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곤 지검장의 답변 경청하는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 조영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참철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국정원 직원 체포 보고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자,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눈을 감은 채 조 지검장의 답변을 경청하고 있다.
유성호
'검사동일체 원칙' 아래 위계와 서열을 목숨처럼 여기는 검찰에서 부하와 직속상관이 진실게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것도 많은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정감사장에서 사법연수원 기수가 일곱기수나 늦은 수사팀장이 지검장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선·후배 검사는 국회의원들에게 '대질신문'을 당한 셈이었지만, 시작부터 서로 엇갈린 '진술'은 서로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상명하복인 검찰에서 이런 일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부하 검사의 '항명'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시작은 윤석열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수사팀장(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다. 윤 전 팀장은 SNS로 불법선거운동을 벌인 혐의가 있는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과 관련해 미리 조영곤 지검장 자택에 찾아가 보고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 변경에 대해선 네번이나 조 지검장의 구두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팀장이 이 같은 얘길 하자, 의원들의 질의에 "현재 진상조사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을 반복했던 조영곤 지검장도 입을 열었다. 윤 전 팀장이 자택에 찾아온 것은 맞지만 제대로 된 보고가 아니어서 자신은 승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고, 공소장도 변경내용을 못 봐 승인하지 않았다는 게 조 지검장 주장이다.
"외압 들어오는 것 보니 기소 못하겠더라"그러나 누구의 진실이 맞느냐 하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윤 전 팀장이 "지검장을 모시고 이 수사를 계속 끌고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 점이다. 사실상 선배 검사장을 '수사방해세력'의 하나로 지목한 것이 두 사람 간 진실게임보다 더 충격적인 부분이다.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수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기까지 5~6개월간 법무부의 '방해 정황'을 언급하기도 한 윤 전 팀장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 대해서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정원 직원을 체포한 직후 "'직무에서 손 떼라. (국정원) 직원들을 빨리 석방시켜라. 압수물 전부를 돌려줘라'고 지시가 와서 저는 '좋다'고 했다"며 "불만이 있었지만, 지시·외압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수사를 해서 기소를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윤 전 팀장의 이날 국정감사 발언은 단순히 조영곤 지검장과의 진실게임이 아니라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를 향한 항변으로 봐야 한다. '수사방해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세력들을 향해 국정감사 현장에서 '왜 수사를 못하게 하느냐'고 외친 것이다.
윤 전 팀장이 수사방해세력으로 꼽은 것은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만이 아니다. 그는 외압의 주체로 국정원을 지목하기도 했다. SNS 대선공작을 벌인 혐의로 체포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남재준 국정원장이 '진술 불허'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 전 팀장은 "국정원 직원에 대한 검찰 조사과정에서 국정원측 변호사들이 입회해 국정원장의 진술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 '이렇게 진술하면 고발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윤 전 팀장에 따르면 진술불허 지시는 국정원 공문형식으로 국정원측 변호인을 거쳐 국정원 직원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고 나선 셈인데, 수사방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공무집행방해나 증거인멸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국정원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국정원 직원이 직무상 비밀에 관한 내용을 증언 또는 진술하고자 할 때에는 원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검찰의 원래 모습이라면, '수사하자'고 한다"따라서 이날 국정감사에서 윤 전 팀장이 한 발언 내용은 단순히 조영곤 지검장의 사건수사지휘의 부적절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보기 힘들다. 또한 '공개항명'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칠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국정원의 대선 댓글·SNS 공작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한 세력이 엄존하고, 수사검사가 결국 수사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을 호소한 데에 주목해야 한다.
또 하나, 정보기관에 의해 민주주의가 훼손된 상황에 대한 분노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은 주로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을 지검장에게 승인받지 않고 실행한 점을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까지 그런 지적이 계속되자 윤 전 팀장은 답답하다는듯 "여러가지 무슨 절차와 이런 것들을 많이 말씀하시니 한 말씀 올리겠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사팀 검사들은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글을 보고 상당히 분노했다.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런데 (트위터 혐의 확인 등을 지검장에게) 보고 드렸을 때, 검찰의 원래 모습이라면 '아 이런 게 또 발견됐냐. 정말 잘 됐다, 수사하자.' 이러면서 '일단 신병 확보할 사람은 하고, 증거 확보할 수 있는 것들부터 착수하면서 보강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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