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꿈꾸는 '혼외 막장 극'의 결말은?

[주장] 과다한 특종 경쟁... '선정주의'의 끝이 궁금하다

등록 2013.10.02 11:55수정 2013.10.0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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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퓰리처가 이끌었던 <뉴욕월드>의 보도국 안에는 '정확성, 정확성, 정확성'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는 '사실-현장감-사실'이 적힌 현판도 있었다.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보도는 언론의 기본 수칙이자 생명이다. 언론·문필 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퓰리처 상을 만든 주인공답지 않은가.

하지만 일부 평자에 따르면, 그 시절의 퓰리처는 언론인이라기보다 쇼맨에 가까웠다. 1883년, 지리멸렬한 <뉴욕월드>를 사들인 퓰리처는 대담한 헤드라인과 선정적인 목판 삽화를 곁들인 지면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편집자들을 다그쳤다.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 교수인 폴 콜린스는 <타블로이드 전쟁>에서 퓰리처가 뻔뻔스럽게 자극적이고 요란한 언어, 감상, 최신 유행을 좇는 호기심 위주의 행사를 뒤섞어 여성 독자, 이민자 독자들에게 호소했다고 평가했다(아래 글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들은 이 책의 내용을 따랐음을 밝힌다).

그 덕분에 <뉴욕 월드>는 퓰리처의 인수 뒤 판매 부수가 열다섯 배나 뛰어 올라 세계 최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여기에는 퓰리처만의 독보적인 경영 마인드가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컬러 만화를 신문에 실었다. <옐로 키드>가 그것. 귀가 주전자 손잡이처럼 생긴 익살꾼 민머리 꼬마가 주인공이었다. '옐로 저널리즘(황색 언론)'이라는 고풍스러운 단어도 이 '역사적인' 만화가 만들어낸 별명이었다.

<조선일보>의 눈물겨운 노력,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채동욱 전 검찰 총장 관련 보도를 하는 TV 조선 화면 갈무리
지난 9월 30일 채동욱 전 검찰 총장 관련 보도를 하는 TV 조선 화면 갈무리이준호

황색 언론 <뉴욕 월드>의 선정주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897년, 뉴욕의 이스트 강과 할렘 강 근처에서 남자 시체 토막이 발견되었다. 당시 고매함을 표방한 신문인 <헤럴드>가 "이 세기 최대의 이상하고 잔혹한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을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뒤 경찰 수사가 신통찮게 진행되었다. 이때 <뉴욕 월드>는 신문에 사건의 미스터리를 정확히 푸는 사람에게 포상금 500달러를 금화로 지급할 것이라고 공고한다. 가게 점원의 1년 치 봉급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즈음 <뉴욕 월드>의 맞은편에는 퓰리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유력한 경쟁자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뉴욕 저널>의 허스트가 그 주인공. 미국 상원의원이자 광산왕의 아들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의 선정적인 안목은 퓰리처를 능가했다. <뉴욕 월드>가 포상금 500달러를 내세울 때 그는 포상금 1000달러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일보>는,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를 합쳐 부르는 말) 찌라시'라는 조롱기 가득한 말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대한민국 '찌라시'계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위상에 걸맞게 <조선일보>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최초로 단독 보도한 탁월함을 과시했다. 법적 근엄함의 상징 중 하나인 검찰 수장에게 혼외자라니 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인가. 이 먹잇감을 문 <조선일보>로서는 다른 신문사에 뼈다귀 하나도 빼앗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상상해 본다. <조선일보>가 기사의 '정확성'과 '사실'과 '현장감'을 위해 문제의 임씨(채 전 총장의 혼외 상대로 지목된 여인)를 필사적으로 만나려 들지 않을까. 임씨 주변 인물을 샅샅이 뒤져 탐문하고 인터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터. 그런 노력의 결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 <TV 조선>이 보도한, 임씨 집에서 보모로 일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가 그것이다.

<조선>이 임씨 아들을 찾기 위해 포상금 내걸면 어떻게 될까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회원들이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에 대한 보도형태를 규탄하고 있다.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회원들이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에 대한 보도형태를 규탄하고 있다.유성호

<조선일보>가 미국에 있는 임씨의 아들을 찾기 위해 포상금을 내걸면 어떻게 될까. 가령 임씨의 아들에 대해 제보하거나, 직접 사진을 찍어 보내는 이에게 사례금으로 몰래 얼마를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나무라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허스트 기자단을 능가하는 <조선일보> 기자단과, 전국 방방곡곡에 심어 놓은 현장 취재원의 대대적인 탐문 조사가 시작된다. 채 전 총장과 임씨에 관한 얘기라면 친족은 물론이고 아파트 관리인이나 마트 주인 등 주변인들도 얼마든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 사이에 점점 과다한 특종 경쟁이 펼쳐진다. 검찰총장 혼외 불륜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불타는 사명감 하나로 이들에게서는 투지가 넘쳐난다. 임씨의 직계 혈족에서 방계 친족을 거쳐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까지 저인망식 조사가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임씨의 아들 친구의 증언이 <조선일보>의 1명 헤드라인에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친구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

<조선일보>의 놀라운 능력은 이미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조선일보>는 임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있는 내용들과 학생 관련 정보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이들 정보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다른 사람에게 제공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일종의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조선일보>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 초·중등교육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유다.

절정을 향해 무한 질주하고 있는 이 막장 드라마는 앞으로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채 전 총장의 혼외 여인, 과거를 고백하다"나 "'혼외'에 관해 할 말 많은 채 전 총장 종친회" 등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언제 또 쏟아져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혼외' 의혹 받은 채 전 총장, 변호사 자격 없다" 식의 사설이 나올까봐 걱정이다. 여차하면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사실은···"이라는 제목으로 한 발 뺄 수 있는 '보험성' 기사도 준비해 놓지 않았을까 싶다.

'혼외 막장 극'의 끝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1897년의 뉴욕 토막 살인 사건 범인은 피해자 굴든수프의 전 부인인 오거스터 낵과 그의 정부 마틴 손이었다. 낵은 이 사건으로 10여년의 수감 생활을 했다. 그 사이 낵 부인을 포함하여 토막 살인 사건 관련자들을 최대한 우려 먹은 <뉴욕 월드>와 <뉴욕 저널>은 전례 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수감 생활을 마친 낵 부인의 뒷날은 평탄치 않았다. 우선 이미 '유명 인사'로 알려진 그녀를 받아주는 호텔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간신히 투숙한 한 호텔 로비에는 "시신 처리는 스스로 하시오"라고 써 붙인 안내문(?)이 나붙기도 했다. 낵 부인은 그 호텔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대체 지난 과거에서 뭘 얻으려고 그러는 거지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나요?"

마침내 다음 날, 오거스터 낵은 <뉴욕타임스>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는 과거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이야기를 팔겠어요. 당신네 신문사에서 얼마를 줄 수 있나요?"

진지하고 냉철한 <뉴욕타임스>는 거절했다. 자기들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낵은 허스트의 또 다른 신문사인 <이브닝 저널>을 찾았다. 다음 날 허스트는 <이브닝 저널>의 1면에 거대한 활자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박아 놓았다.

낵 부인이 고백하다!

<조선일보>가 꿈꾸는 '혼외 막장 극'의 끝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조선일보> #선정주의 #혼외 막장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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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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