까... (호호호)"
집안끼리 결혼 약속... 19살에 시집 가- 그럼 결혼은 몇 살 때 하신 거예요?"19살에 했지. 그때 당시에도 굉장히 빨리하는 거였어. 그게 왜 그렇게 갑자기 빨리하게 됐냐면... 우리 할아버지랑 너희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조선 시대 향교라고 들어봤지? 거기에서 만나셔서 서로 아는 사이셨거든.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결혼 약속을 했었어. 근데 이제 내 시할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천식이 있으셔서 당신이 언제까지 사실지 모르시니까 손주며느리를 빨리 보고 싶으시다고 재촉을 하셨지.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투셨다고 하더라고. 그때 할아버지 나이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고2였으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뭐."
- 그러면 결혼하신 이후에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셨어요?"사랑을 많이 받았지. 갈등 같은 건 없었어. 만날 "새아가야 새아가야"하시면서 예뻐해 주셨지.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도 굉장히 예뻐해 주셨는데 시할아버지는 결혼 1년 후에 돌아가셨어."
- 그럼 이제부터 월남하신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가족과 고향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월남을 생각하신 계기가 뭐였나요?"사실 가장 큰 이유는 이북의 정치가 싫어서였어. 내가 2월 14일에 결혼했으니까 결혼 4개월 후에 전쟁이 났는데... 그해 12월에 너희 할아버지가 학도병으로 지원하셔서 제주도로 가서 훈련을 받으셨거든. 그래서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월남해야겠다고 생각했지."
- 그럼 월남하셨던 정확한 시기와 그때의 정황을 자세히 얘기해주세요."1951년도 8월 중순쯤이었어. 매우 더웠을 때였으니까. 우리 고향이 서해바다랑 가까운 곳이었는데 시아버지와 동네 사람들 10명 정도해서 바다로 나가면 남쪽에서 배가 오기로 되어 있었어.
인민군한테 들키지 않고 가야 하니까 밤에 나갔지. 그때는 밤에 다니는 게 금지되어 있었거든. 밤이 돼서 이제 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 같이 바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인민군이 숨어서 지키고 있었다는 걸 몰랐지. 그래서 인민군들이 우리가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 걸 보고 눈치를 채고서는 "거기서!"라고 소리치면서 총을 쐈어. 다들 총소리에 놀라서 도망갔는데... 나는 도망가려고 돌아보는 순간 허벅지에 총을 맞은 거야.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했어. 그래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 시아버지는 내가 쓰러지니까 달려와서 옆에 계시다가 인민군들에게 붙잡혀가고 거기 있던 인민군 대장이 부하한테 가서 총을 한 발 더 쏴서 확인사살을 하라고 한 거야. 그 인민군이 총을 메고 다가왔는데 나랑 눈이 딱 마주쳤어. 그러더니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냥 가더라고. 그때 내가 19살이었잖아. 한창 피었을 땐데... (호호호) 그 인민군도 젊었거든. 그때는 인민군도 다 강제로 징집했었으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말하기를 같은 젊은 사람을 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 대장한테 총을 배에 맞아서 그냥 놔둬도 죽을 것 같아서 총을 안 쏘고 왔다고 전했다고 하더라고. 뭐 어쨌든 그래서 인민군들이 그 자리를 떠나고 혹시 나를 그냥 두면 같은 일행들이 와서 데려갈까 봐 시아버지를 잡아서 앉혀놓고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지.
나는 그때 쓰러져서 피가 막 콸콸 쏟아지는데도 잡히면 죽을까 봐 포복으로 한 50미터 정도를 기어간 것 같아. 논두렁 사이의 골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어. 나중에 들으니까 시아버지는 멀리서 내가 신음 소리 내는 걸 밤새 들으셨다 하더라고. 아침이 돼서 눈을 떠보니까 해가 높이 떴는데 인민군들이 내가 총 맞은 자리에 없으니까 날 찾으러 다녔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날 찾아가지고는 마을 사람들보고 들것과 가마니를 가져오라고 시켜서 날 부대에 데리고 갔어. 그때 당시에 인민군들이 큰 가정집에 주둔하고 있었거든.
어쨌든 그 주둔지에서 대충 날 치료해주더니 주인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죽을 쒀 왔어. 내가 좀 괜찮아진 것을 보고 날 심문하기 시작하더라고. 높은 사람들이 양쪽으로 권총을 메고서는 왜 남으로 가려고 했느냐, 어디에 사느냐, 가족은 몇이냐 이러면서 신상 조사를 했지. 그때는 무조건 비행기 폭격이 무서워서 나갔다고 대답해야 했어. 그 당시에 국군이 인민군을 공격하려고 폭격했거든. 어쨌든 거기서 뭐 북의 정치가 싫다, 이렇게 말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임을 당하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
시어머니의 지혜 "그 망할 것, 비행기 무섭다고 시부모 버리고 나가"심문이 끝나고서는 낮에는 폭격 때문에 위험하니까 밤에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어. 밤이 돼서 들것에 다시 실려서 동네 사람들과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다른 마을사람들이 지나가는 거야. 인민군들이 그 사람들을 심문하는데 그 사이에 시아버님이 어디에 가면 베니신(페니실린)이 있으니까 가서 맞으라고 귀띔을 해주셨어. 그 전까진 몰랐는데 시아버지도 그 주둔지에 계속 같이 계셨던 거지. 그 뒤에 시아버지는 평양으로 끌려가시고 인민군들은 나를 집 대문 앞에 놓고서는 우리 집 대문을 총으로 들이치고는 당신네들 며느리 여기 갖다놨으니 나와 보라고 하더라고. 우리 시어머니가 나오시니까 인민군들이 이제 당신 며느리를 총 한 발 쏴서 죽일 테니... 마지막 소원의 한마디를 하라고 그랬지. 그때 우리 시어머니가 정말 지혜로우셨지.
시어머니가 "그 망할 것! 비행기 무섭다고 시부모님도 다 버리고 나갔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라고 이렇게 말하신 거지. 인민군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폭격 무서워서 간 것이 맞나 확인해 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시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들것을 마루 앞에 놓으면서 시어머니한테 간호 잘하라고 하고 가더라고. 열흘 뒤에 시아버지가 석방돼서 돌아오시고 시어머니는 나를 간호해주셨지. 그때 시어머니가 내 대소변 다 받아내시면서 간호해 주셨어. 동네에서 애호박 삶은 것을 총 맞은 양쪽에 붙이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더니 화약독이 막 줄줄 흘러나오고 그랬어."
- 그럼 두 번째 시도는 어떻게 하셨나요?"그 다음해 4월 중순경에 초등학교 동창들이 찾아와서 같이 남으로 가자고 했더랬지. 해상면이라는 해변가 동네에 아는 집으로 갔어. 가보니까 처녀만 9명이 있더라고. 주인아줌마가 처녀가 너무 많아서 의심받다가 걸리면 안 되니까 나보고는 다른 집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주인아줌마 애를 빌려서 업고 마치 마실 나가듯이 옆 마을로 가서 다른 집으로 옮겨갔어. 나중에 그 주인아줌마는 다시 애 데리러 왔고. 이제 그 집에서 지낸 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남에서 길 안내하는 사람이 와서 배가 왔다고 나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랑 노 젓는 배를 타고서 조용히 남쪽으로 갔지. 한 반쯤 가니까 해가 떴는데 그제야 돛을 달더라고. 좀 더 배를 타고 가서 강화도 위쪽에 있는 교동에 도착했지."
- 한번 총을 맞으셔서 두려우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시 나가겠다고 결심을 하셨나요?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다른 분들은 반대를 안 하셨는데 작은아버지가 너는 그 총을 맞고도 나가고 싶으냐고 기절할 듯이 말씀하셨어. 나도 두려웠지만, 한번 결심했기 때문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지."
- 그럼 교동에 도착하신 이후에 할아버지는 어떻게 다시 만나셨나요?"교동에서 새로 증명서를 만들고 한 달 반 동안 교동에 있다가 인천에 아는 친척 동서네서 지냈지. 너희 할아버지가 그 당시에 군인이었는데도 10일 만에 그 집으로 오셨어. 그 전에도 할아버지는 그 집에 자주 들르곤 하셨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