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사진으로 동복을 입은 어느 이름 모를 국군(1951. 1. 5). 이우근 학도병이 전사한 뒤 5개월이 지난 다음 촬영한 사진이다.
NARA, 눈빛출판사
기자가 거듭 잘못된 사진이라고 지적하자, 그는 그제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는 그거(잘못된 사진이 게재된 것) 자체가 학생들이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순간 분노가 폭발했다. 한국사(교학사) 교과서에 수록된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은 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애써 찾은 사진 가운데 한 장이며, 이우근 학도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진이기 때문이다.(관련기사: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
얼마 전, 출판사의 정중한 사과로 조금 누그러지려던 내 마음은 다시 돌변했다. 사실 애초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보도에, 나는 교과서를 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보수 대 진보 학자들의 견해 차이로 겪는 하나의 홍역으로 알았다. 그런데 도종환 의원이 보내준 교과서 313쪽 학도병 이우근 사진을 보고, 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이념의 문제에 부실 덩어리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의 역사 교과서가 이러면 안 된다는 판단이 확고하게 섰다. 우리 아이들을 모두 부실, 삼류로 만들 수 없지 않은가.
어떻게 출처 불명의 사진을 함부로 끌어다가 누더기 짜깁기하듯 만든 한국사 교과서를 우리 아이들의 교재로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그것(사진 오류)을 알고도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학자의 양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고교 시절부터 학생 기자로, 문학도로 많은 글을 썼고, 또 교단에 선 뒤에는 학교신문이나 교지를 수십 년간 만들었고, 또 개인 저서도 30여 권 펴냈을뿐더러 지금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오류나 오타를 범할 때가 더러 있다. 지금은 대부분 저자가 직접 자판을 두들기지만, 옛날에는 인쇄소 문선공들이 저자의 원고를 보고 활자를 뽑아 조판하기에, 본 원고와는 달리 그야말로 본의 아니게 잘못된 인쇄를 뒤늦게 발견하여 곤욕을 치른 일도 없지 않았다. 곧 사람은 신이 아닌 한 실수를 할 수 있다.
알면서도 거짓으로 모르는 척 말하였다면... 교과서 써서는 안 될 사람이우근 학도병 사진 문제가 불거진 지 그새 한 달이 지나 이제 웬만한 이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러는데도 주 저자인 이명희 교수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정말 모른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거짓으로 모르는 척 말하였다면 정말 양심 불량자로 도저히 역사학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요, 더욱이 가장 중요한 중·고생 교과서를 써서는 안 될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조차 쓰레기로 만들 수 없지 않은가.
그가 주 저자라면 이번 사진 사태에 몰랐다고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전후 사정을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데 대해 깊은 사죄와 아울러 즉각 시정 조치토록 하겠다고 고개 숙이는 게 바른 태도일 것이다. 나는 그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데 분개한다. 그는 자신의 부실과 실력부족 그리고 제품 불량을 은폐한 채 이를 이념으로 몰고간다면 언젠가 후배나 제자들에게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가 나중에 그게 가장 무서운 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이 배울 역사교과서만은 정직하고 정확하게 써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잘못 배웠다고,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그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리에서 투쟁하였던가. 내가 대학 다닐 때는 8학기 중 7학기는 조기 종강했다. 그는 다시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가. 후생은 가외라, 젊은이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 정권은 유한하지만, 역사와 진리는 영원하다.
교학사는 이미 지난 9월 30일, 나의 공개질의서에 다음과 같이 답변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