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투입해 송전탑 공사 재개하면 사고 뻔해"

경찰 기동대 3000명 투입 예정... 주민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등록 2013.09.30 15:47수정 2013.09.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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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같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주민들은 살 수 없게 된다.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된다고 하는데, 우리 보고 죽으라는 거 아니냐."
"무덤까지 파놓았다. 그냥 죽을 시늉하려고 파놓은 거 아니다. 오죽했으면 한 달 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움막을 지키면서 무덤을 팠겠느냐.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다."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지어놓은 움막에 사는 밀양 주민들이 한결같이 하고 있는 말이다. 한국전력공사가 10월 2일 송전탑 공사를 재개할 예정인 가운데, 밀양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곳곳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는데, 최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소재 127번 철탑 현장에는 움막이 새로 만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며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곳곳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는데, 최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소재 127번 철탑 현장에는 움막이 새로 만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며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윤성효

밀양 주민들은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 재개를 강행한다면 '제2의 이치우 어르신'이 나올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고 이치우(74,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씨는 2012년 1월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 "내가 죽어야 해결된다"며 분신자살했던 것이다.

고 이치우씨가 자살하자 한국전력은 공사를 중단했고, 장례는 지난해 3월 치러졌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장례를 치른 뒤인 지난해 4월 보라마을 분신현장을 찾기도 했는데, 유족들이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밀양 송전탑 갈등은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 환경·시민단체도 결합하지 않고 오직 해당 지역 주민들이 몸으로 공사를 막았던 것이다. 당시 고 이치우씨가 분신했던 것은 주민들의 고립감도 한몫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른가. 언론과 정부의 관심은 그때보다 높지만, 주민들의 고립감과 위협감은 여전하거나 더 심해졌다. 주민들은 대규모 경찰이 투입된다는 소식에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전력이 용역을 투입했지만, 지금은 경찰에 현장보호 요청을 한 상태다. 이성한 경찰청장까지 밀양을 방문해 엄정 대처 방침을 밝히고 있다.


밀양에 투입되는 경찰 기동대 대원은 3000명으로 예상된다. 경남지방경찰청은 공권력 투입과 관련해 대책회의를 열어 오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정확히 숫자가 3000명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고 말했다.

"엄청난 공권력 투입된다면 반드시 사고날 것"


송전탑 공사 재개에다 대규모 공권력 투입까지 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3000명이라는 엄청난 공권력을 통해 힘없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면 반드시 사고가 날 것"이라고 밝혔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오르는 길목에 움막을 설치해 놓고, 공사 장비의 출입을 막기 위해 나섰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오르는 길목에 움막을 설치해 놓고, 공사 장비의 출입을 막기 위해 나섰다.윤성효

지난 27일 밀양을 방문해 주민 간담회를 갖기도 했던 조 최고위원은 "어르신들은 어느 때보다 절박해 보였다"며 "주민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이 70%에 육박해 있고, 지금 상태에서 공권력이 강제진압을 하면 사고는 필연적"이라고 우려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걱정하고 있다, 일꾼들이 숱한 오해와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2년간 활동해 온 것은 '탈핵' 등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지원 활동을 그만 둘 경우 주민들이 다시 고립되어 '제2의 분신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 이치우 어르신이 '내가 죽어야 해결된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무력감이 팽배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국장은 "지금은 비록 언론에 밀양 소식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며 "주민들은 지금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지난 8년간 싸운 이유가 보상을 더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런 점들이 정부 최고위층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며 "더구나 전력대란의 주범처럼,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억울해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우려되는 사고를 막는 방법은 공권력 투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송전선로 지중화가 가능한데, 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보인다"며 "밀양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송전선로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곳곳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는데, 최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소재 127번 철탑 현장에는 움막이 새로 만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며 무덤을 만들어 놓았으며, '송전탑을 막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매달아 놓았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곳곳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는데, 최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소재 127번 철탑 현장에는 움막이 새로 만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며 무덤을 만들어 놓았으며, '송전탑을 막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태극기를 매달아 놓았다.윤성효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농성하고 있는 주민들을 돕기 위한 '희망탈핵버스'가 운영된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곽빛나 활동가는 "3~5일 사이 탈핵희망버스를 운영해, 주민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울산경남지역 탈핵희망버스는 3일에 운영하고, 전국에서는 4~5일 사이 1박 2일 일정으로 운영된다. 곽빛나 활동가는 "2일부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는데, 송전탑 공사를 막겠다는 주민들을 위해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은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가져가기 위해 밀양 4개면에 송전철탑 81번부터 132번을 건설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5월 송전탑 공사를 벌이다가 10여일 만에 잠정 중단했다.
#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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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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