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루도 싫고 구곡도 싫어

[복건성 문화유산 이야기 ⑭] 답사 종합

등록 2013.10.04 11:24수정 2013.10.0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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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답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

a  영정 토루 홍갱 경구

영정 토루 홍갱 경구 ⓒ 이상기


이번 복건성 문화유산 답사 여행은 일정이 정말 빽빽했다. 그것은 여행 일정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틀 만에 토루를 다 보고, 하루 만에 무이산을 답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영정 토루와 남정 토루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4일은 필요하다. 그리고 복건 토루 전체를 보려면 일주일은 필요하다. 복건 토루의 핵심인 영정토루 이틀, 남정토루 이틀, 평화 토루, 소안 토루, 장포 토루, 화안 토루에 각각 하루를 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4일 동안 보아야 할 영정 토루와 남정 토루를 2일 만에 보았다.


영정 토루의 볼거리는 대부분 호갱진(湖坑鎭)에 있다. 이곳에 있는 토루는 홍갱(洪坑) 경구, 고북(高北) 경구, 남계(南溪) 경구의 셋으로 나눠진다. 이들 세 경구를 하루에 보았다. 하루라고 하지만 하문에서 영정까지 이동한 시간을 계산하면, 오후 한나절에 이들 세 군데 경구를 다 본 셈이다. 이때 본 토루가 수십 개다. 그 중 자세히 살펴본 토루만 해도 열 군데는 된다. 하나의 토루를 보는 데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이 걸린다.

a  토루 왕자 진성루

토루 왕자 진성루 ⓒ 이상기


그 중 가장 자세히 본 토루는 홍갱 경구에 있는 토루 왕자 진성루, 고북 경구에 있는 토루 왕 승계루, 남계 경구에 있는 토루 공주 진복루다. 진성루는 100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토루 왕자가 되었다. 승계루는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가장 크고 웅장해 토루 왕이 되었다. 진복루는 동양건축의 전통에 따라 수려단장한 모습을 하면서도 서양 건축의 편리성을 가미했다. 그래서 토루 공주가 되었다.

이렇게 많은 토루를 보면서 이게 정리될까 했는데, 책을 보면서 나는 이들의 특징과 역사를 정리할 수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여행에서는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대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그런 점에서 타이트하게 많이 보는 여행방식도 장점이 있다. 또한 경제성이란 측면에서도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다. 이틀에 볼 것을 하루에 보면 경제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이번 여행에서는 인솔자가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여타 패키지여행과는 다른 점이었다.

a  동왜서사 유창루

동왜서사 유창루 ⓒ 이광국


남정 토루의 핵심은 서양진(書洋鎭)에 몰려 있다. 이들은 A, B, C 세 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A코스가 볼거리가 가장 많았다. 전라갱 토루군, 하판촌 토루군, 탑하촌 토루군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들 세 군데를 자세히 살펴봤다. 특히 전라갱 토루군과 하판촌 토루군은 형식면에서 정말 독특했다. 그래서 전자는 4채1탕(四菜一湯)이라는 은유법으로, 후자를 대표하는 유창루는 동도서왜(東倒西歪) 또는 동왜서사(東歪西斜)라는 직유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B, C 코스를 보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B코스의 핵심은 하갱(河坑) 토루군이고, C코스의 핵심은 운수요(雲水謠) 토루군이다. 이들 이름에도 시내를 뜻하는 하(河)와 물을 뜻하는 수(水)가 들어간다. 토루가 있는 곳에는 90% 이상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들 토루군의 모습은 책과 영상물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기간이 짧음으로 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었다.   


하루에 그걸 어떻게 다 돌아다녀?

a  무이산 구곡계 뗏목 타기

무이산 구곡계 뗏목 타기 ⓒ 이상기


무이산 답사 계획은 애초부터 실현이 불가능했다. 하루 동안 무이산 천유봉, 무이궁, 구곡계 뗏목 유람, 대홍포, 수렴동, 일선천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이틀은 걸려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날 오전 무이산 천유봉 등정, 오후 구곡계 뗏목 유람과 무이궁 답사를 하고, 둘째 날 오전 대홍포와 수렴동 답사, 오후에 대왕암 또는 일선천 등정을 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무이산 천유봉 등정, 구곡계 뗏목 유람, 무이궁 답사, 대홍포 관광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무리였다. 왜냐하면 여름 관광철을 맞아 중국사람들이 무이산을 떼로 찾았기 때문이다. 천유봉 등정이 비수기에는 두세 시간 정도면 가능한데, 이번에는 너댓 시간이 걸렸다. 그 바람에 점심도 30분 만에 먹고 오후 주파이(竹筏)를 타러 구곡계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2시간 정도 땡볕에 뗏목을 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산이나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피곤에 지쳤다. 경치와 역사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졸기까지 했다.

a  대홍포 골짜기에 쏟아지는 햇빛

대홍포 골짜기에 쏟아지는 햇빛 ⓒ 이상기


무이궁 근처에 내린 다음 무이궁으로 이동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무이궁에는 그늘도 많고, 거리를 따라 고가도 있고, 무이궁이라는 문화유산도 있어 또 다시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홍포였다. 대홍포로 들어가는 길인 구룡과(九龍窠) 골짜기가 서향으로 나 있어, 늦은 오후의 햇살이 정면으로 비쳐들었다. 또 암벽으로 이루어진 골짜기의 단조로움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더위와 피로 그것이 정말 사람을 힘들게 했다. 거기다 시간에 쫒겨 차 한잔 마시지 못하고 대홍포를 나와야 했다.

한 마디로 걷고 걷고 또 걷는 강행군이었다. 오후 5시에 무이산 관광을 마칠 수 있었는데, 다들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현지 중국인 가이드를 도와주고 대홍포 차를 마셔보기 위해 무이산 시내에 있는 찻집을 방문했다. 그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무이산 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오후 6시쯤 다시 호텔로 가서 짐을 찾고 저녁을 먹고 나니 오후 7시가 넘었다. 하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9시 30분에 있으니 또 서둘러 공항으로 갈 수 밖에. 아마 이런 여행은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빨리 많이 많이.

a  천유봉에서 바라 본 구곡계

천유봉에서 바라 본 구곡계 ⓒ 이상기


그러나 여유도 좀 있으면 여행이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나는 중국 복건성에 앞서 베트남 중부 다낭, 호이안, 후에 여행을 했는데, 그때는 정말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복건성 문화유산 답사가 시간과 비용 대비 효율성은 높았지만, 체험과 즐김이라는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여행을 즐기려면 시간 여유를 갖고 여행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여행에 만족한다. 복건 토루와 무이산의 핵심를 제대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루의 왕과 왕자 그리고 공주를 보았으니 말이다. 무이산도 소위 빅 쓰리에 해당하는 천유봉 등정, 구곡계 뗏목 유람, 무이암차의 고향 대홍포 관광을 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에는 토루의 왕비를 찾는 일만 남은 걸까? 또 기회가 되면 구곡계를 걸어서 답사하고 싶다. 그래야 선인들의 흔적을 제대로 찾아 살펴볼 수 있을 테니까.

토루에서 젊은이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a  토루의 어린이들

토루의 어린이들 ⓒ 이상기


우리가 토루를 방문해서 느낀 점은 젊은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토루가 주거공간보다는 관광지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토루는 원래 집성촌, 집단 거주지, 아파트, 주상복합 건물 등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틀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토루를 떠나면서 그런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첫째 경제적인 이유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에 토루에 사는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부업으로 담배와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다. 그러나 농업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담배는 전매사업이 되었으며, 농기구 제조는 기업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예전에 비해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노인들이야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살지만, 젊은이들이야 이러한 생활방식을 고수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토루를 떠난다.

a  토루의 내부

토루의 내부 ⓒ 이상기


둘째 생활의 불편함이다. 토루는 1층이 주방과 식당이다. 2층은 창고며, 3층 이상이 주거공간이다. 이것이 과거 대가족 공동체 생활에서는 바람직했다. 식사 때 1층에서 모두 만나 그날 할 일들을 논의하고 또 함께 나가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삶이 소가족 개인주의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방과 부엌, 거실, 침실이 함께 있는 현대식 주택이 선호된다. 그 때문에 젊은이들은 침실이 나란히 붙어 있고, 거실 개념이 없는 토루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셋째 전통에 대한 거부다. TV 등을 통해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보고 배운 젊은이들이 전통문화를 거부하고 서구의 현대문화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기성세대의 생활방식은 타파 또는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토루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농경사회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은 이제 도시로 나가 살면서, 여름 휴가 때나 토루를 찾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하고, 여름에 토루가 시원하기 때문이다. 토루가 700년 이상 중국인의 삶을 지탱해 왔다면 장점이 많을 텐데. 뭔가 돌파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무이구곡가가 조선의 구곡가에 미친 영향

a  무이산 구곡계를 중심으로 한 무이산 개념도

무이산 구곡계를 중심으로 한 무이산 개념도 ⓒ 이상기


무이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자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무이구곡을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다. 왜냐하면 농사짓고 뱃사공 일을 하는 것보다, 도시에 나가 농민공으로 사는 게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이산을 떠난 젊은이가 하문이나 홍콩, 선전 등지로 나가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그러면 이들은 가족까지 모두 대도시로 불러들인다. 그로 인해 중국은 점점 이농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것은 개발도상국이 겪는 통과의례 중 하나다.

그러한 무이산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최근 늘고 있다. 이들은 세 부류다. 하나는 순수하게 무이산의 경치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대개 산을 좋아하는 등산객이다. 다른 하나는 무이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주자라는 이름에 끌려 무이산을 찾는다. 그가 살았던 흔적을 찾고 또 그가 쓴 무이구곡가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 일부는 무이암차를 맛보고 그것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무이산을 찾는다.

a  무이정사에 있는 주자상

무이정사에 있는 주자상 ⓒ 이상기


나는 무이구곡가 때문에 무이산을 찾았다. 그 무이산을 대단하게 만든 게 주자고, 주자의 이 시 때문에 조선시대 문인들은 너도나도 구곡이라는 이름을 짓고 구곡가를 지었다.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치고 구곡가를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표적인 사람이 율곡 이이(李珥)다. 그는 해주 석담(石潭)에 머물며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고산구곡가의 서곡에서 율곡은 무이산을 생각하며 주자를 배울 것을 맹세한다. 그러면서도 주자와 달리 그는 시조로 구곡을 노래했다.

고산 구곡담(高山 九曲潭)을 사람이 모로더니
주모복거(誅茅卜居)하니 벗님내 다 오신다.
어즈버 무이(武夷)를 상상(想像)하고 학주자(學朱子)를 하리라.

a  우암이 은거하던 화양동 암서재

우암이 은거하던 화양동 암서재 ⓒ 이상기


그 후 문인들은 경치 좋은 곳에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가를 지었다. 우암 송시열, 문곡 김수항, 삼연 김창흡 등이 대표적이다. 우암은 화양동 암서재에 머물며 화양 구곡을 설정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현재도 바위에 새긴 글씨를 통해 화양구곡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후학들은 화양서원을 세우고 또 화양구곡가를 지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상주, 권진응, 성해응 등이다.

이들은 모두 우암의 학맥을 따른 노론계 문인들로, 구곡가의 전통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곡가는 또한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과장된 경향이 있다. 현재 이들을 찾아가 보면 상당수가 없거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조금 경치가 좋은 곳이면 구곡을 만들어 시를 짓고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다. 이게 바로 주자의 무이구곡가가 우리의 구곡가에 미친 영향이다.
덧붙이는 글 14회로 [복건성 문화유산 이야기] 연재를 마친다. 기회가 되면 복건 토루 이야기, 무이산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연재하고 싶다.
#복건 토루 #영정 토루, 남정 토루 #무이구곡가 #고산구곡가 #화양구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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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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