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상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백수(白首)의 김원일
박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그런 무심하고 무정한 아버지이지만 아들로서 혈육으로 그리는 원초적인 정이야 어찌 남과 다르겠는가. 9·28 수복 직전 김원일이 아버지와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이다.
그날 오후, 고물상 마당에서 첫째 아우에게 구슬치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지프 한 대가 열린 마당으로 급커브를 돌며 들이닥쳤다. 지프가 일으킨 흙먼지가 가라앉아 차에서 내리는 군복 입은 전사가 바로 아버지였다. 운전병은 위장망을 걸친 젊은 전사였다. 군복을 입은 아버지를 보기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견장이 달리지 않은 군복에 완장을 찼고, 옆구리에서는 권총이 덜렁댔다. 아버지에 대한 기다림에 지쳐 원망이 하늘에 닿을 듯 하던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처럼 나 역시 아버지를 오매불망 기다린 탓인지 당신의 얼굴을 보자 너무 반가워 눈물부터 쏟아졌다. 군인의 모습으로 변한 당당한 아버지였다."아, 아부지!"내가 부르짖으며 아버지를 불렀다. 눈물이 앞을 가려 군모 밑에 드러난 아버지의 수염 거뭇한 깜조록한 모습이 어려 보였다."넌, 남자잖아. 아버지를 보고 울다니.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면 안 돼."아버지가 내 알머리를 한번 쓱 쓰다듬고는 빙긋이 웃었다.- <아들의 아버지> 338쪽그렇게 북으로 매정하게 떠난 아버지를 소년 원일은 평생 화두로 심아 기억 속에 희미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때로는 휴전선 너머 북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여덟 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그는 문제적 장편소설 <노을>에서 이 세상의 변혁에 앞장서는 행동가 아버지를 상상했고, 대작 <불의 제전>에서는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적 지식인 아버지를 찾았으며, 화제작 <마당 깊은 집>과 아름다은 단편 <미망>에서는 그 아버지가 사라진 후 가족이 겪는 설움을 아프게 회상한다."- <아들의 아버지> 뒤표지 김병익 (문학평론가) 이 시대의 한 영웅나는 김원일 선생을 이런저런 연유로 만나 많이 배우고 있다. 2005년에는 남북작가대회에 동행도 했고, 2007년에는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이라는 포토에세이집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나는 선생을 만날 때 두 번 당신의 모습을 담았는데 카메라 앵글에 잡힌 그 얼굴과 눈매에서는 어딘가 모를 깊은 우수와 비원, 그리고 오뇌가 보였다. 마치 김동리의 <등신불>처럼. 이즈음 내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어떤 약속>을 연재하면서 한국전쟁 문학의 대목에게 한 수 배우고자 서울로 가 선생을 찾아뵙고 몇 가지 여쭸다. 선생은 내 작품에는 대사가 많고 묘사와 지문이 부족하다는 처방을 내리며, 다시 책으로 펴낼 때는 그 점을 유념하며 퇴고하라고 아주 약방문까지 써주었다. 그때 김원일 선생은 곧 나올 신간 <아들의 아버지>에 대해 말했다.
"나는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세 가지 형식을 활용하고자 했다. 첫째, 해방과 전쟁 사이의 시대적 공간을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르포식으로 기술하고, 둘째 아버지의 생애와 내 유년을 사실대로 쓰고, 셋째 아버지를 형상화한 부분은 내가 너무 어린 나이이기에 추측과 허구로 썼다."내가 선생에게 앞으로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을 여쭙자,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배경으로 바로 내 고향 구미 옆인 약목의 어느 분이 겪은 그때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어떤 약속>과 같은 배경이라 선생이 그려낼 그 이야기가 잔뜩 기대가 된다.
김원일, 그는 지난 세월 문둥병 환자보다 더 무섭다는 코뮤니스트의 아들로, 고난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서초동 한 밥집에서 점심을 나누고, 차 한 잔을 마신 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6척 장신의 그 뒷모습이 나에게는 이 시대 한 영웅처럼 보였다. 그는 그 어려운 시기에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소나무 그루터기를 부여잡은 뒤 그 절벽에서 산삼을 캐낸 사람이다. 그가 몸소 체험하고 쓴 한국전쟁 문학은 두고두고 그 시대의 귀한 증언록이 될 것이다.
나는 지난 주말부터 382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에 깊이 빠져 정독했다. 오늘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 소설은 한 가족사라기보다 바로 우리나라 역사요, 그분의 아버지는 바로 분단된 우리나라임을 느꼈다. 지난날 외세에 무릎을 꿇지 않고, 그들에 맞서 저항한 우리 아버지들 가운데는 그렇게 힘들게 사신 분이 많았다.
나는 단풍이 곱게 물든 이 계절에 아버지가 영원히 잠드신 월정사 수목원에 찾아가 깊이 고개를 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